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페란 주사!”
맥페란은 구토방지제로 지난 병원에서 항암을 시작한 이후 식사 30분 전 빼먹지 않고 맞았었다.
서울 병원에서 처음 주사할 때부터 선생님이 알아서 처방해 줬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 약품과 마찬가지로 모든 주사제와 약품들이 그랬다.
선생님이 알아서 미리 처방을 해줬기 때문에 어떤 약을 얼마큼의 용량으로 얼마간의 주기로 처방이 이뤄졌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간호사에게 맥페란 주사를 요청했고, 잠시 후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다.
“맥페란은 숨쉬기 답답한 증상과 관련이 없는 주사제인데요.”
맞다. 맥페란은 급체를 했거나 속이 울렁거릴 때 처방하는 주사제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처방되지 않은 주사제는 이것뿐이었다.
우리는 이 주사제가 간절히 필요했다.
“지난 병원에서 비슷한 증상이 있었는데, 그때도 맥페란 주사 맞고 증상이 사라졌어요.”
우리는 물러설 수 없었다.
“흐음… 그렇다면 일단 한 번 맞아 보고 증상이 호전되는지 지켜보도록 하죠.”
남편은 맥페란 주사를 맞은 후 거짓말처럼 숨찬 증상이 사라졌다.
‘숨이 찬다.’라는 표현은 음식을 많이 먹어 커진 위가 다른 장기에 압력을 가했을 때 쓰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내장기관의 기운이 떨어졌을 때도 사용하며,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하면 현기증이 나면서 숨이 차는 상태일 때 쓰기도 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정확하게 언어화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작은 뉘앙스 하나가 진단의 단서가 되고 그에 따라 약이 처방이 되기 때문에 몸의 변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은 이런 몸의 변화를 정확하게 언어화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비단 남편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그런 것 같아 보였다. 어쩌면 의사 선생님에게 필요한 기술은 독심술 인지도 모르겠다.
주사 한 방에 남편은 거짓말처럼 호전되었고, 아기새처럼 하루종일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제는 병원식을 50% 정도 먹을 수 있게 됐고, 식후 자두 5개도 먹어치웠다. 설이가 어제 맛있게 먹었던 밀크빵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밀크빵을 사러 지하로 내려갔다.
적극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말한 것이 얼마만인지.
얼마 전까지 도저히 먹히지 않는다며 힘겹게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 넣던 모습이 사라졌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제법 살이 붙은 것도 같다. 이번 위기도 무사히 잘 넘긴 것 같다.
우리는 하루종일 병원을 돌아다녔다.
병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병실 밖을 헤매다가 남편이 지치면 잠시 들어와 쉬고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돌아다니기 힘든 취침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여기저기 코 고는 소리, 가볍고 짧게 울리는 간병인 아주머니의 숨소리, 남의 시선 전혀 개의치 않고 수시로 새어 나오는 방귀소리, 사방에서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팔을 간지럽혔다.
한 여름 체육시간 후 교실에 가득 찬 아이들이 뿜어내는 땀냄새로 가득한 교실처럼 공기가 눅진하다.
오른쪽 한 뼘 거리 얇은 커튼 사이로 젊은 청년이 밤새 뒤척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어떻게 신음소리를 내야 할지 어색한 사람처럼 머뭇거리다 참지 못하고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아, 아프다, 아, 아파.”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5명 모두 밤새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병실 밖엔 아무도 살지 않는 듯 고요하다.
마치 지구에 우리들만 남은 것 같았다.
새벽 5시 어김없이 병원의 시작을 알리는 간호사의 카트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누워 있었지만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청년은 일어나자마자 창가에 있는 공용냉장고 문을 열어 이온음료를 꺼냈고 자연스럽게 오른쪽 창가의 보호자 아주머니가 다가와 뚜껑을 열어 청년에게 건넸다.
