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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파울 클레&호안 미로




https://www.youtube.com/watch?v=p9Pkt8l1VyE





첼리스트 문태국이 연주한  가브리엘 포레 ' Apres un reve 꿈을 꾼 후에'입니다. 1877년에 작곡된 가곡입니다. 작자 미상의 이탈리아 시를 로맹 뷔신이 프랑스어로 옮긴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고요.꿈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깨어난 후 그 꿈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 성악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첼로 등 다양한 악기로도 연주되며 사랑받는 곡이지요.



작가님들, 어떠신가요? 방금 들으신 첼로 음악을 그림으로 그리신다면  어떤 스타일의 그림이 그려질까요? 오늘은 듣는  음악을 볼 수 있는 회화로 표현한 , 다시 말해 음악과 미술을 연계한 스위스태생 독일작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와 꿈과 환상의 무한한 세계를  독특한 상상력과 유머로 그려낸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의 삶을 살펴볼까 합니다.






 


추상화의 개념부터 간단하게 알아봅니다. 종이 위에 점을 하나 찍고 그 점이 모여 선이 됩니다. 선이 모이면 면이 만들어지죠. 도형 같은 간단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기본 조건이 되는 거지요. 이런 형태에 색을 입혀서 무궁무진한  세계의 탄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라틴어 'Abstractus'에서 나온 '추상 abstract'이란 개념의 어원인 이 말은 ' 제거하고 , 버리고, 떼어내고'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았던 사실적 그림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본인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내고 버리고 완성한 그림을 말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개인적 관점이 더 많이 부각된 그림이란 뜻이죠.




기존의 왕이나 귀족 같은 가진 자들이 주문을 하면 그 주문에 맞는 그림을 완성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장인'이라 불렀지요.  반면 20세기 초, 혹은 그 이후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누리면서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세상을 통해 얻은  어떤 것, 혹은 그것들을 다르게도 이해할 수 있는지를 시각화한 결과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작품을 한 번 살펴볼까요.




1. 미소 짓는 사스키아의 초상, 1633/엠디저널 2. 모자를 쓴 여인 , 앙리 마티스 /나무위키
3.알렉세이 본 야블렌스키 Allexej von Jawlensky, 추상적인 두상Abstract Head: 핑크색의 심포니 Symphony in Pink/ Sta"de Museum




1번 그림은 렘브란트가 자신의 아내'사스키아'를 그린 그림입니다. 모자, 얼굴, 옷의 문양까지 디테일이 강하죠.  2번 그림은 야수파(Fauvism)를 이끌었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자신의 아내를 그린 <모자를 쓴 여인>입니다. 1번 그림의 '얼굴' 빛깔만 비교해 봐도 차이가 나지요. 렘브란트의 실물에 가까운 살구빛 얼굴이 마티스 작품에서 초록의 얼굴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번 렘브란트 그림에 비하면 2번 마티스의 그림은 초상화가 조금 이루어진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3번 그림은 러시아 태생의 표현주의 화가로,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Alexej von jawlensky)의 작품입니다. 1번 렘브란트 그림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상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얘기지요. 





기존의 그림들, 특히 17,18세기 그림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화상을 그릴 때 1/3 정도 틀어진 자세로 그렸습니다.  선에도 아름다운 선(S선)과 추한 선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수평의 선과 수직의 선도 특별한 의미를 자지고 있었지요.  얼굴 표현은 살구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주인공의 얼굴을 돋보이기 위해 배경은 어둡게 처리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이렇게 다양한  암묵적 법칙이 전해 져 내려왔습니다.  변형은 가능했지만 정해진 규칙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20세기 초, 혹은 그 이후 야수파(Fauvism)와 입체파(Cubism)를 거치며 덜어내는 작업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추상 미술은 표현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개성이 넘치는 독특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기존 건축물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말이죠. 





당시 화가들은 색채와 형태를 과감히 정리해 나가면서 기존의 쓰던 색을 버리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던 형태에서 벗어나 개성 어린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추상미술의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현대미술은 가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세계를 잘 구현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으로 음악과 미술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화가들도 등장하게 됩니다. 






