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내려 우측으로 가면 매일 아침 커피를 사는 카페와 식당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하얀 복도가 이어지고 천장 위에 “정규직 인원 충원”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시작으로 양쪽 벽에 여러 가지 선전문구가 벽면 가득 붙어있다. 직원 식당에서 선전물의 양은 정점에 이른 후 다시 하얀 벽이 나타났다. 복도가 끝나는 곳 우측 유리문에 방사선종양의학과라고 적힌 현판이 보인다.
유리문을 양쪽으로 연 후 침대를 밀고 들어가면 유난히 단차가 큰 스테인리스 문틀에 걸려 ‘덜컹!’ 하고 넘어가게 된다.
“어서 오세요. 기분은 어때요?” 키가 크고 단발머리를 한쪽 귀에 꽂은 B간호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검은 아이라인에 동그랗게 연필로 원을 연속으로 그린 듯 한 방향으로 말려 올라간 속눈썹이 완벽하다.
높은 하이톤에 빠르고 경쾌한 속도로 쉼 없이 말을 이어갔다.
“긴장하지 마시고, 선생님들이 10년 이상 된 베테랑이라 하나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한 15분? 20분? 그 정도면 끝나요.”
남편은 B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웃고는 있지만 양쪽 볼을 잡고 강제로 당긴 듯한 표정에 눈을 빠르게 깜박이고 있다. 잔뜩 긴장을 한 모양이다.
“상호 씨, 괜찮을 거야. 지난번 외래 왔을 때 선생님께서 설명도 잘해주셨고,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아무 문제 없이 다 잘 해냈잖아? 이번에도 무난하게 잘 지나갈 거야. 알았지?”
“응, 알았어.”
침대 레일을 잡고 있는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손바닥이 차갑고 축축하다.
몇 번 쓰다듬은 후 살며시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문을 열고 상호 씨만큼 큰 키에 골격이 좋은 담당 선생님이 나오셨다.
“환자분, 오늘 방사선 치료 첫날이죠? 치료하는 동안 저희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이제 들어갈까요?”
방사선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두 명의 선생님이 나와 남편의 침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를 옮길 때마다 항상 하던 순서대로 옆으로 끌면서 남편을 방사선 배드에 옮긴 후 대기실로 나왔다.
방사선치료는 목 뼈부터 꼬리뼈까지, 하루 두 군데 암세포 많은 부분을 포인트로 위치가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5일간 진행됐다.
30분 후 남편이 나왔고 사우 님과 함께 들어올 때 지나왔던 길을 따라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상호씨, 괜찮았어?”
“응. 편하게 몸을 잘 정렬해 주시고 부드럽게 잘 옮겨주셨어. 그리고, 방사선치료를 받는다는 느낌조차 없었어. 이런 치료라면 얼마든지 받겠는데?”
그날 남편은 방사선 후유증 없이 워커에 기대 1시간을 걸었고, 밥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고, 후식으로 준비한 고구마빵과 내가 준비한 비타민 8종까지 야무지게 전부 먹어치웠다. 물론, 밤엔 등 근육통이 심해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어야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은 회복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남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상호씨 잠깐만 기다려, 얼른 커피 사 올게.”
남편이 입원 한 이후 하루 한 번은 이 빵집에서 커피를 사거나 샌드위치, 호밀빵 등을 샀다.
유기농 밀가루에 질 좋은 버터를 사용해 하루종일 모든 빵과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천효발효종으로 만든 하드롤 빵의 종류가 많았다.
평소 빵을 즐겨 먹지 않는 나였지만 하드롤 빵은 못 참지.
이 근처만 지나면 구수한 빵 냄새가 났고,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는 아로마 향초보다 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줬다.
아마 이 병원을 떠나게 되면 다시 이곳의 빵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당신아, 오늘은 당신이 먹을 빵이랑 커피 사서 매장에서 먹어.”
“상호씨는 어디 있으려고?”
“내 자리는 당연히 당신 옆이지.”
일단 아침으로 먹을 간단한 빵을 고르기 위해 나무로 만든 트레이를 집어 들었다.
아침에 나온 신선한 빵을 구경하면서 동시에 곁눈질로 남편이 잘 있는지 체크했다.
워커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던 남편이 손목을 바깥으로 저으며 빵에 집중하라고 한다.
고소한 버터향이 가득한 울퉁불퉁 세모난 스콘을 하얀 유산지 위에 올리고 카운터로 가서 아이스라테를 주문했다.
“포장하실 건가요? 드시고 가실 건가요?”
“매장에서 먹을게요.”
포장지를 꺼내던 손을 멈추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밀어 넣었다.
워커를 옆에 댈 만한 넓은 자리를 물색한 후 그 테이블 앞에 서자 남편이 워커를 의자 가까이 댄 후 한 팔 씩 테이블과 의자를 잡은 후 무게중심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당신, 괜찮아? 아프지 않아?”
