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얼굴에 하나, 둘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곧 그 하나, 두 개가 온 얼굴을 덮었다. 지금은 모두 가라앉았지만 그때 났던 여드름 흉터 치료를 위해 아직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잊을만하면 그때가 그리운지 여전히 가끔씩 하나, 둘 여드름이 올라온다. 하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겨울방학 때는 아이들 케어하느라 꼼짝 못 하고 아이들이 개학하는 첫 주가 끝날 무렵 예약해 놨던 병원을 다시 다녀왔다. 이마저도 새로 배우기 시작한 한국 무용 수업에 밀려 급하게 금요일로 다시 잡아 부랴부랴 다녀왔다. 병원에 들어서자, 피부 상태를 체크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어떤 치료는 내가 왜 내돈 내고 이런 고통을 샀을까 싶은 후회가 밀려 올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나의 피부 고민을 알고 꼼꼼하게 치료해 주는 원장님의 세심함을 알기에 참아낸다. 드디어 치료가 끝났다.
선크림 잘 바르라는 원장님의 인사와 함께 나는 "감사합니다, 원장님."이라 화답하였다.
그리고 관리실에 누워 잠시 상념에 잠긴다. '원장님'이라는 호칭을 요즘 너무 자주 부른다 싶다. 오늘은 피부미용을 위한 병원이었지만,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병원 갈 일은 점점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들르는 병원에서 선생님이라는 말보다는 어쩐 일인지 '원장님'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쓴다. 우리 가족이 애용하는 미용실에서도 '원장님'이라 부르고, 한창 두 아이 키울 때라 개별 학원 원장님도 참 많다. 미술학원 원장님, 수학학원 원장님, 줄넘기학원 원장님, 모두 '원장님'으로 통한다.
의식하지 않았던 호칭으로 잠시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나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부모님께서 음식점을 운영하셨기에 주변에서 마주치는 분들은 주로 '사장님'으로 통했다. 야채가게 사장님, 정육점 사장님, 세탁소 사장님, 독서실 사장님, 부동산 사장님, 사장님들이 참 많았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여질 때면, '사장님'만 붙여도 그저 오케이, 만사형통이던 시절이다. 그런데 요즘은 영 사장님 부를 일이 많지 않다. 사장님이 있다는 걸 알아도 매장에서 보이지 않거니와, 예전보다 사장님들이 운영하시는 가게들이 부쩍 줄었다. 웬만한 구매는 대형마트로 가거나, 온라인으로 대부분 해결이 되니 '사장님' 부를 일은 자주 가는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원장님' 다음으로는 남편 주변에서는 '대표님'이라 부르는 분들이 많아졌고, 나는 '작가님'이라 부르는 분들이 많아졌다. '원장님'으로 시작한 호칭에 대한 자각이 남편과 내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호칭을 생각하니 어떤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지 보인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내 꿈이 담긴 정체성과 한 우물을 판 남편의 정체성이 보이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한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흔하다 싶을 정도로 '사장님'들이 참 많았는데, 동네 상권을 책임지는 사장님들 보기가 점점 힘겨워지니 말이다. 그리고 병원은 정말 많아졌다. 점점 더 치열해질 듯하다. 우리 아이들이 크면 또 어떤 호칭이 많아질까. 많아져야 할까. 내 아이는 또한 어떻게 불리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