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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보인다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의뢰인은 수도요금이 3배가 넘게 나왔다고 하셨다. 관리사무소에 연락은 해보셨냐고 하니 관리사무소 직원은 화장실 변기부품이 낡아서 수도가 샌다며 수리하라고 했단다. 변기 전체사진과 물통안쪽에 부품이 보이게끔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드렸었다. 보내온 사진은 비데에 가려 어떤 형태의 변기인지 확인이 안 되었고 물통 안쪽 사진은 어두워 잘 보이질 않아 다시 요청드렸다. 의뢰인은 90이 다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와서 확인해 달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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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부품이 노후되면 누수가 생길 수 있다. 특히 필밸브에 이상이 생기면 물탱크 안에 물이 차지 않거나 넘쳐흐르게 된다. 이번 경우는 전자에 해당되었다. 물탱크를 분리해서 노후된 부품들을 풀어내었다. 의뢰인은 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시더니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탈없이 썼다고 하시며 수도요금이 3배 넘게 나왔다고 강조하신다. 물탱크를 풀어내면 물탱크와 몸체 사이, 변기 뒷면이 20년 가까이 사람손이 닿지 않은 상태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커먼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 있다 못해 덩어리져 있다. 세제를 뿌리고 곰팡이를 닦아내고 있는데 어르신이 흡족하셨는지 말을 걸어오신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요?"

"네! 어르신?"

갑작스러운 질문에 되묻게 되었다.

"아!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어르신들만 계시는 댁에 방문하면 KBS나 TV조선 뉴스를 보고 계시는 경우가 있다. 젊은 세대는 MBC나 JTBC 뉴스를 보는 경우들이 있다.

이 질문에 나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으셔야 되겠죠"

"어?"

"대통령도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할 수가 있어!"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어르신"

"***은(야당대표) 빨갱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거~육사에 있는 동상 철거한 거!"

"홍범도 장군요?"

"어! 거 김일성이하고 625일으켰잖아!"

"네? 625 전에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625를 일으켰을 까요?"

"나라가 너무 어수선해서 탄핵은 안된다고 봐!"


어르신은 진지하셨다.


"어르신 무인기 뉴스 보셨죠? 우리나라 전쟁이라도 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오물풍선 보내니 그런 거잖아!"

"그렇다고 무인기를요!"


어르신댁의 욕실 맞은편 방에는 여러 묶음의 책들이 가득했었다. 어르신은 책을 즐겨 읽으시고 출간도 하셨다고 하신다. 어르신은 귀가 잘 안 들리신다며 작업이나 빨리 해달라고 하신다. 작업을 마치고 어르신이 집필하신 책을 선물로 받았고 영광스럽게 친필사인도 받았다. 어르신은 부인과 두 분이 생활하시다 보니 이방인인 내가 많이 반가우셨던 것 같았다. 정치이야기도 좀 더 젊은 세대에 물어보고 싶으셨던 것 같으셨다.


수리 하루 후 점심을 먹으려는데 어르신이 전화를 하셨다. 수리를 다녀간 이후 변기는 이상이 없는데 비데가 안된다고 하신다. 비데는 만지지 않았으니 전원을 뽑았다가 다시 꼽고 해 보시라고 해도 안된다고 하신다. 어르신댁에 비데가 안된다고 하시니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점심식사를 뒤로하고 어르신댁에 바로 방문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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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비데의 '세정버튼'을 누르시며 비데 작동이 이상하다고 하신다. 비데에 앉으셔서'비데버튼'을 눌러도 안되냐고 여쭤보니 안된다고 하신다(비데는 앉아서 '비데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옴). 비데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혹시나 싶어서 어르신께 못쓰는 박스나 신문을 달라고 했다. 신문을 비데 위에 씌우고 앉았다. '비데버튼'을 누르니 신문을 깔고 앉은 엉덩이 중심부 그곳이 간지럽게 물줄기가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르신께 깔고 앉아있던 신문지를 뒤집어서 보여드렸다. 신문지 중심에 선명하게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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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어! 되네"하신다. 나는 바지를 내리시고 직접 앉아서 해보시라고 청했고 어르신은 비데에 앉아 테스트를 하시더니 된다며 기뻐하신다. 어르신은 수년간 사용하신 '비데버튼'과 '세정버튼'의 용도를 혼동하신 듯하셨다. 하필 수리를 마치고 돌아간 직후에 혼동이 온 것이다. '세정버튼'이 '비데버튼'으로 보이셨을까? 비데가 작동이 안 되면 '비데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마음은 '세정버튼'이 '비데버튼'으로 보이신 듯하셨다.


눈으로 인식되는 것은 마음에 따라 해독이 달라지는 듯하다. 비데의 버튼 같이 명확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은 쉽게 마음을 고칠 수 있겠지만 깊이 있고 애매모호한 것들은 쉽지가 않다. 이해가 다르고 갈등이 심화된다면 기존의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깊이 있는 성찰의 마음과 눈이 필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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