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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랄라 May 26. 2024

가심비를 가장한 가성비 좋은 컷으로 부탁해요.

우당탕탕 좌충우돌 초등학교 4학년 아들 키우기

내 머리 하겠다고 미용실을 찾아 헤매는 엄마가 아니라, 아들 머리 하겠다고 미용실을 찾아 헤매는 엄마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인생 행로. 아니, 딸 머리도 아니고 아들 머리인데 말이다. 아들 미용실을 정착하고자 참 많이도 수소문 했다. 자주 자르니까 '가성비'를 따져 볼까. 가르치는 남학생들에게 어디 미용실 다니냐고 물어보며 빅데이타를 모은다.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모아본다.


1번 후보군 ,오, 가격이 쌈박하다. 그런데 예약제도가 아예 없어서 운에 업혀 가야 하는 곳. 행여나 이발하는 친구들이 왕창 모여들면 그저 주구장창 앉아서 시간 때우기의 진수를 보여줘야 하는데, 기다리는 곳은 마냥 협소하고 그렇게 시간 보내는 것에 익숙치 않은 라이프 스타일이라 한번 가고 '가성비'는 냅따 뻥 차버렸다.


2번 후보군, 아저씨가 고객이 원하는대로 컷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컷을 해준다고. 별로 가타부타 따지지 않는 남편인데 한마디 하는 거 보니, 여기도 대놓고 까탈스런 AB형 아들 취향에 아닌듯. 요즘 시대에도 혈액형으로 성격 따지냐 싶은데, 내 배로 낳아서 그런지 이런 얼토당토한 성격분류는 딱 들어 맞으니 구시대적이라고 마냥 버리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엄마다.


3번 후보군, 전화로 예약할 수 있고 디자이너 세분 정도 계신대다가 슬세권이 따로 없으니 엄마가 예약하고 아이 혼자 다녀오라고 할 수 있는 곳. 이곳도 남학생들 한창 많았을 때 수소문해서 알아낸 곳. 역시 현역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빠삭했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충족시켜 줬다. 특히나 처음 갔을 때 계셨던 남자 헤어디자이너 분은 어찌도 그리 아들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시는지 전면적으로 흡족하였다. 허나, 안타까운 이별이 곧 우리에게 닥쳤으니. 아들이 좋아하던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미용실을 관두시면서 두 분의 선생님이 모든 예약 일정을 소화하게 되셨다. 이후 전화상으로 적절한 예약 시간 잡기가 힘들어졌고, 오픈일이라 생각해서 전화했는데 휴일이었고, 전반적으로 일손이 부족하니 시간여유가 턱없이 없었다. 이제 미용실을 정착하는가 싶었는데,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이별을 고해야 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0번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원래는 가까웠는데 한 두블럭 정도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방문이 다소 뜸했던 그곳으로. 1년에 한 두번 머리할까 말까한 나만 몰래 다녀오던 그곳으로 아들과 남편도 예약을 넣기 시작했다.


이발하러 가자면, 언제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아들이다. 더 있다가 가겠단다. 이게 뭐라고 자꾸 미룬다. 봐줄 수 있을 때까지 봐준다. 도저히 못봐줄 정도로 아들이 못생겨지는 순간이 온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이번에 안가면 그대로 장발행이라고. 엄마는 이발비 안줄거라고 못을 박는다. 땅땅땅. 그럼 바로 꼬랑지를 내린다. 가겠단다. 그렇게 해서 목요일에 합의를 보고, 토요일에 바로 예약을 넣었다. 규모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이너 선생님들도 많고 시간대도 다양하니 일사천리다. 아들로부터 미용실을 가겠다는 확답을 받고 네이버예약으로 아주 우아하게 예약을 마치고 나면 장애물 하나 넘었다. 이제 하나 넘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서, 혹은 좀 더 일찍 미용실에 도착한다. 걸어서 가도 되지만, 시간여유가 없어 자차로 이동한다. 함께 손을 잡고 미용실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두번째 실랑이가 벌어진다. 여름이라 더우니 이번에는 좀 더 짧게 잘라보는게 어떻겠냐, 겨울에는 펌을 해서 머리 손질 편하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 두상이 예쁘니 이마를 까는 건 안되는 거냐, 다른 헤어스타일도 시도해 보자 등등 나는 떡밥을 투척해 보지만 아들은 꿈쩍않는다. 꿈쩍않는 돌상을 차에 싣고 결국 미용실에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물으신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곳으로 정착한 첫 방문 때에 선생님께 아주 난해하고 난감한 주문을 넣는다. 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가심비를 가장한 가성비 좋은 컷으로 부탁드려요.' 디자이너 선생님과 안면이 있는지라 이것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첫 방문 때에 이발을 무사히 마쳤다.


25일 토요일, 두 번째 방문은 남자선생님으로 픽했다. 물론 모두 내가 정한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내려놨다. '아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심 될 것 같아요.' 중간에 선생님께서 머리가 다 되었다며 한번 보시라고 하셨다. 나는 당당히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들이 마음에 든다면요. 제 머리가 아니니까요.' 괜히 보러갔다가 더 짧아야 한다며 훈수를 둘 것 같았다. 회피했다.


무사히 아들의 이발을 마치고 귀가한다. 친구 **처럼 조금 더 짧았어도 예쁠 것 같은데, 왜 그 머리는 안되냐고 아들의 의중을 떠봤다. 아들이 대답한다. '나는 **가 아니잖아. 내 머리 모양은 달라.' 할말이 없었다. '나는 내 머리가 버섯 모양이었으면 좋겠어. 그게 잘 어울려' 자신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콕 집어 말하는 아들 앞에서 엄마는 할말이 없었다. 속으로 한 번 더 되뇌인다. '그래, 내가 하고 다닐 거 아니니까, 내 머리 아니니까, 개인의 취향 존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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