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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쩌면 '원앙'의 저주였을까

by 엘샤랄라

둘째가 읽고 싶다는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내 책이 아니었기에 '어린이 열람실'로 간다. 딸이 읽고 싶어 했던 책은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라는 책이었는데, 청구기호가 '생물' 쪽이다. 허나 막상 딸이 원하는 책은 찾아봐도 없다. -결국, 따로 마련된 서가에서 찾긴 찾았다- 대신 내가 평소 관심이 있던 책이 보여 집어든다.

냇가를 끼고도는 공원 주변을 산책하면서 마주치던 새들의 이름이 궁금했었고, 그 호기심을 풀어주기 딱 좋은 책이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면 꽃이든 새든 그렇게 구체적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참 정겨워 보였기에 나도 내 글에 인용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컸다. 그렇게 해서 우연히 빌리게 된 책을 펼쳐본다. 텃새 중에는 까마귀, 까치, 참새, 비둘기 혹은 오리 종류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보다 훨씬 많은 새들이 있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먹을 것이 풍부한 갯벌과 산자락이 어우러진 지형적 특색 때문이란다. 한 장, 한 장, 새의 이름을 확인한다.

수학여행 갔다가 부모님 생각하면서 나무에 조각된 '원앙'을 사 온 적이 있다. 금실 좋은 부부 되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 온 기념품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 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원앙은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고, 남은 암컷 혼자서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이건 저주다.

원앙 입장에서도 억울하겠다. 그것도 특히 암컷이. 자연의 섭리는 이런 게 금실 좋은 이야기란 말인가. 안다.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이 사실은 원앙이 아니라, 기러기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난 초등학생이었노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허나 이미 지나간 일. 그런데도 이렇게나 찜찜하다. 어쩐지, 우리 부모님은 내가 그 기념품 사들고 온 뒤부터 더 치열하게 싸우신 것 같더라니. 이건 괜한 나의 느낌적인 느낌일까.

집안에 물건 들이는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살림에 보탬이 된다 생각하는 물건은 편하게 덥석 받았다. 하지만 이제 누가 주는 물건 받기가 조심스럽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받게 된다. 생필품 이외에 사는 것도 신중하게 된다. 길 가다가 떨어진 물건이 아무리 쓸만하다 생각되어도 나도 아이들에게도 함부로 줍지 못하게 한다. 물건에는 죄가 없다. 다만 그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그 속성을 경계한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괜한 인과관계를 갖다 붙여 스스로 괴로워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 이게 다 수학여행에서 샀던 '원앙 기념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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