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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커피 한잔 주세요.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바람이 제법 차갑고 매섭게 볼과 귓등을 아리게 쓸어대었다. 이런 날은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들어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며 몸을 녹이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앗! 일과 끝나면 전화를 꺼놓던지 해야지 원!'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목소리는 문이 닫히질 않는다고 했다. 일과 끝났으니 가능하면 내일 수리해 드리겠다고 했다. 의뢰인은 카페를 운영하는데 문이 닫히질 않아서 퇴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좀 봐달라고 사정을 한다. 추운 날씨에 해가 저무니 더욱 쌀쌀해졌다. 카페에 문을 닫지 못한다면 수도 동파는 물론 퇴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문제가 생기면 좀 일찍이라도 연락을 하던가...


카페는 제법 넓었다. 인테리어는 업자의 손길보다는 본인이 직접 한 듯 알뜰하고 편안해 보였다. 카페엔 사장님과 알바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있었고 문제의 문은 카페 뒤쪽 통로였다. 1층 전고가 높은 건물이라 유리문이 일반문에 비해 1.5배는 더 높아 보였다. 문이 높다 보니 혼자서는 문을 떼고 플로우힌지(유리문 아래에 유압으로 문을 조절해 주는 장치)를 교체하기에는 무리 같아 보았다. 문의 상태를 살피니 문이 아예 틀에 맞지 않을 정도로 바닥에 끌리고 틀어져 있었다. 비용을 아끼려고 했는지 분명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문의 상부에도 손을 덴 것으로 보였다. 소위 일을 더 키워 놓은 것이다. 이렇게 높은 문을 여자분이 했을 리는 없고... 조심스레 누가 문을 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더니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대답을 한다.

의뢰인이 보내온 닫히지 않는 문상태

"아~손님이 춥다고 고쳐보겠다고 했었어요. 왜요?"

"문이 생각보다 많이 틀어져있어서요!"

"버스기사님인데 고쳐주신다고 열심히 해주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일을 키워놓고 가셨어요?"

"하시다가 못하겠다고 사람 부르라고 했는데 그분 열심히 해주셨어요!"


말을 듣다 보니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같으면 '일이 더 커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나 '일이 더 커졌나요?'라고 되물으며 걱정스러워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이 추운 날씨에 이 늦은 시간에 사람을 불러놓고 말이다. 문의 플로우힌지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헉! 이 문의 힌지는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힌지박스는 녹으로 곧 무너질 듯했고 조절 볼트들은 녹으로 산화되어 있었다. 의뢰인은 얼마 전에 다른 수리기사님이 틀어진 문을 수정해 주셨다고 한다.

부식이 심한 플로우힌지/부러져 나간 조절볼트 자리

플로우힌지 교체비용은 정해져 있다. 사람을 불러 조정을 할게 아니라 교체를 했었어야 했다. 비용을 아끼려고 하다 플로우힌지교체비용을 뽑고도 남을 금액을 쓰고 말 것이다. 이런 걸 소탐대실이라 했던가!. 의뢰인은 건물주가 싫어한다며 문이 닫히게끔만 해달라고 한다. 문의 상부에 버스기사님이 열심히 해놓은 일을 바로 잡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닥에 끌리던 문을 바로 잡고 보니 이번엔 성인 주먹하나 들어갈 정도로 닫히질 않고 문틀에서 벌어졌다. 얼마 전에 다른 기사님이 플로우힌지를 조절해 줬다는 말을 믿고 녹이 잔뜩 슬어있는 조절볼트에 윤활제를 뿌리고 스페너로 돌려 보았다. 어느 정도 힘을 주니 볼트가 힘없이 부러졌다. 옆에 있는 볼트도 돌려보니 힘없이 부러진다.


"이렇게 낡은 것들은 만지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이 사실을 의뢰인께 알렸더니 그럼 어떻게 하냐며 문이 닫히게 해달라고 한다. 작업차에 있던 적당한 크기의 철봉을 가져와 그라인더로 힌지를 조절할 수 있는 크기로 잘랐다. 날은 어두워 잘 보이질 않았고 차가운 바람에 손은 꽁꽁 얼어갔다. 알바로 보이는 분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기가 렌턴을 비춰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셨다. 자르고 조절하고 고정하고 하는 동안 알바분이 렌턴을 비추었다. '이런 분이 카페를 운영해야 하는데 말이다.(속마음이 속삭였다)'

부식으로 부러져나간 조절볼트를 대신해 철봉을 잘라 덧대었음

날이 추워서였을까! 작업하는 동안에도 카페엔 다녀가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나는 일과시간에는 손님들이 많이 다녀가시는지 물었다. 사장님은 원래 이렇게 뜸하다고 한다. 요즘 불경기라고는 하지만 손님이 뜸해도 너무 뜸한 카페였다.


드디어 문이 문틀에 꼭 맞게 닫혔다. 사장님은 영업 중에도 찬바람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을 닫아걸고 퇴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뢰인은 수리비를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물어왔다. 순간 마음이 복잡했다. 앞에 다녀간 수리기사님의 비용에 지금 수리비용을 합치면 힌지를 새것으로 갈 수 있는 금액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카페에 얼마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시간이 제법 걸렸고 늦은 시간이지만 간단한 기본 수리비 3만 원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의뢰인의 반응은 의외였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들어간 부품도 없고 문만 닫히게 되었는데 더 싸게 해 달라는 것이다. 손님 없는 텅 빈 카페의 아늑한 조명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잠시 고민하다 이번엔 수리비로 그냥 달달한 커피 한잔 주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진열대에 있던 소금빵 2개를 가리키며 이 빵은 내가 사가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그래도 되겠냐고 했지만 최소비용에 더 깎겠다는 금액은 따뜻하고 달달한 라테 한잔과 소금빵 2개 금액정도면 될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개인볼일이 끝나고 지하철로 집에 오늘 길이라고 하길래 역에서 아내를 태웠다. 날씨가 추웠기에 커피를 건네며 몸을 녹이라고 했다. 아내는 "웬 커피야?" 묻길래 "응, 수리비로 받은 비싼 거야!" 했더니 아내가 웃는다. 아내는 커피를 손에 쥐고 온기를 느끼며 한 모금 마셨다.


"응! 달아! 이거 시럽을 이렇게 많이 넣었어!"

"엉! 달달한 커피 한잔 달라고 했는데 라테종류 아니야?"

"아니! 그냥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듬뿍 넣었는지 못 먹을 정도로 엄청 달아!"

"정말?"

아내의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시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한때 커피를 풍미했던 입장에서 달달한 커피는 상식적으로 라테종류로 알고 있었다.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듬뿍 탔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 '다음'에 검색을 해보았다. 달달한 커피 종류는? 캐러멜마키아토, 카페모카, 바릴라라테 등이 나온다. 하기야 사람마다 이해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 추운 날 밤, 문이 닫히지 않아 퇴근을 못한다는 것을 해결해 준 대가로 달달한 커피 한잔 달라고 했던 내게도 문제는 있었다. 커피는 정말 달았다. 그런데 씁쓸한 뒷맛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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