상상력과 독창적인 발상과 표현이 예술가들에게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요구되었습니다. 예술가의 독창성은 작품의 개성으로 이어지고, 그 개성들이 하나하나 모여  작품의 다양성을 만들어 냅니다. 




이제 감상하는 자의 눈을 기쁘게 하는 망막의 즐거움을 느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감상자가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고 사유하는 그림의 시대가 열린 거지요. 공부하지 않으면 작가의 의도를 알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시대정신 또한 변하고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예술 또한 변해가지요. 추상미술이 어렵고, 난해한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을 존중해 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역시 선택당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느끼는 자유도와 독특함 , 그리고 다양성이 더 큰 것처럼 말입니다. 피카소 작품을 통해 추상화의 개념을 한번 더 잡고 갑니다. 





피카소 석판화 연작,The Bull, 그래픽/DBR




 1945년 석판화로 제작된 피카소의 <황소> 연작입니다.  11개의 순차적인 스케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근육과 골격이 투박하고 힘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점점 근육들이 조금씩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면조차 사라지면서 황소의 골격과 근육은  몇 개의 선만 남기고 모두 제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이미지는 그대로 살아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황소를 구성하는 형태의 본질만 남은 것이라서 그렇지요.





 화가들 입장에서  오히려 어떤 것을 생략하고 어떤 것을 덜어낼지 결정하려고 고민하는 경우가 더 어려웠을 겁니다.  있는 것을 다 그려내는 능력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능력이라서 말이죠. 가지고 있던 것 중 빼기가 더 어렵다는 거 작가님들이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덜어내기만 잘해도 삶이 좀 편해질 텐데 말이죠. 






스위스 화가이자 판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면과 색으로 형태를 이룬 강렬한 대비가 특징입니다.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고 엉뚱해 보이는 그림을 그렸고요. 보이지 않는 이면을 그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평생 9천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캔버스에 그린 것은 적고, 신문지,  천, 붕대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한 소품이 많습니다. 음악과 여행이 그의 작품의 큰 영향을 미쳤고요.





클레는 일생 동안 미술 재료부터 다양한 화파의 연구까지 평생 실험하고 실천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어떤 스타일이나 재료에만 빠져있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래저래 시도하고 미리 테스트가 필요해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이즈가 작습니다.  모든 미술 사조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이 아이스러워 보이는 것은 다양한 실험의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1. Hilterfingen, July 19,1895/S.R. Guggenheim Museum 그림2. Prades, the Village,1917.Summer/구겐하임뮤지엄



<그림1>.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를 추상화 작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나 초기엔 사회를 풍자한 캐리커쳐, 판화, 선화, 드로잉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드로잉에서 진가를 발휘했죠. 베른주의 힐터핑겐(Hilterfingen)마을 풍경을 잉크로 그린 이 드로잉도 그의 수준급 묘사력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한 당시 그의 나이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후 추상화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는 탄탄한 드로잉 실력이 바탕이 됐습니다. 






<그림 2>. 초기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의 그림에서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표현주의 성향의 그림, 분할되어 있는 붓터치, 병렬적인 색조합이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그는 사물에 대한 정밀한 형태적 감수성과 서정적인 감동을 조화롭게 표현했습니다. 미로가 파리로 가지 전, 스페인의 시골 마을 몬트 로이그에서 요양하며 그린 것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는 고향 카탈루냐 지역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년 여름 카탈루냐의 몬트로이 마을에 있는 농장으로 돌아왔지요. 그러고는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의 분위기를 작품에 표현해 냅니다. 








피카소 보다 더 뛰어난 다가오는
 새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
<파울 클레에 대한 논고>1957~1958-





<존재와 시간>이란 책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1889-1976)는 피카소보다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를 더 뛰어나다며 칭찬했습니다.



