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별에서 왔니?

<집수리 마음수리 2>

by 세공업자

지난번 목공작업을 해드렸던 피아노학원에서 남자 회장실 소변기가 막혀서 물이 안 내려간다며 연락이 왔다. 원장님이 여자분이신지라 남자소변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모르신다고 하셔서 한참을 설명해 드렸다. 자동센서가 달린 소변기에는 물이 오수관을 통해 빠지지 않으면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소변을 보고 나면 자동으로 흘러나온 세척수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곤 다음사람이 사용을 할 때면 밖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화장실 바닥이 소변이 섞인 세척수에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다음 일은 상상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소변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요석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체에 요로결석이 생기듯 소변기 오수관에도 요석이 쌓여 막히는 경우들이 있다. 소변기 오수관에 요석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벽에 붙어 있는 소변기를 뜯어내고 오수관에 관통기를 넣어 뚫거나 아래층 천장을 뜯어 오수관을 열어 역으로 요석을 제거하는 방법들이 있다. 오래 쌓인 요석은 냄새가 만만치 않고 요석을 제거하다 잔여물들이 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먼저 아래층에 내려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천장의 텍스를 풀어내고 오수관을 열었다. 오수관캡에 쌓여있던 요석과 함께 소변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의외로 요석이 많이 퇴적되어 있지 않았다. 오수관은 천장에서 벽면으로 한번 꺾여 올라갔다가 다시 외부로 노출된다. 마치 'ㄷ'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위층으로 올라가 소변기를 벽면에서 떼어내고 오수관 안쪽을 살펴보았더니 막힌 배관에 오수가 내려가지 못하고 가득 차 있었다. 관통기를 넣어보았더니 단단한 무언가가 꽉 막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요석은 회전하는 관통기의 와이어 끝에 달린 돌기에 파쇄되며 뚫리기 시작해야 하는데 말이다.


전동공구가 회전하며 관통기의 와이어가 오수관으로 들어가면 끝에서 걸려 '따따닥' 하며 강하게 브레이크 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리가 가면 고장이 날 수 있으니 관통기의 와이어를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며 작업해야 한다. 위아래층을 오가며 세 시간가량을 작업을 했을까! 그런데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이를 어쩐다! 큰일이 난 것이다. 급히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간단한 작업에 사용하려고 준비해 둔 내시경을 가져오게 했다. 내시경으로 오수관 안쪽을 확인해 보니 그냥 새까맣게만 보였다. 뭔가 반짝거리는 새까만 덩어리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게 뭔지 감이 전혀 잡히질 안았다. 요석은 희게 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썩은 내는 진동을 하지! 날씨는 춥지! 손은 작업하느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추위에 오그라드는 몸을 녹이기 위해 복도를 오가며 뛰기 시작한다! 안 되겠다 싶어 수동 강철 와이어로 된 관통기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역으로 강철와이어를 집어넣고 돌리니 오수관으로 서서히 철스프링이 올라가다 뚝하고 걸린다. 온몸에 있는 힘을 다하여 관통기를 돌렸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뚫리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관통기를 손으로 돌렸다. 순간 '툭' 하며 무언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위층으로 올라가 관통기를 오수관에 넣고 돌리니 시원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래층에서 무엇인가 '따닥'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뛰어 내려가 살펴보니 요석의 잔여물들과 함께 시커먼 덩어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정체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커다란 자갈들이었다. 설마 하니 학원생들이 소변기에 넣었을까! 싶어 소변기와 오수관을 연결하는 파이프에 넣어보니 통과되질 않았다. 이 돌멩이는 소변기를 달기 전 오수관 안에 넣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다. 아내가 돌멩이 크기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돌멩이 3개와 플라스틱 조각이 1개가 오수관에서 나왔다. 이것들이 오수관에 들어있다 배출되는 오수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며 요석이 쌓이게 되었고 배관이 막혔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돌멩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쩌다 여기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너희들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묻고 싶었다. 설마 하니 10여 년 전 어느 작업자가 불만이 있다고 집어넣은 것은 아니겠지! 7시간 가까이 시달리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러 집을 다니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경험들이 종종 생긴다. 어느 댁은 고맙게도 간식부터 미리 챙겨 주시는 경우들도 있다. 어느 댁은 의뢰인의 말과는 달리 작업환경이 다르고 난이도가 심해 수리비를 더 청구해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옆에서 지켜보시다 이해하시고 더 많이 챙겨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추가 비용을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면 청구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선 비용을 받지 않고 오는 경우도 생긴다.


서로가 인식하는 부분이 다르기에 서로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비용만큼만 작업해 놓고 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진 불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눈앞의 현물보단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서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더 챙김 받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니 손해 본 것이 없는 샘이 된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노병은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