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햇병아리'다.

by 엘샤랄라

2월 13일 집 근처 '역사문화관'에서 한국무용을 난생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3학년 때, 이곳에서 체험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개인정보가 남았는지 1월에 <성인문화프로그램> 안내 홍보문자가 왔다. 프로그램 내용은 '수채화, 한국무용, 그리고 요가'였다. 문자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한국무용'이라는 단어가 굵은 고딕체가 된다. 마트나 백화점, 그 어떤 문화센터에서도 한국무용 수업은 근래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대려는 심장을 잠재워야 했다. 수업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정보 따윈 전무후무했다. 지극히 간략한 객관적인 정보만 전달하는 문자였다.


수업은 매주 목요일 10시에서 12시로 두 시간씩 진행된다. 무용에 '무'자도 모르는 쌩초보다. 주변에서 한국무용의 어떤 점이 좋으니 한 번 해보라는 권유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연인지 그즈음에 나는 송소희의 'Not a dream'이라는 노래에 푹 빠져있었다. 전통 국악은 아니었지만, 그의 창법에 국악 특유의 꺾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노래였다. 그 흥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한국무용' 수업이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가 갈급했던 요즘, 나는 과감하게 우선 등록을 하고 고민해 보기로 했다. 선등록 후고민!


수업하는 날짜가 가까워져 왔지만, 나는 나의 결정을 철회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첫 수업에 참석했다. 오전에 시어머님 병원 모셔다 드릴 일이 있어서 수업에 늦으면 어떡하나 우려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딱 도착하였다. 준비해 간 건 딱히 없었다. 수업시간에 알려 주시리라 생각했다. 25년도 새학기에 처음 등록한 멤버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었다. 인원이 많지 않았기에 수준별로 반을 나눠 수업이 진행되길 바라는 건 배부른 소리였다. 기존 멤버들이 하던 작품 무용은 루틴대로 하면서 새롭게 나가는 작품에서 하나씩 꼼꼼하게 알려주시는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처음부터 꼼꼼하게 배우고 싶었던 신입 회원 중 한 분은 영 탐탁지 않아 보이셨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회 아니면 어디서 또 한국 무용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감지덕지라 여겼다. 첫 술에 배부를 수도 없고, 그저 반복하다 보면 터득하게 되는 것이 있겠지 하며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무턱대고 따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어쩌면 해파리가 따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 채 혼이 쏙 빠진 채로 그렇게 첫날 수업이 끝났다. 나의 1차 목표는 '빠지지 않기' 하나다.


그렇게 공중에서 팔을 휘젓고, 팔, 다리가 따로 놀고, 엇박자에 스탭이 꼬이기를 몇 주가 흘렀다. 노래가 들리고, 장단이 들리고, 장단에 맞춘 손발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살짝이다. 완벽하게 알았들었다가 아니라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아주 조금 보였다는 의미다. 그 빼꼼 보이고 들린다는 기분은 욕심이 나게 했다. 조금 더 빨리 선생님의 설명을 체득하고 싶었다.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쳐주시는 강사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 욕심은 쉬는 시간에도 거울을 보며 연습하게 했다.


가장 기본적인 스텝을 하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그때 함께 수업을 들으시는 한 분이 애정을 담아 힘을 빼고 걷는 법을 알려 주신다. 나의 다리는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꺾였다. 부드럽게 한옥 지붕 위 처마의 곡선처럼 춤도 그렇게 선을 그리라 하셨다. 갈 수 있는 만큼 가면 될 일이지 일부러 성큼 걸을 필요도 없단다. 아직 햇병아리인데, 조금씩 해나가란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될 일이지 처음부터 선생님의 동작을 맞추려 애쓰지 말란다. 이렇게 조언해 주신 그분은 여든이 넘으셨고, 무용을 배워서 즐기신 지는 10년이 훌쩍 넘으셨다.


'햇병아리'


다시 처음이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나는 '병아리'가 되었다. 이런 병아리에게 그 누구도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따라가도 뭐라 하지 않는다. 흥에 겨워 스텝이 꼬여서 두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려도 내가 즐거우니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장단에 맞춰 연습하는 기초스텝과 호흡만이라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언제까지 햇병아리로 남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서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지금을 또한 즐기련다. 나의 글쓰기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무지하니까 무식해 보여도 눈치보며 주눅들지 않고,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기! 나는 햇병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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