그림1.Flower Myth, 1918/wikipedia 그림2. Red Ballon,1922/Paul Klee




튀니지/ 위키백과





1914년 4월 친구들과의 12일간 튀니지 여행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된 파울 클레.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 튀니지 문화를 통해 색채의 리듬과 패턴에 대한 영감을 얻은 그는 입체파, 상징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점, 선, 면과 같은 단순한 형태와 원시미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요.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파울 클레. 파울은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과 여행을 통해 얻은 색채 영감을 단순한 형태로 결합해서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강력한 빨간색이 매력적인 1918년 < Flower Myth>를 시작으로 독창적인 그림들을 만들어 냅니다(그림 1).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허덕이던 유럽의 미술계에 색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
-파울 클레-





<그림 2>. 파울 클레의 작품 <빨간 풍선>은 다양한 기하학적 요소와 색채의 조화 속에서 붉은 풍선을 중심으로 표현된 그림입니다. 클레 특유의 상징적이고 시적인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강렬한 빨간 풍선을 태양으로 해석할 수 도 있습니다. 클레는 무명천에 초코를 입히고, 종이에 검은색 유화 물감을 칠한 뒤 그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어 제작했습니다.




파울 클레는 튀니지의 풍경을 보고  색채를 다양하게 혼합해 강하게 시선을 끌어들이는 밝은 톤의 작품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또 초기의 판화나 드로잉과 달리 점차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상징을 드러내며 추상화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나무, 집 같은 고유의 모양을 드러내면서도 원, 사각형, 삼각형 등 기하학 형태로 승화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구상화와 추상화 양식을 동시에 취하는 독창적인 추상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빛바랜 듯한 색채도 이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림 3.  Portrait of Mis.P. in the South/Guggenheim Museum




시칠리아/위키백과







1924년 여름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해에 제작한 이 작품이 말해주듯 시칠리아에서 마주한 황금빛 태양과 붉은 노을은 튀니지 여행과 마찬가지로 파울 클레의 작품에 새로운 틀을 제시했습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종이에 그대로 옮긴 듯한 붉은색과 오렌지색은 이전 작품에선 볼 수 없는 대담함입니다. 그는 주인공의 모자를 삐뚤게 그려 신분을 짐작할 수 없게 했고, 가슴에는 하트 문양을 더해 생명력을 상징했습니다. 이 문양은 그가 이 시기 작품에 종종 활용한 이미지로, 때로는 입, 코, 몸통에 유사한 모양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작품 표면에 퍼져 있는 어두운 얼룩도 파울 클레가 자주 사용한 전사 기법으로 완성했습니다. 구상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마치 만화처럼 코믹하게 그린 초상화입니다. 물론 상대방은 불만스러웠을 겁니다.





    

호안 미로( Joan Miro, 1893-1983)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예술가입니다. 특히나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얻은 해변 마을에서의 영감과 고향 카탈루냐 지역에서의 자연 풍경들은 그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스페인 카탈루냐 역사를 먼저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카탈루냐는 중세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했습니다. 1469년 카스티야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의 결혼으로 스페인에 합병되었지요. 이후 자치권을 얻었지만, 프랑코 독재 시기에 다시 박탈당했습니다. 카탈루냐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GDP의 20%를 차지할 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합니다. 독립을 원하는 이유는 문화적 차이, 경제적 불만, 그리고 중앙정부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출처: 에펨 코리아





https://www.youtube.com/watch?v=-xEWhDehSgc






그림1. The Tilled Field,1924/wikipedia 그림2. The Carnival of Harlequin, 1924-1925/ wikipedia


그림2. The Carnival of Harlequin, 1924-1925,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wikipedia