“생각보다 괜찮은데? 당신 음료 나왔다 얼른 가봐.”
카페에서 이렇게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앉은 것이 얼마만이던가.
불과 한 달 전 일이지만 몇 년은 더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빵집 안엔 막 출근을 한 병원 직원들의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하다. 따뜻한 빵 굽는 냄새, 경쾌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내 심장이 경쾌하게 폴짝폴짝 뛰었다.
남편과 함께 1층 현관 밖으로 나왔다.
20일 넘게 누워 있으면서 남편의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대부분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누워 있지 않았다 해도 암세포는 온몸을 장악하면서 근육세포에 필요한 영양분을 빼앗아 근육을 퇴화시킨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근육뿐 아니라, 심장, 위, 내장기관의 근육까지 퇴화시켜 숨 쉬기도 힘들어지고, 소화기능도 저하시켜 환자는 항암을 받을 수 없는 몸 상태가 된다.
이 상태를 악액질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악액질에 걸리면 다시 근육과 체중을 늘리는 것이 너무 어려워진다. 항암을 지속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몸과 체중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악액질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은 암 통증과 수술을 거치면서 몸에 있는 근육이 다 빠져나갔다.
얼굴은 젊은 사람의 얼굴이지만, 몸은 뼈 위에 얇은 피부 가죽만 얹어져 있으며, 엉덩이와 허벅지의 경계가 사라졌다.
암은 젊은이의 몸을 80대 노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재작년 여름부터 작년 봄까지 재활 PT를 받았다.
출산 후 생긴 허리, 골반, 발목의 고질적인 통증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PT를 통해 내 몸의 취약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 관절이 작용하는 방식과 어느 쪽 근육을 발달시켜야 하는지 배웠다. 그때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남편의 근육 되돌리기 운동 계획을 짰다.
먼저 우리 몸의 가장 큰 근육인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허벅지 뒤쪽 근육과 엉덩이는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일단 앞허벅지 운동을 먼저 시작했다.
건물에서 연결된 보도블록에는 10센티가량 턱이 있었는데, 오늘은 이 보도블록을 스텝퍼 삼아 허벅지 근력운동을 하기로 했다.
난간을 잡고 한 발을 먼저 보도블록 위로 올렸다.
나머지 다리 한쪽을 올리려고 하자 앞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온몸이 흔들렸다.
난간을 잡고 있는 두 손에 힘 줄이 나타났고, 나머지 다리가 보도블록 위로 올라가자 남편은 나를 향해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초여름의 달콤한 풀향이 남편의 이마를 스쳐 내 뺨을 어루만진 후 흩어졌다.
보통 건강한 사람의 근력 운동은 마지막 하나까지 쥐어짜서 하지만, 남편의 운동은 조금 모자라다 싶을 때 멈춰야 한다. 혹시나 힘이 풀려 넘어지게 되면 바로 골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반복하다 더 이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침대로 돌아왔다.
오후 권교수님의 회진시간.
“설상호 환자분, 빈혈수치가 좀 낮긴 하지만 혈액수치가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집 근처 병원으로 전원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다음 주 방사선치료가 끝나면 금요일엔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생각하는 병원은 있나요?”
이 병원에서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담당교수님은 집 근처 병원에서 항암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냐고 권유했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중증환자라서 부담스러우신 건가? 그래서 쫓아내려고 하는 건가?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암 커뮤니티에서도 항암을 집 근처 병원에서 받을지, 아니면 서울 빅 5에서 받을지 의견이 분분했다.
집 근처에서 받을 경우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병원에 환자 데이터가 있어서 조치하기 쉽고, 항암도 입원해서 받을 수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다.
빅 5 병원의 경우 여러 가지 단점에도 최신 의술이 가장 먼저 도입되는 곳이고, 임상실험의 참여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사이에서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일단 저희는 두 번째 항암까지는 여기서 받고 싶어요. 아직 상호 씨 몸 상태가 병원을 옮기기엔 어려울 것 같아서요.”
“… 사실… 병원에 오래 머문다고 해서 더 증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두 번째 항암까지 여기서 하는 것으로 하죠.”
맞는 얘기다. 병원에 머문다고 해서 암세포가 더 사멸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혈액암 같은 경우는 최신 치료법이 많아서 어쩌면 빅 5 병원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남편 같은 고형암의 경우 마치 내과의 감기약처럼 사용하는 항암제가 정해져 있다. 빅 5 병원에서 주관하는 학회에서 위암에 관한 항암약품에 대한 영상을 봤는데, 지금 남편이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항암제로 시작하고 효과가 없을 때 다른 항암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집 근처 병원과 빅 5 병원 사이에서 어떤 병원이 더 남편에게 좋을지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당신아, 그런데 나 목이 점점 더 아파지는 것 같아. 이제 침을 삼키면 귀까지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