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2>
한창 현관문 디지털도어록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전에 나왔던 디지털 도어록 중엔 크고 현관문 타공도 이곳저곳이 되어 있어 도어록을 신규로 교체하다 보면 자칫 예전 도어록의 구멍이 보일 수도 있게 된다. 이럴 땐 보강판을 써서 문의 구멍들을 안전하게 막아야 한다.
의뢰인의 아들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낑낑되며 작업하고 있는 내가 궁금했는지 지나가다 활짝 웃는다.
"안녕~" 인사를 하니
"뭐 하시는 거예요?" 궁금해한다.
"문 고치고 있지요~" 했더니 까르르 웃으며 사리 진다.
"아직도 하세요?" 이번엔 의뢰인의 딸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뒤를 날렵하게 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온다. 생김새는 영락없이 '그레이하운드'를 닮았으나 체구가 작고 가벼워 보였다. 뒤를 이어 엄마 의뢰인이 달려온다. "기사님 방해하면 안 돼!" 나는 "혹시 그레이하운드 아닌가요?" 했더니 맞다고 한다. 체구가 이렇게 작은 종이 있었냐고 물으니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라고 알려준다. 반려견은 내가 궁금했는지 코를 킁킁거리며 땀내 나는 팔뚝에 코를 대고 연신 냄새를 맡는다. "기사님 방해하면 안 돼"라는 단호한 말에 집안으로 신속하게 뛰어 들어간다. 집안에서는 이른 저녁을 먹으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소리와 "안돼 밥 먹어!" "너는 뛰지 말고 기다려" 엄마의 고함이 오고 가고 하운드가 뛰어다니는 정신없지만 화목한 풍경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장의 시진이 첨부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것과 저것을 교환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진을 살펴보니 방문손잡이를 찍어 보내셨다. 어라! 다른 문에 달려 있는 똑같은 방문손잡이를 서로 교환해 달라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이 일었다.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지근거리라 디지털도어록을 마무리하고 방문하기로 했다.
세대에 들어서니 막 배달이 왔는지 배달복장의 남성이 입구에 서 있었다. 의뢰인은 현관입구에 있는 중문의 도어록은 멀쩡한대 잘 쓰지 않으니 고장 난 세탁실의 도어록과 교환해 달라고 요청한다. 세탁실의 도어록은 열리지가 않아 자칫하면 세탁실에 갇히게 되어 있었다. 도어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풀다가 못 풀었는지 헐렁하게 풀려 있었다. 다행히 문에는 상처가 적어 보기 흉하진 않았지만 풀다 풀다 못 풀어 내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현관 쪽 중문의 도어록은 잘 작동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그 배달복장의 남성이 아직도 현관에 서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잘 다녀오세요"라고 여성의뢰인이 인사를 한다. "어~ 다녀올게" 집안에 있던 부모님들도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신다. 아저씨는 현관 귀퉁이에 있던 외발전동휠을 들고나갔다.
"아! 아저씨셨군요" 했더니 의뢰인이
"네, 낮에는 배달일을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해요"
"아! 그러시면 지금 들어오셨다가 또 나가시는 거였군요!"
"가장이라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먹고살죠"
제법 넓은 집에 여유로워 보이는 집안분위기, 부모님도 모시고 계시는데 아저씨는 투잡을 뛰시는 듯 보였다.
대리운전차량에 외발전동휠을 싣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외발전동휠로 밤거리의 어둠 속을 헤치며 복귀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자주 쓰지 않는 현관중문의 멀쩡한 도어록과 자주 쓰는 세탁실의 망가진 도어록을 바꿔달기를 시도하다 실패했던 것으로 보였다. 의뢰인께 어떤 것이 합리적 선택인지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먼저 중문의 멀쩡한 도어록을 풀고 세탁실의 망가진 도어록도 풀어서 서로 바꿔달면 풀고 설치하고를 두 번 하게 됩니다. 또 망가진 도어록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도어록을 설치하시면 한번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리비용은 같습니다! 어떤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의뢰인의 두뇌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민 중이신 듯 보였다. 저 멀리서 TV 뉴스를 보시던 아버님이 다가오신다.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고민되시죠? 비용 아낀다고 망가진 도어록을 빼버리면 멀쩡한 문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쓰게 되니 보기 이상하겠지요? 뭘 고민하세요?" 했더니 연세가 많으신 의뢰인의 아버님이 대답하신다. "새 걸로 바꿔줘!" 하신다. "실은 내가 교체해 보려고 했는데 예전하고 뭐가 다른지 잘 안 됐어! 예전에는 내가 다 했는데 말이야!" 하신다. "맞습니다! 새 걸로 바꾸시는 게 이득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셔야죠!" 했더니 아버님이 껄껄 웃으신다.
나는 세탁실의 문손잡이를 교체하며 어떻게 이 손잡이를 풀어내는지 아버님께 알려드렸다. 아버님은 "아~이런 연장이 있어야 되네" 하신다. 같은 손잡이도 어느 것은 잘 풀리기도 하고 어느 것은 잘 풀리지 않게 된다. 자칫 무리하게 풀다 손을 다치기도 문에 상처가 생겨 상하기도 한다. 비용을 아끼려다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파손된 도어록을 풀어내고 새로 가져간 도어록을 달아드렸다. 이젠 세탁실 문을 잘 닫을 수 있게 되었다며 의뢰인이 기뻐한다.
의뢰인의 남편분은 오늘도 어두운 밤거리를 외발전동휠로 오가며 대리운전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았다. 돈은 때론 더럽기도 때론 위험하기도 한 것 같다. 위험을 담보로 맡길 때 돈이 쥐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게 담보를 맡겨셔는 안 된다. 좀 적게 벌어도, 좀 성에 차지 않아도, 좀 아쉽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것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이다.
의뢰인이 어두운 밤거리로 나서는 남편을 향해 "잘 다녀오세요!" 했을 때 의뢰인의 남편이 "어~다녀올게"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그 약속을 잘 지켜야 행복한 일상이 지켜진다. 가장들이 일터에서 가정으로 무사히 들어오는 평범한 일상만큼 가치 있는 돈벌이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잘 마무리하고 이젠 나도 안전하게 집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