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2>
먼저 글 "자화상"의 어르신이 연락을 하셨다.
https://brunch.co.kr/@thomace/135
싱크대 주방수전을 사놓았으니 빨리 와서 교체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거리라 약속을 하고 신속하게 방문드렸다. 어르신의 댁에 들어서자마자 왜 뜨신물이 안 나오냐고 다그치신다. 그 이유는 확인해 보기 전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엔 아내 되시는 분이 수전을 교체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이렇게 빨리 고장날수가 있느냐며 화를 내신다. 나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와서 교체해 주셨잖아요?"
"네! 전 지금 처음 방문드렸는데요!"
"그 기사님 아니세요?"
"....."
두 어르신이 무림의 무법자들처럼 합이 척척 맞으셔서 협공을 해오는 턱에 뒤로 물러서며 손사래를 쳐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안쪽 수도밸브와 배수통등을 살펴보았다. 배수통분쇄기는 새로 장만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배수통분쇄기는 교체비용이 상당했을 텐데 말이다. 바깥어르신이 나와의 거리를 가까이하시며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살피기 시작하셨다. 어르신은 대기업 자동차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시다 정년을 하셨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니 싱크대수전, 이 정도쯤이야 알로 보셨을 듯도 싶었다. 자신이 직접 해볼까도 하셨다고 덧붙였다.
싱크대 아래 온수와 냉수 밸브를 잠갔다. 그런데도 냉수가 꽉 잠기질 않아 세대 외부에 있는 전체 수도를 잠가야만 했다. 기존 수전의 냉수와 온수를 연결을 분리하고 이번엔 수전을 풀기 위해 좁은 싱크대 아래에 눕다시피 손을 깊게 집어넣어 풀어내었다. 풀어낸 수전을 정리하고 새로운 수전을 역순으로 결합해 넣었다. 남자어르신은 작업하는 내내 옆에 밀착하셔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셨다. 작업을 정리하고 외부에 있던 수도를 틀어 세대에 물이 공급되도록 했다. 이윽고 어르신들과 함께 교체된 수전 앞에 섰고 손잡이를 위로 올려 물을 틀었다. 냉수뿐 아니라 온수도 시원하게 쏟아져 나왔다.
남자어르신께서 한마디 하셨다. 지난번 교체하는 것을 보지 못해서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하셨다고 하신다. 나는 이번에 보셨으니 다음번엔 직접 교체하시면 되겠다고 하니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신다. 이렇게 복잡하고 조심해야 하는 작업인지 모르셨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다세대 주택, 특히 아파트에서는 물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전기는 잘못되면 차단기가 떨어지거나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하는데 물은 아니라고 했다. 만약에 물이 조금씩이라도 누수가 생긴다면 1~2달 후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아래층 천장은 곰팡이가 피어 오염되고 물에 젖어 못쓰게 되니 피해가 1~2백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드렸다. 그러니 조심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교체비용으로 3만 원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직접 보셨으니 5만 원은 주셔야 하지 않겠냐고 웃으며 애교스럽게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그래도 무뚝뚝하게 3만 원을 주겠다고 하신다. 나는 어르신댁에 방문해서 현관을 들어서며 형편이 어떤지 살펴보기도 했다. 형편이 안 좋으시면 무상으로 교체해 드려야겠다는 마음도 있어서였다. 어르신의 자녀분들은 분가해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도 하셨다. 신형 음식물 분쇄기와 대형 tv, 소파 등 집안은 부족함이 없어 보이셨고 무엇보다 내외분 모두 건강하셔서 참 보기 좋으셨다. 나는 어르신이 주시겠다고 한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받았다.
'어르신' 하면 인자하고 따뜻하고 너그러움을 떠올린다. '어르신'이란 말엔 '얼이 신처럼 영험한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을까 싶어 우러러보게 된다. 집수리를 다니다 보면 어르신들을 자주 뵙게 된다. 작업을 하다 보면 가까이 다가오셔서 본의 아니게 대화를 나누게 되고 궁금증을 물어 오시기도 하신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 사람과의 짧은 대화 자체가 어르신의 무료함을 달래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더 내곤 한다. 어느 분들은 간식과 음료도 챙겨주시며 더 있다가 가라는 말씀도 하신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번에 꼭 '차 한잔 하자' '언제든 놀러 오라'는 분도 계시지만 지금껏 지킨 적이 없었다.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호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지혜롭고 아름다웠고 재미있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싶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또 나의 한마디 한마디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는 '차 한잔 하자' '놀러 오라'는 약속을 지켜 그분들의 못 다한 숨은 이야기들을 들을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