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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18. 2023

이온음료와 상현이

“무균실 갔다 오면 괜찮은 거지?”

“무균실에서 2주 정도 격리 후 골수검사를 다시 해야 한데요. 암이 5% 이하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데,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천만 원이 넘는 독한 항암제를 쓴 후 한 달 동안 다시 무균실에 들어가거나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한데요. 국가와 병원에서 골수 이식 비용 일부를 지원해 준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해도 골수이식 개인부담금이 1억이 넘는다고 하네요…”

국민건강보험이 암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희귀 암이나 특정 수술에 대해서 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린 나이에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텐데 돈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상현이는 흡연실에 앉아있는 중년 어르신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여긴 담배 살 곳이 없어서 저기 계신 아저씨한테 부탁해 보려고요. 지난밤에 흡연실 바로 뒤쪽에 난 쪽문으로 몰래 담배를 사러 나갔었는데 경비원 아저씨한테 잡혔어요. 새벽이 되면 담배 사려는 사람들이 저 문으로 탈출을 시도하거든요. 그런데 다들 경비원한테 잡혀서 다시 들어와요.”

남편과 나는 웃픈 표정을 지었다.

“곧 무균실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금연하게 된대요. 헤헤.”

상현이는 흡연실 안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했다. 상대방의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살갑게 먼저 다가갔다. 



시간은 흘러 이 병원에서 첫 항암을 받은 지 3일이 흘렀다.

“많이 힘들죠?”

흰색 가운을 입은 수간호사님이 상호씨에게 귀마개를 건넸다.

지난밤에도 상호씨는 잠을 설쳤다.

상호씨가 왼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는 중국 동포가 누워있다. 중국어 특유의 높은 톤은 달팽이관을 스쳐 뇌에 박히는 것 같았다. 한국말인지 중국말인지 알 수 없는 말투는 이상하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숨 쉴 때마다 나는 쇳소리는 목소리보다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수면 스위치가 있는 나도 이 소리에는 잠을 설쳤다. 귀가 잘 안 들려서인지 목소리가 병실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기도 했다.

“조용히 해요, 조용히.”

간병인 아주머니가 주의를 줘도 그때뿐이었다.

맞은편 왼쪽 창가의 어르신은 숨이 곧 넘어갈 듯 기침을 하다가 고통스러운지 아내분을 찾았고, 이내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밤낮없이 이어졌다.

지난 저녁 비어있던 남편의 맞은편 자리에는 70대로 보이는 중국 동포 어르신이 입원했다. 함께 온 아내 분은 무척 왜소한 체형과 달리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힘이 넘쳤다. 그 목소리로 끊임없이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급기야 휴대폰 볼륨을 높여 중국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담당 간호사가 이어폰을 끼라고 지적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방사선 후유증으로 심해졌던 남편의 식도염은 응급병동에 있는 동안 호전 되었다가 이 병실로 옮기면서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을 빨대로 조심스럽게 빨아들였다가 잠시 후 미간이 잔뜩 구겨진 채로 긴 한숨을 쉬었다. 항암 4일째가 되던 날 수면제를 처방받아먹었지만 남편은 전혀 잠에 들지 못했다. 새벽 4시 상호씨는 침대 밖으로 손을 내밀며 두 눈이 깊게 파인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오늘 퇴원하자.”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미소로 답했다. 그러고 나서 남편에게 무릎보호대를 단단히 채워준 후 함께 병원 복도를 거닐다가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로 돌아오니 상현이가 간호사 호출벨을 누르고 있었다.

“저, 잠시만 와 주시겠어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항암제를 맞은 이후 나도 모르게 계속 설사가 나와요. 지금도 잠든 사이 나도 모르게 설사를 했어요.”

“항암제 부작용으로 그럴 수 있어요. 환자분은 기저귀를 항상 차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새 환자복을 가져다 드릴게요.”

상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누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었고, 남동생은 지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입원한 지 2~3일 후 오셨는데 80대 중후반에 몸이 많이 불편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상현이는 혼자 있었다.

‘당장 기저귀는 누가 사다주지?’

병원에서는 남편도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계속 설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첫 항암 때 설사를 심하게 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처음 아기가 태어나면 찍찍이가 달린 긴 패드형 기저귀를 채우고, 걸음마를 시작하면 팬티형 기저귀를 입힌다. 남편도 다시 태어난 아기처럼 긴 패드형 기저귀로 시작해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되면서 팬티형 기저귀를 입게 되었다. 남편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저귀가 두께도 얇고, 색상도 회색이고, 일반 팬티를 입은 것처럼 편안하다고 만족해했다. 병원에서는 판매되고 있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서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갖다 줘. 내가 주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

남편 손에 기저귀 한 뭉치를 건네며 말했다.

“아, 형님! 고마워요. 그런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팬티처럼 그냥 입으면 돼.”

“우와, 이런 제품이 있어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어김없이 우리는 병원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간호스테이션 앞을 지나갈 때 간호사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보호자님.”

“2인실 역격리 환자분 오늘 퇴원하시는데 자리 옮기시겠어요?”

나는 마치 꿈속에서 들은 것처럼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네! 무조건 갈 거예요! 저희가 창가자리 해도 되나요?”

“그럼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병동 복도를 돌며 2호실 앞을 기웃거려 왔다.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2인실에 자리가 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지체 없이 5인실로 들어갔다.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구겨 넣고 두 병실 사이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짐을 날랐다. 그럴 리 없지만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2인실을 빼앗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급했다. 금세 2인실 자리는 우리 짐으로 채워졌다. 짐을 다 옮기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2인실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통창 앞 침대에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세상의 초록색을 다 모아 한 폭에 그려 넣은 풍경화처럼 초록색 공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복도로 연결된 문을 닫자 모든 소음이 순식간 잠겼다. 마치 우주처럼 고요했다. 우리는 동시에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주 봤다. 마주 본 남편의 눈가에 나비넥타이 같은 주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리는 잠시 후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깊은 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자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남편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온몸을 쑤셔대던 근육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초록색 공원의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하며, 완벽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과 복도로 연결된 문을 열자 링거대에 이온음료를 싣고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병실 앞에서 멈춰 섰다. 때마침 상현이가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형님, 여기로 옮기신 거예요? 갑자기 사라져서 너무 궁금했어요.”

“입원하자마자 2인실 예약했었는데 어제서야 자리가 났어.”

“하아, 너무 부럽네요. 전 밤새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형님자리에 이상한 사람이 들어왔어요. 밤새 개인 사물함 버튼을 누르면서 욕을 하고, 제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따라와서 문을 막 두드려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너무 힘들어요.”

잠을 못 잤는지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갈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해 보였다.

“이 병실에 우리밖에 없으니까 우리 화장실 같이 쓰자.”



남편은 2인실로 옮긴 후 컨디션을 회복하는 듯하다 항암 4일 차부터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소화가 되지 않았고, 목도 많이 부어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거기다 밤새 1시간에 1번꼴로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몸무게는 점점 줄어 56kg가 되었다. 기력이 없어 설이가 왔는데도 1층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구독자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번 글이 너무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아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해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지는 제 글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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