‘어제 응급병동에서 이 병실로 온 청년인데 저 아주머니와 언제 친해진 거지? 아무리 친해도 병뚜껑까지 따 주는 건 너무 어리광 아닌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다가왔다.
“남편분, 허리디스크로 입원하신 거예요?”
“저, 위암이 척추에 전이되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우리 남편도 폐암 4기. 반년 전 엑스레이에서는 폐가 깨끗했는데 코로나 백신 맞은 이후 폐암 4기라네. 지금은 수프 몇 숟가락도 넘기기 힘들어. 점점 안 좋아져. 언제 알았어요?”
“한 달 반 전에요.”
“여기 젊은 총각은 힘이 없어서 병뚜껑 하나를 못 따. 착한 총각인데…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아픈 거 보면 너무 마음이 그래…”
청년은 우리가 응급병동에 있을 때부터 눈에 띄었다.
190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하얀 피부, 유독 튀어나온 배, 커다란 덩치가 마치 백곰 같았다.
대부분 간호스테이션 앞에서 목격되었는데, 커피나 간식을 양손 가득 들고 수고한다며 간호사들에게 건네곤 했었다.
자리로 돌아간 청년은 한참 무언가를 찾는 듯 부스럭 소리를 냈다.
“마스크가 어디 갔지?”
뒤적거리는 소리는 한참 동안 멈출 줄 몰랐다.
“저기, 잠깐 커튼 조금 열어 볼게요.”
나는 커튼을 빼꼼히 걷어 마스크 20여 장을 건넸다.
그날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몽블랑 타르트와 메리골드 타르트가 내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머, 이게 뭐지?”
고개를 돌려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막 설이와 지하 1층에서 타르트를 먹고 온 참이었다.
어릴 때는 달콤한 디저트가 무한대로 들어갔는데, 30대 중반이 넘어서자 유제품과 밀가루, 단 음식을 소화시키기 힘들어졌다. 설이가 먹다 남긴 타르트가 아까워서 먹어치우고 올라오며 남편에게 속이 울렁거려서 괜히 먹었다고 투덜거렸다.
“누나랑 형님 드시라고 하나씩 샀어요.”
“마스크 몇 장 줬다고 뭘 이렇게 비싼 걸 샀어. 너무 이쁘다. 잘 먹을게. 고마워”
남편의 위는 타르트를 소화시킬 수 없었고, 나는 타르트가 이렇게 무서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상자가 없어서 냉장고에 그냥 보관할 수도 없고 이걸 어쩐다…’
청년의 마음이 예뻐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두 개 다 내 입 안으로 구겨 넣었다. 그러고 나서 이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도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병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남편은 워커 없이 링거대를 끌고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물론 허리교정기는 차고 있지만 방사선 이후 경추 쪽 통증이 완화되어 목 보호대는 착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목보호대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확 올라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목 주위에 땀띠가 생기던 참이었다.
“오늘 커피는 내가 쏜다!”
“스벅은 지현이가 준 스벅 상품권으로 살 거거든. 사이렌오더로 주문해 뒀지.”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중앙 홀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부셔 저절로 눈이 감겼다.
오랜만에 햇볕 속으로 들어가자 피부에 햇빛이 닿아 바사삭바사삭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난 여기서 햇볕 좀 쐬며 기다릴게.”
남편은 응급실과 본관 사이 보도블록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평지에 지어진 병원을 가볍게 걷다 보면 금세 왕복 2차선 신호등 앞에 다다랐다.
신호등을 건너 10 발자국만 걸어가면 스벅 문 앞에 도착했고, 나무옹이가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지는 손잡이를 밀며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조명과 리드미컬한 재즈 가수의 선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회사 1층에도 스타벅스가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스타벅스와 공차 사이 출입구로 들어가고, 저녁이 되면 같은 곳으로 나와 곧장 연결된 지하철역으로 들어갔었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회의를 핑계 삼아 동료와 함께 잠시 쉬기도 했었고, 점심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아이패드 하나 들고 구석 자리에 앉아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나는 잠시 나의 익숙한 일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커피맛은 강배전이라 너무 쓰긴 했지만 마시다 보면 혀가 익숙해져 나쁘지는 않았다.
