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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 헤라 Aug 02. 2023

힘들면 코노를 가렴

  둘째를 낳고 나는 몸도 마음도 더욱 힘들어졌다. 매일 밤 내 등에 매달려 자기도 재워 달라던 큰아이를 보면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고 밤에 통잠을 자주는 둘째를 보면 너무 예뻤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외출을 하는 마음이 조금 풀릴까 싶어 나는 혼자 영화를 보고 와야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어느 영화였는지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너무나도 나가고 싶은 마음에 영화표를 무작정 예매하고 젖먹이 둘째까지 떼어놓고 주말 어느 날 그냥 나가버렸다.     

 딸이 없는 사이 엄마는 사위와 이야기가 나누고 싶으셨나 보다.

혼내기 위해서도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닌, 당신 딸이 너무 힘들어하니 내 딸 좀 잘 살펴달라고 부탁하실 작정이었던 거 같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황급히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집에 가는 버스 편이 편하지 않으니 모셔다드리겠다는 사위의 말도 거절하시고, 나는 버스가 편하니 애들 보라는 말을 뒤로 하로 엄마는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셨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도 남편도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말해주지 않았다. 남편은 아예 엄마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이야기하지 않았고, 며칠 후 엄마와의 통화에서 그날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딸이 힘들어하니 도와주라고 하셨단다. 퇴근하고 힘든 건 알지만 잠깐씩이라도 아이들 돌보는 것도 집안일 하는 것도 도와주라고 하셨단다. 그러자 남편은 애 둘 돌보려면 힘드니깐 둘째를 낳지 말자고 했는데, 에 헤라가 둘째를 낳자고 했고 그러니 자기가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냥 엄마 마음이라도 편하시게 알겠다고 했으면 안 됐던 것일까. 엄마에게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야 자기 마음이 편했던 것일까.     

 후에 아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그날 그렇게 돌아가시고 아빠랑 소주를 드셨다고 하신다. 엄마는 술을 드시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적 기억에 엄마가 술을 더구나 소주를 드셨던 기억은 없다. 그런 엄마가 소주를 드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사위랑은 이야기가 통하지 않으니, 아빠한테 가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물론 아빠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시지는 않지만, 가끔 우리를 불러 맛있는 걸 사주실 때면, 사위에게 돈 열심히 벌라고 사주는 것이라며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돌려 말하면 이해할 인간이 아닌데..

(아빠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야 해)


 결혼하기 전 나의 결혼을 반대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우리 엄마 그리고 나의 영혼의 단짝 친구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했던 말을 좀 귀담아들을 걸 그랬다.

 결국 나는 나의 선택으로 아픔을 겪고 있다. 누군가의 탓을 하고 원망도 할 수 없다.     

 요즘도 아주 가끔 엄마가 집에 오신다. 예전처럼 오셔서 청소나 정리를 하진 않으신다.

아마 당신의 도움이 딸내미에게 어쩌면 정리 잘하고 청소 잘하라는 압박으로 느껴질 거라는 걸 아셨던 걸까.


 그러나 나의 병에 가장 속상한 사람도 가장 많이 걱정하는 사람도, 꾹꾹 참았다가 이따금 한 번씩 조심히 잔소리하는 사람도 엄마다.     

 엄마는 나의 우울증이 답답한 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엄마는 나에게 아직 아이들이 어려 일을 하러 나가기도 편한 상황이 아니니 코인 노래방을 다녀보라 추천해 주셨다.     

 순간 우리 엄마 코인노래방도 아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랬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도 술도 노래방도 사랑했던...

(엄마는 아마 그때의 딸내미가 가장 행복해 보이셨던 것 같다)     

사실 코인노래방이 너무 가고 싶었다. 거긴 무인이니깐

(어느 순간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다 무인이 편하다)     

그런데 그동안 가는 것도 왠지 모르게 겁이 났었던 거 같다. 뭔가를 하면 무슨 일인가 일어나니깐. (웬만하면 안 하던 일은 하지 말고 살자를 삶의 모토로 삼으며...)     

 그런데 요즘은 뭔가 한다. 나를 만나는 일 나를 마주하는 일.

(나 혼자 조용히 집에서 하는 일이니 보는 사람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은 나를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듣는 사람 없이도 혼자 웃고 울며 이야기한다. 섭섭했던 거 짜증 났던 거 즐거웠던 거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이 스스로 이야기해 보고 있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그렇게 혼자 이야기하다 보면 속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조만간 코인노래방에 가서 서문탁, 소찬휘, 빅마마 노래를 풀로 예약해 놓고 부르며 마음속 남은 응어리를 조금 풀어봐야겠다.

(근데 코노도 예약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건가 한 곡에 얼마씩 넣어야 하는 건가...모르겠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대신 나의 목은 가겠지만, 갈 때 물도 한 통 큰 걸로 챙겨가야겠다.     

 조금씩 조금씩 응어리를 풀다 보면 언젠가는 응어리가 다 풀리고 우울증도 가고 불안장애도 가고 남은 자리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돌아와 자리 잡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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