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가정에 어느 날 불청객이 들어왔다.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크지도 않았고 사납지도 않았다. 작고 똘망똘망한 까만 눈과 마주친, 180이 족히 넘는 키에 100kg이 더 돼 보이는 집주인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잠도 잘 수 없었고 그렇다고 내 좇을 수도 없었다. 불청객은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조차 보이질 않았다. 밤이 되면 작게 갉는 소리는 어둠의 정적을 타고 두려움의 공포로 다가왔다. 집주인은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가족들에게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이 두려움은 가족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가장만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다. 불청객은 공포 그 자체였다.
"사장님 저희 집에요! 쥐가 들어왔어요!"
"네! 주택이신가요?"
"아니요 아파트 1층입니다!"
"네에! 아파트예요?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베란다인데요, 지하 배관이 올라오는 단열재를 갉아먹고 올라온 것 같아요!"
"관리사무소에 연락은 하셨나요!"
"네! 와서 폼만 쏘고 갔는데 계속 소리가 나요! 사장님 좀 살려주세요!"
"크기는요? 보셨나요?"
"작아요!"
베란다에 설치되어 있는 지역난방배관은 지하에서부터 올라왔다. 단열재로 감싸진 난방배관을 뚫고 쥐가 들어온 것이다. 밤에 엄지손톱크기의 쥐약을 놓았더니 아침이면 단열재를 갉아놓은 부스러기를 남겨놓고 쥐약은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의뢰인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배관의 틈들을 콘크리트나 철판으로 막아달라고 했다. 관리사무소에서 폼으로 막아놓았다고는 하지만 폼은 쥐가 갉기 놀이를 하기에 아주 적당해 보였다. 오히려 쥐구멍을 확인하기 위해서 뜯어내야 할 장애물이 되었다.
폼을 제거하니 갈아놓은 단열재가 드러났다. 단열재는 구멍이 뻥 뚫린 것이 지하세계와 인간세계를 오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의뢰인께 쥐가 나갔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이 통로를 막는다면 만약에 나가지 않고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네! 나간 것이 맞는 것 같아요!"
4개의 통로를 콘크리트반죽으로 철저하게 막았다. 그리곤 자기 전 쥐약을 놓고 자라고 했다. 만약에 안 나갔다면 쥐약이 없어지고 갉아놓은 잔재들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말씀대로 쥐약을 놓고 모처럼 아주 푹 잘 잤는데요?"
"네! 그랬는데요?"
"쥐약이 없어졌어요ㅠㅠ"
현장엔 갉아놓은 단열재부스러기들이 아주 조금 있었다. 어제 분명 깨끗하게 현장을 정리했는데... 증거를 남기고 간 것이다. 콘크리트로 막아놓은 아래쪽 틈은 견고하게 빈틈이 없이 잘 양생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범인이 있다는 말인데... 세탁기를 흔들어 봐도 선반의 물건을 치워도 범인은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위 어딘가에... 사다리를 놓고 조심스럽게 올라가 좁은 틈을 살폈다. 앗 저게 뭘까! 까만 줄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니 꼬리 같았다. 의뢰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배관내시경을 가져와 안쪽을 살펴보니 가관이 아니었다. 안쪽 단열재를 갉아 마치 새의 둥지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리를 잡았다. 크기도 상당했다. 의뢰인이 말한 거와는 다르게 작지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고 긴 드라이버로 범인의 아지트를 건드려 나오게끔 유도했다. 범인이 배관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왔다.
'우당탕탕'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의뢰인이 미끄러지며 물건들에 부딪친다.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피해 달아나려 하는 것인지 행동으로 봐선 분간하기 힘들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범인은 세탁기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의뢰인과 함께 세탁기를 끄집어내었다. 범인이 놀랬는지 다시 선반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숨는다. 다시 선반의 물건을 들추니 기둥을 타고 내려와 세탁기 밑으로 들어갔다. 범인의 루틴을 읽은 것이다. 범인을 몽둥이로도 집게로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범인은 직접 손으로 잡아야만 한다는 것을... 쥐구멍 막으려고 왔다가 쥐를 잡게 생긴 것이다. 범인이 도망칠 수 있도록 베란다의 작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범인은 그쪽으로 가질 않았다.
집수리를 다니다 보면 귀여운 반려묘나 반려견들이 잘 따르기도 해 수리하며 놀아주기도 한다. 가끔은 지하주차장에서 생쥐를 만나기도 하는데 자세히 보면 귀엽고 깜찍한 면도 있다. 이번경우는 자신이 있어야 할 세계를 넘어 인간의 공간에 들어온 것이다. 새파랗게 질린 집주인은 가족을 지켜야 했고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했지만 힘이 부족해 지원군을 부른 것이다. 그게 나라니... 나는 동물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의뢰인에게 세탁기를 흔들 준비를 시키고 기둥에 근접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신호를 하니 세탁기를 심하게 흔들어대었다. 범인이 선반기둥을 타고 쏜살같이 올라간다. 두꺼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선반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범인을 덥석 잡았다.
"쥐가 작다고요! 이게 작은 겁니까?"
쥐는 한 손에 잡기도 부족할 정도로 컸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쥐를 잡다 보니 손을 기둥에서 뺄 수가 없었다. 다른 한 손으로 쥐의 머리를 잡아 창밖으로 내 보내려고 했으나 쥐가 이빨을 드려내며 물려고 한다. 손에서 흥분한 쥐의 맥이 느껴졌다. 이를 어쩐다지!
둥지를 틀었던 자리
잠시 후 쥐의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생을 하다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의뢰인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다니...
"정말 미안해! 그러게 선을 지키지 그랬어!"
쥐가 있던 둥지를 살펴보니 안쪽의 단열재를 모두 갉아내 버리고 둥지를 만들었다. 둥지 안에는 여태 집주인이 놓았던 쥐약덩어리들을 먹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영리한 놈이었다. 의뢰인은 집식구들에게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집안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의뢰인은 감사하다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음이 가벼워 보였으나 나는 가볍지 않았다. 아직도 손끝에 작은 맥이 느껴지는 것 같아 몹시 무거웠다. 오늘 밤 편히 잠들긴 힘들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