“마리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한 잔 나왔습니다.”
커피를 들고 신호등 앞에 서서 한 모금 쭉 들이마시자 카페인이 빠르게 온몸으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하얀 옷을 위아래로 입은 대벌레를 닮은 긴 남자가 서 있고, 그 남자 옆에 길쭉하고 배가 볼록 나온 백곰 같은 남자가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대벌레를 닮은 남자는 손을 흔들었고, 백곰을 닮은 남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는 셋은 자연스럽게 본관 주위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아무에게도 해보지 않은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어?”
나는 좀처럼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말을 놓지 않는데, 이상하게 상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말이 놓아졌다.
순수한 아이 같아서 그랬을까.
“저 며칠 전에 진단받았는데 백혈병이래요. 병명을 진단받기 전까지 정말 너무 힘들고, 오래 걸렸어요. 몇 달 전부터 피부가 너무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피부 속이 미친 듯이 가려운 느낌이라고 할까요. 살짝만 긁었을 뿐인데, 피부가 마치 나무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시내에 있는 피부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몸도 점점 붓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속초의료원에 갔는데 백혈구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너무 낮다고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이 병원으로 오게 됐어요. 안산에 큰누나가 살거든요. 저는 고성 살아요.”
“고성? 곡성 아니고 고성?”
“네. 강원도 양양 위에 있어요. 집에서 버스를 타고 안산까지 오는데 8시간 넘게 걸렸어요. 새벽에 응급실 도착해서 아침에 병실로 이동했어요.”
“우리 남편은 위내시경으로 암세포 조직을 채취했거든. 백혈병은 어떻게 진단해?”
“골수에 구멍을 뚫어요. 그라인더 같은 게 원을 그리면서 뼈를 갈아내는 게 그대로 느껴져요. 구멍이 뚫린 곳에 큰 주삿바늘을 꽂아서 골수를 뽑는데 그 느낌이 으~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너무 싫어요. 그렇게 10개 정도 뽑는 것 같아요. 너무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잤어요.”
밤새 앓는 소리가 났었는데 그래 서였나보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형님은 이 동네 살아요?”
“응. 여기서 차로 15분?”
“너무 부러워요. 전 고성에서 쭉 자랐어요. 거기서 홈페이지 만드는 일도 했었고, 인터넷 라이브 방송도 하고, 최근엔 막노동을 했어요. 형님은 회사도 이 근처인 거예요?”
“응, 여기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공단이 있거든. 치료 잘 받으면 괜찮은 거지?”
“글쎄요. 치료를 안 받으면 2달 안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일단 항암을 받기로 하긴 했는데요, 항암을 며칠 받고 나서 2주인가 3주 무균실에 들어가야 한대요. 그 후 검사를 해서 암세포가 5프로 미만이면 괜찮은데, 5% 이상이면 엄청 독한 항암제를 쓴 다음 두 달인가 다시 무균실로 들어가야 한대요. 마침내 암세포가 5% 미만이 되면 가족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으면 된대요. 제가 골수를 채취한 방법으로 가족들도 검사를 해야 한다는데… 저랑 맞지 않으면 그냥 버려진대요.”
“저는, 저와 같은 고통을 가족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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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매일 하나씩 업로드하다가 오랫동안 글을 업로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난 글에 댓글로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구독자 분들이 너무 많으셨어요.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하고, 이렇게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시 한번 따뜻한 마음에 든든했어요.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지난 이야기는 남편과 나만의 이야기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이제 다양한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조심스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앞으로도 글이 업로드되는 텀이 길어질 것 같아요.
미리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남편의 몸 상태는 그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
글이 늦어지더라도, 댓글과 라이킷으로 응원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