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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스마트폰은 집수리에유용하게 쓰인다. 예전 같으면 현장에 가서 일일이 확인을 하고 견적을 내고 했을 법도 한데 지금은 수리를 원하는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잘 찍어 보내주면 된다. 단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세세하게 요청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좀 순조롭지 않아 뜻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필요한 부분의 사진을 요청해도 뜻하지 않은 사진들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땐 보내온 사진들을 토대로 이리저리 살피고 확대하고 시물레이션 해서 작업에 필요한 공구와 부품들을 준비해야 한다.


싱크대 상부장은 벽과 천장에 붙어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수납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무서운 유리그릇이나 냄비등을 올려놓는 경우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상부장의 무게와 안에 수납되어 있는 물건들의 무게가 더해져 상부장이 아래로 처지는 일들이 생긴다. 처지고 처지다 못해 수납장이 파손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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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보내온 사진

의뢰인은 부모님 댁에 상부장이 처져있다며 수리를 문의해 왔다. 의뢰인의 아버님과 통화를 하는 순간 의뢰인인지 아버님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아버님의 목소리가 아드님 같이 젊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요청하고 받은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도저히 견적이 안 나와 가보면 알겠지 싶어 무작정 약속을 잡았다. 아버님은 작업시간을 오전 9시부터 정오 12시까지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다셨다. 눈이 내린 당일 아침 날씨는 몹시 쌀쌀했다. 아파트 출입구엔 주차장소도 없어 단지 뒤쪽에 주차를 하고 아내와 함께 눈 덮인 길을 공구카트를 끌고 한참을 돌아 입구에 도착했다. 날씨가 몹시 추운 것이 '날 잡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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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보내온 사진

막상 현장에 방문해 보니 상부장은 사진에서 파악한 것과는 다르게 덩치가 상당히 컸다. 여느 상부장의 2배가 넘게 벽에서부터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 더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커다란 상부장이 공중부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렇게 큰 장을 떼어내어 들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수리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 작업에 의욕이 나질 않았었다.


아내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못 한다고 하고 그냥 집에 갈까? 장이 엄청 커"했더니 아내는 "그래도 할 거면서"라는 의미로 픽 웃는다. 상부장은 뒤쪽 벽에 지지목을 설치하고 그곳에 장을 달아 고정한다. 사진 속의 좌측 부분은 뒤쪽벽에 지지목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장을 달았다. 우측에 있는 장에 기대게 만들어 장의 벽과 벽을 피스로 고정한 것이다. 이러니 세월이 지나면 아래로 처질 수밖에 없다. 장의 문짝을 떼어내고 장 밑에 붙어있는 간접등과 라디오모니터, 식기걸이를 떼어내었다. 그리고 뒤쪽 벽에 지지목이 걸려있는 장을 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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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목이 짧은 모습/지지목이 걸리는 양쪽 홈

장을 떼어내니 지지목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지목을 지탱하는 앙카못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고 지지목 자체도 지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 상부장의 한쪽면은 허공에 걸어놓은 것이다. 이러니 처질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목을 연장하고 벽을 타공 하여 앙카못을 추가로 박았다. 아내와 상부 장 처짐 수리를 여러 건을 하다 보니 손발이 잘 맞았다. 아내는 척하면 척 조수역할을 넘치게 잘하고 있었다. 아내는 어느새 그 댁 어머님께 초콜릿이며 곡물바, 두유 등을 얻어 내게 먹였다.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는지 말도 걸어오시며 마음의 경계를 풀어 버리신 듯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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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상부장/벽 지지목을 보강하고 천장을 타공하여 상부지지목을 만들어 고정함

큰 장이 공중부양되어 있는 것을 지탱하려면 천장의 콘크리트를 뚫어 앙카못을 박아 장의 상단 부분을 걸어 지탱하는 방법이 최선일 듯싶어 열심히 천장을 타공 했다. 시간이 어느새 11시가 넘어 약속된 12시에 가까워져 갔다. 손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아버님이 방 안에서 나오셨다. 아버님은 기업 리더십 강의를 하고 계신다며 세미나 참석으로 12시에는 댁에서 출발해야 하셨기에 시간을 그리 정하신 거라 하셨다. 그런데 어머님이 계시니 천천히 해도 된다며 서둘지 말 것을 권하셨다.


아버님은 무엇보다 힘든 일을 하면서 오손도손 대화하며 일하는 우리 부부가 너무 보기 좋으셨다고 하신다. 우릴 보고 도를 닦으셨는지 도인 같다고 하셔서 크게 웃고 말았다. 아버님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많은 강의를 하다 보니 자신의 내면에서 긍정적으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만나셨다고 하신다. 그중 우리도 해당된다고 하셨다. 차를 좋아하면 차후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고 하신다. 우리도 명상을 해서 차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어쩐지 다르더라" 하신다. 아버님은 급히 세미나로 출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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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정한 상부장

시간적 여유가 생긴 우리 부부는 좀 더 튼튼하게 장을 다시 달았다. 장의 윗부분과 콘크리트 천장을 앙카못을 박에 고정하니 견고하게 장이 달렸다. 공중부양된 장을 튼튼하게 보강한 장에 연결하니 처진 부분 없이 튼실하게 지탱이 되었다. 어머님이 장을 수리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시더니 매우 만족하신다며 얼굴이 밝아지셨다.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어머님은 액자를 하나 걸게 벽에 못을 하나 박아 달라고 하신다. 액자의 그림은 살아있는 듯 생동감 있는 다람쥐가 들어 있었다. 연필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그림을 보자 아내는 감탄을 자아냈다. 아내가 하고 있는 명화 그리기와 어반스케치를 어머님도 하고 계신 것을 알고는 금방 웃음꽃을 피워냈다.

KakaoTalk_20250217_072405023_06.jpg 벽에 달아드린 어머님의 연필 스케치

몹시 차가웠던 날씨도 눈이 얼어붙은 미끄러운 도로도 무겁고 크게만 보였던 공중부양 장도 촉박했던 작업시간도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힘든 장애물일 수 있었다. 이럴 땐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잘 되면 좋고 안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헤쳐나가다 보면 길이 보이게 되고 일이 하나하나 기분 좋게 풀려나간다. 덕분에 좋은 인연도 만나게 되었다. 힘듦과 두려움이 크게 보일수록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 또한 큰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님 말씀처럼 자신의 내면에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방향이 설정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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