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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얼마 전부터 출입문을 여닫을 때마다 도어록에서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라는 멜로디가 울려 나온다. 아내는 건전지가 다 되었다며 갈아야 한다고 했다. 저녁시간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이리저리 찾아 헤맨 결과 구석 진열대에서 건전지를 찾았다. 편의점 건전지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싶어 막 돌아서려는 찰나 평소 보이지 않던 편의점 사장님이 계산대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직접 계세요?"

"아~ 예~ 요즘 장사도 안되는데 알바를 쓸 수 있나요!"

"그렇죠! 요즘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은 듯합니다. 매출이 많이 줄었나요?"

"많이 줄었죠! 뭘 사도 예전처럼 여러 개를 사지 않아요!"

"그러게요. 큰일입니다!"


아내는 가끔 들르는 저가 커피점에도 평소 보이지 않던 사장님이 직접 나와 일을 하신다고 했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평소보다 손님이 뜸한 것을 보고 매출이 줄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하기사 올초부터 오더가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웬만해선 집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아내와의 차량이동 중 회의에서 파악한 원인은 내란사태 이후 경기가 너무 좋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와중에 차량 리콜이라니... 불이 날 수도 있다고 하니 일도 없는데 이 기회에 미루고 미루던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입고시켰다.


"여보세요?"

"집수리하는 사장님이죠?"

"네~ 안녕하세요?"

"주방에서 뜨신물이 안 나오는데 수전 갈아주는데 3만 원이면 된다면서요?"

"아~선생님, 요즘은 5만 원 정도 합니다!"

"예!!! 아니 내가 철물점을 세 군데나 돌아다녔는데 가는데 3만 원이라고 하던데!"

"아~ 예전엔 그랬던 거 같아요!"

"아~글쎄 철물점에서 3만 원에 된다고 했어!"

"아~ 그러시면 그 철물점에서 교환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는 갈아주지 않는다고 해!"
"네!... 갈아주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말을 했어요!"
"아 그렇다니까!"


어르신은 뜨신물이 나오는지 더 지켜보고 연락하시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까지 어르신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많이 찾으신다. 인터넷에 밝은 분들은 온라인과 비교해서 물건을 구입해 놓으시기도 하신다. 그렇지만 매장에 들러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듣고 신뢰를 바탕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더 안심이 되는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시는 경우들이 많으시다. 오늘따라 쌀쌀한 날씨에 어르신은 철물점 세 곳을 찾아다니신 듯하셨다. 한푼이라도 아끼시려는, 어찌 보면 우리의 미래 자화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리콜을 마치고 전날 세탁실에 설치해 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샌다는 이삿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이번 경우도 수도꼭지를 사다 놓고 설치만 의뢰한 집이었었다. 급하게 햇반으로 점심을 때우고 방문해 확인해 보니 설치에는 문제가 없었고 수도꼭지와 세탁기를 연결하는 커플링부위에서 물이 새는 것이다. 이를 어쩐다. 사다 놓은 제품 설치한 나와는 상관없지만 의뢰인이 기댈 수 있는 곳이란 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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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던 새 수도꼭지에서 커플링을 빼 그 댁 수도꼭지에 끼웠다. 딱 맞기는 했지만 조금씩 물이 누수가 된다. 원인은 그 댁 세탁기 호스의 체결부위가 노후된 것이다. 고무패킹을 조절하여 물이 새는 것을 조치했다. 의뢰인은 무턱대고 무상처리 해달라고 한다. 그 외에도 정수기를 설치하고 간 후 물이 샌다는 주방 수도도 교체해 드렸다. 집을 매수한 의뢰인은 매도인과 중개사분께 연락을 해서 누가 비용을 부담할지에 대한 실랑이를 한다. 결국 매도 매수인이 5대 5로 부담하기로 결론이 났다.


추운 날씨에 찬물을 만지며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해서일까! 몸에 갑자기 냉기가 파고들더니 어깨에 담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갈증을 달래려 찬 생수를 마셨다.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속이 울렁거린다.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좀 전에 마셨던 물을 모두 토해 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또 맑은 물을 뿜어 내었다. 집에 도착해서 한번 더 뿜어 내고서야 진정되었다. 이렇게 많은 물을 마시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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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급히 물을 끓여 유단포에 담아 품에 안겨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품에 들어오니 기운이 순환되면서 살 것만 같았다. 스르륵 잠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둘 뇌리에 스친다. 그중 어르신댁에 따뜻한 물은 잘 나오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아침 9시를 기다렸다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어르신은 따뜻한 물이 아직은 잘 안 나온다고 하신다. 그래도 더 사용해 보고 주방수전을 구입하시겠다고 하셨다. 어르신이 원하시는 금액에 수전을 교체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고맙다고 하시며 수전을 구입하면 꼭 연락하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주변 철물점에서 주방수전을 구입하여 의뢰인에게 설치해 드리진 않는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철물점에서 판매하는 주방수전이 싸다 비싸다 말하기는 어렵다. 설령 어르신께 철물점 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해드릴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흐름에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르신이 동네 철물점에서 수전을 구입하시고 내게 설치만 의뢰하시듯 말이다. 하지만 제삼자가 철물점 가격을 결정하지 않듯 흐름에 맞게 각자의 몫으로 남겨놓으면 어떨까 싶었다. 3만 원이란 설정된 금액에 막혀 어르신은 무상으로 설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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