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서야 아파트 지하주차장 자동문을 들어올 때 무언가를 멀리 응시하며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서 계시던 남자분이 생각이 났다.
"혹시... 지팡이를 짚으셨나요?"
"네에"
잠시 후 그 남자분이 올라오셨다.
"제가 들어오는 걸 못 보셨지요?"
"네! 조금은 보여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저는 주차장에서 선생님 바로 앞을 지나 들어왔습니다"
"아! 그래요~"
얼마 전 현관안쪽에서 넘어지다 거울에 부딪쳐 거울이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거울이 틀에서 떨어지면서 깨질까 봐 걱정이 된다며 원래대로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넘어진 이유는 앞이 잘 안 보이는 장애가 있다고 하셨다. 오늘 방문한 이유는 견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통상적인 견적을 드리고 돌아와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되었다. 틈이 날 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한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시물레이션해 보기도 했다.
드디어 작업약속한 날짜가 되어 방문드렸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에 박혀 있는 거울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몰딩을 제거해서 거울을 들어내고 벽을 보강해야 한다. 목공작업에 필요한 콤프레셔와 타카, 톱을 준비했다. 몰딩도 새로 붙여야 하기에 구입했다.
작업을 하려는데 의뢰인이 불편한 몸으로 내 옆에 서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서 계시는 자세가 넘어질 듯 불안 불안하여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식탁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는 앉아서 지켜보시라고 했다.
의뢰인이 고맙다고 한다. 내 집도 아니고 내 의자도 아닌데 말이다.
의뢰인의 아내분은 시원한 음료를 가져다주신다. 의뢰인과 말벗이 되어 작업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는지 의뢰인의 아내분도 말수가 많아지셨다.
작업하는 동안 나는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편안하게 호흡하는 방법을 말씀드렸다. 스트레스에 좋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의뢰인은 어느 대기업중공업에 다녔었다고 했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현장의 작업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밤낮으로 과로하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 날 쓰러졌다고 한다. 다시 의식을 찾았을 땐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지팡이를 짚게 생긴 것이다. 그 뒤 회복이 안되었다고 하셨다.
의뢰인은 아내분을 삼전에 다니는 분이라고 소개를 받아 교제를 하다 결혼을 하셨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결혼 1순위인 듯했다. 결혼하고 나서 삼전협력업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은근히 속았다는 내색을 하신 듯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의뢰인 아내분의 한마디가 모든 의문을 해소시켜 주셨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시골어른들은 삼전이나 삼전의 협력업체나 다 같은 삼전이라고 하세요"
내가 빵 터졌다. 웃으면 안 되는 순간인데 어찌나 두 분이 웃기던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거울은 떨어진 부분이 맞붙도록 피스를 깊게 박아서 뒤판이 딸려 나와 떨어진 부위들이 밀착되도록 수리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은 실리콘으로 붙이고 메꾸어 마무리했다. 몰딩도 살려서 그대로 붙였다. 피스박은 자리들은 인테리어 스티커를 붙여 약간은 티가 나지만 견적의 반값이 되었다. 견적의 반값에 수리했다는 말에 의뢰인부부는 매우 좋아하신다. 작업도 맘에 들어하셨다.
작업이 마무리되고 의뢰인의 아내분이 점심식사를 챙겨주셨다. 의뢰인과 단 둘만의 식사를 준비하셔서 나는 아내분께 같이 식사하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여 셋이서 같은 식탁에 앉았다. 반찬은 나물과 채식이 주를 이뤘고 간 또한 심심한 것이 이 또한 의뢰인을 생각한 아내분의 건강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심심하게 먹는 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의뢰인의 아내분이 말문을 열었다.
"이 이가 쓰러지고 나서 내가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렸다.
"정년을 하고 나서 어디 여행을 가고 싶어도 이이가 몸이 불편하니 갈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은 손주들도 봐달라고 하는데..."
의뢰인의 아내분은 돌봄 해야 하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었다.
남편분과 산책을 나가고 싶어도,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모임에 나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하니 답답하다고 하신다.
점심식사 후 오래된 블라인드의 수평을 맞춰드리고 댁을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내분의 바람은 남편분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좀 더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신 듯했다. 남편분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셨고 아내분은 부족하게 느끼는 듯하셨다.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한다. 나의 건강은 나만의 건강이 아닌 것이다. 나의 부족한 건강을 고스란히 배우자가 채우고 책임져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수리해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마음은 태도에서 나타난다.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태도도 그렇지 않게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