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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좋아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사람은 참 착해' 또는 '사람은 참 좋아'라는 말을 가끔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짐작했을 것이라 사료된다. 집수리를 다니다 보면 여러 집을 방문하게 되고 많은 의뢰인을 만나게 된다.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계신다며 의뢰를 하신 건물주도 그중 한 분이시다. 두어 번 일을 해드리며 느낀 점은 참 점잖은 분이라는 것과 참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말투는 참착하고 차분했으며 일이 끝난 후에는 고생했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어느 토요일 그분이 전화를 하셨다. 세입자분의 방 전등을 갈아달라는 요청과 함께 복도의 자동센서등 2개를 갈아달라는 의뢰였다. 건물에 거주하는 여성분들이 많으니 신속하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복도의 층층이 있는 자동센서등 중 어느 것을 갈아드리면 되는지 여쭤보았더니 가보면 안다고 하셨다. 하기사, 자동센서등은 사람이 접근했을 때 안 들어오는 것이 고장 난 것이니 구분하기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의뢰인도 현관 안쪽에 있는 등과 복도 끝층에 있는 등이라고 했다.


연립주택 입구의 천장은 확트여 높은 곳들이 있었기에 나는 높이는 어느 정도 되느냐고 여쭤보았다. 천장의 높이에 따라 창고에 두고 다니는 크고 긴 사다리를 챙겨가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얼마 안 된다며 낮은 사다리면 충분할 것이라 했으며 방문해 보면 안 들어오는 센서등을 갈면 된다고 하셨다. 당연히 맞는 말이기도 했다.


요즘 여성을 상대로 하는 흉악한 사건들도 있던 터라 야간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속하게 처리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서등을 준비해서 일요일 아침 일찍 의뢰인의 건물에 방문했다. 우선 세입자분의 방등을 교체하고 복도의 센서등을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센서등이 안 들어오는 곳은 천장이 상당히 높은 곳이었다. 얼추 보아도 3~4m는 되어 보이는 것이 의뢰인의 말과는 전혀 상반된 상태였다. 한 곳은 건물 입구 바로 안쪽으로 측정해 보니 높이는 4M가 넘었고, 한 곳은 3층과 4층 사이에 가장 높은 곳의 복도천장으로 4M가 조금 안 되었다. 긴 사다리가 필요했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2인 이상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천장 높이 측정값

우선 인천에 형님댁에 방문해서 일을 보고 나서 오는 길에 창고에 들러 긴 사다리를 챙겼다. 긴 사다리는 무게도 상당하고 크기가 있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창고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아내를 대동하고 늦은 오후 의뢰인의 건물에 방문했다. 아내에게 농담 삼아 사다리를 잘 붙들라고 하고는 만약 떨어지면 바로 119에 신고하라고 했다. 사다리를 타는 고소작업은 참 위험한 일이다. 고장 난 전등을 고정하고 있는 나사못을 풀어내고 새로운 전등을 잘 고정해야 하는 일이다. 단순한 일이지만 사다리 위에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탈없이 안전하게 작업해야 한다.


무사히 교체를 마치고 센서등이 잘 들어오고 꺼지는지 테스트를 여러 번 진행하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복귀하며 의뢰인에게 작업 전 후 사진을 남겼다. 의뢰인은 친절하게도 고맙다는 답장을 해왔다. 하루정도 지났을까!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교체한 센서등이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일이 없다며 사진으로 보내드린 센서등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뢰인은 4층에 거주하는 따님에게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며 특유의 점잖고 차분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말씀해 주셨다.


따님을 통해 확인이 되었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의뢰인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센서등이 하나 더 안 들어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2개가 아닌 3개였다는 것이다. 이번등은 현관밖 처마밑에 있는 거라 하신다. 높이는 낮으니 의자정도 놓고 올라가면 될 거라 하신다. 평일 늦은 오후 퇴근시간엔 항상 차량이 막힌다. 그래도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의뢰인의 건물로 향했다. 이런... 의뢰인이 말한 의자정도만 놓고 올라가야 한다는 곳의 높이는 큰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도 겨우 작업할 수 있는 높이로 보였다. 높이를 측정해 보니 3.6M 정도는 되었다.


처음에야 잘 몰라서 그랬겠지! 했던 상황이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이 현장에 와서 확인하지 않았거나 누구의 말을 듣고 전달했거나 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틀린 수치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보다 크고 무거운 사다리를 창고에서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무슨 똥개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의뢰인은 한결 같이 사람 참 좋게 친절하게 말씀하신다.


창고에 들러 긴 사다리를 챙기고 와이프와 동행해서 전등을 갈았다. 전등이 환하게 출입구를 밝히니 거주하시는 분들이 안전하게 출입할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해서 마무리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하루 후 의뢰인이 또 전화를 해왔다. 우리가 교체한 등이 또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귀신에 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4층 꼭대기층에 거주하는 따님을 통해서 전달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 처음부터 따님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했어야 했고 출입문의 비번도 알려주셨어야 했다. 그게 불편했다면 사위분의 연락처를 알려주셨으면 될 일이었다.

아래에 서서 사진을 찍어도 들어오지 않은 센서등(화살표)

따님께 부탁해서 안 들어오는 등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잠시 후 동영상이 도착했다. 확인해 보니 입구 천장 구석에 있는 출입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곳에 등이하나 있었는데 그 등이 고장이라는 결론이다. 그럼 처음에 안 들어와서 교체한 등은 뭐란 말인가! 따님 말로는 처음부터 그 등은 들어오고 있었다고 했단다. 그럼 우리는 들어오는 멀쩡한 등을 교체했단 말인가! 분명 들어오지 않는 등을 교체했는데 말이다. 동영상을 확인하다 구석 꼭대기벽에 대형 타일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것을 발견했다.

동영상 속에 있는 안 들어오는 등과 떨어진 타일(따님이 보내온 동영상 캡처)

등을 갈 것이 아니라 언제 떨어질지 모를 타일을 먼저 수리했어야 하는 상황인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벽타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대리석 바닥이 망가질 수도, 강화유리로 된 출입구 벽과 충돌한다면 유리파편이 쏟아질 수도, 그 유리파편에 지나가던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의뢰인께 타일이 벽면과 분리되었다고 알렸다. 현장에 가서 구석에 있는 등을 교체하면서 점검해 보겠다고 했다.

현장에 도착해서 교체한 등과 벌어진 타일

우리는 또 창고에서 긴 사다리를 가져다 천장 구석에 있는 등을 교체했다. 들어오던 등을 갈았다고 하니 이 등은 무상으로 교체해 드리는 것이 맞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 곳을 몇 번이나 방문하다니... 벽타일을 확인해 보니 주변타일들도 대부분 들떠 있었다. 의뢰인께 알렸더니 이 타일을 붙여 달리고 하신다. 우리의 답변은 "NO"였다. 타일 크기도 있고 제법 높은 곳이라 남자 2명 이상은 작업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달렸던 마음이 "NO"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벌어진 벽타일 맞은편 아래 강화유리문

너무 좋으신 의뢰인께 "아니요"라고 말하는 자체가 죄송하게 느껴졌다. 사람 좋다고 일도 좋게 풀어나간다면 참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일로 누군가 힘들고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잘못된 정보로 혼란한 상황을 만들었다면 응당 책임 있는 행동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괜찮은 사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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