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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이 죄인가요?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저는 이 집을 구입해 놓고는 한 번도 살아보질 못했어요... 이 집이 어떤 집인데...!"


부동산 소개로 방문한 아파트는 방금 막 임차인이 이사를 나간 상태였다. 집 곳곳에 수리가 필요하다며 견적을 의뢰했기에 방문한 집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엉망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단지는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 분양 후 비슷한 시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기에 어느 정도는 비교하여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도배하는 부부 사장님들은 도배와 싱크대를 담당하시겠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욕실에 곰팡이 핀 실리콘을 제거하고 다시 깔끔하게 도포하는 것과 터져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세면대 수전과 배수관을 교체하고, 오락가락하는 삼파장 형광등을 요즘 LED전등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상태는 그 정도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렇게 오염되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껏 여러 집을 방문해 보았지만 이렇게 망가진 집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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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분인 임대인은 속이 상했는지 한숨만 내쉰다. 임차인이 10년을 사는 동안 수리해 달라는 부분들은 꼬박꼬박 수리해 줬다고 했다. 그런데도 집이 이지경이라니, 나는 임대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달리 보면 임차인들이 수리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집이 이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임차인들이 나가고 나서 이것저것 수리를 의뢰하는 것을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은 임차인들이 수리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들어주었다고 했다.


싱크대의 상판은 기름때로 잔뜩 덮여있었다. 곰팡이로 오염된 실리콘을 제거하고 다시 작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주방후드는 기름으로 절여놓은 듯 찐덕찐덕하게 기름에 찌들어 있었다. 후드를 작업하기 위해 손을 댈 때마다 손이 기름에 오염되어 여러 차례 일회용 비닐장갑을 갈아껴가며 작업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주방바닥 타일은 흔들리는 한두 장만 다시 붙여주면 된다고 하더니 깨진 것만 4장 정도 되었고 대부분이 들떠서 흔들리고 있었다. 집주인은 낙심했는지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집을 이렇게... 임대인이 죄인가요?"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견적보다 추가금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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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기는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잡아놓은 수리 일정이 이 댁의 수리가 추가되어 늘어지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의뢰인과의 약속 또한 매우 중요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야 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거나 서둘러야 했기에 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삼파장 전등을 떼어내고 경제적이고 품질이 괜찮은 LED전등으로 교체를 해나갔다. 주방과 주방 주변에 있는 전등들은 기름에 찌들어 있었다. 요리할 때 나오는 유증기들이 후드를 통해 배기되지 못하고 주변에 있는 싱크대와 집기들을 오염시킨 것이다. 임차인들은 건강에도 안 좋았을 텐데 어떻게 생활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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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은 청소를 아예 하지 않고 살았는지 곰팡이와 찌든 때로 오염이 심각했다. 아무리 청소를 안 해도 이렇게는 되지 않는데 말이다. 입주 청소를 하고 작업을 하면 좋았을 텐데 다음 임대인들이 들어와 하루 이틀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한 일이 생긴다. 우리 부부는 오염된 실리콘을 제거하고 다시 깔끔하게 실리콘을 발라 나갔다. 문제는 변기다. 변기와 타일을 붙여놓은 백시멘트뿐 아니라 변기 자체도 너무 오염이 되어 있었다. 변기의 백시멘트를 작업하기 위해서는 기존 백시멘트를 제거하여야 한다. 주변에 때와 곰팡이가 있으면 다시 작업을 해도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 화장실은 실리콘만 새로 작업했는데도 분위기가 깔끔하게 살아났다.


어찌어찌해서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갔다. 임대인은 수리항목을 추가로 요청했고 그때마다 한숨도 깊어져 갔다. 우리가 임대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애초에 뽑았던 견적을 유지하는 것과 최소금액을 청구하는 일일 것이다. 분양받아 살아보지도 못한 집을 수리하는 어두워진 마음을 치료하는 데에는 금융치료가 최고일 것이다. 문득 아파트 시세가 궁금해졌다. 포털사이트에 해당 아파트 시세를 살펴보았다. 분양 당시와 최근 시세를 살펴보니... 헉! 다행스럽게도 많이 올라 있었다.


ps

너무 적나라한 장면은 첨부하지 못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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