<그림 1>. 호안 미로 (Joan Miro, 1893-1983)가 파리에서 초현실주의를 접하면서 , <경작지 The Tilled Field>(1924)라는 작품을 제작합니다. 호안 미로의  초기 초현실주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의 가족 농장이 있는 카탈로니아의 몽 로이그를 배경으로 그렸고요, 대담하고 유기적인 형태와 선명한 색상을 특징으로 하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은 하늘, 바다, 땅을 나타내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다양한 인간과 동물 형상이 혼합되어 있고요. 중앙의 나무에는 눈과 귀가 그려져 있고, 이는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상징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dvLh2WLnUA





https://www.youtube.com/watch?v=OZ4S0i2po4o








<그림 2>. 1925년 파리에서 자신의 첫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1929년 결혼도 하고 발레 공연 코스튬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 작업들을 했습니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표현은 < 어릿광대의 사육제 The Carnival of Harlequin>(1924-1925)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미로의 파리에서의 삶이 극도로 가난하여 배고픈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배고픔과 고립은 그에게 수많은 환각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춤추는 고양이, 주사위모양의 상자 안에 날개가 달린 생명체, 떠다니는 음표 등 알아보기 어려운 환상적인 요소로 가득 찬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그리며, 이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캔버스에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미로가 유명세를 얻기 직전에 제작된 것으로서 자신의 상상력이 최대치일 때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대표작입니다. 이 그림이 중요한 이유는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선언하고 난 후 미로와 앙드레 마송( Andre Masson, 1896-1987)이  초현실주의를 회화에 적용시킨 첫 작품입니다. 보고 있으면  좀 어지럽죠. 알록달록한 색감에 곡선들이 많아서 장난기가 많아 보이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EyZKAeqdEN4







알프레드 바(Alfred Barr, 1902-1981)의 <현대미술사 도표>입니다. 미국의 선구적인 미술사학자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이었습니다. 그는 1929년부터 1943년까지 이 역할을 맡으며 미국에서 현대 미술을 홍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범위를 건축, 사진, 산업 디자인 등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쯤 해서 수많은 사조들로 인해 혼동이 올 수 있으니, 표 하나를 삽입합니다. 야수파와 입체파의 위치를 확인하시고, 위아래 살피셔서 길 잃지 마시고 잘 따라오세요. 













1921년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함께 당시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제의를 받습니다. 청기사파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칸딘스키와 함께 10년간 바우 하우스 교수직을 역임합니다.(바우하우스에 관한 다큐영상, 맨 아래 칸에 있습니다. )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는 1911년부터 1914년까지 활동한 독일 표현주의 화풍의 하나입니다. 1911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독일 표현주의 그룹이죠. '푸른 기사'라는 어원은 칸딘스키와 마르크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했던 두 요소인 푸른색과 말을 상징합니다. 마르크에게 말을 비롯한 동물은 순수한 영혼성을 대표했고, 칸딘스키는 푸른색을 현대의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시원한 색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사실주의를 거부하고 색채와 형태의 과장을 통해 정신적, 초자연적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청기사파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활동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해산되었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크(Wasily Kandinsky),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파울 클레(Paul Klee),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unter) , 아우구스트 마케 (August Macke) 등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69wOKg6yp4











미술이 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문학과 같은 세부 묘사로 머물면서
모방의 노예가 될 것이다.
 -파울 클레-








Angelus Novus, 1920/wikipedia








파울 클레가 자신만의 오일 전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모노프린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넓게 뜬 눈, 벌어진 입, 펼쳐진 날개를 가진 천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연관성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파울 클레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벤야민은 자신의 글에서 이를 "역사의 천사"로 해석하며 역사를 일련의 재앙으로 보았습니다.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가 과거의 파괴와 잔해를 바라보며,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만 강력한 바람에 의해 뒤로 밀려나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역사가 구원 없이 지속되는 비극적 과정이며, 진보라는 개념이 오히려 이러한 파국을 가속화하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z9rLqxlA8do












그림1. Senecio( Baldgreis, Soon to be Aged), 1922, Kunstmuseum Basel/Wikimedia Commons

                 그림2. <추수 The Reaper>(1936), Joan Miro/ Britannica






<그림 1>. 이 그림은 <세네치오(Baldgreis, Soon to be Aged)>(1922)라는 이름의 작품입니다.  다양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합해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만의 동그라미로 그린 얼굴입니다. 기법적으로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개성이 넘치는 작품이지요. 각각의 도형과 색채를 통해 본인만의 개성을 맘껏 표현했으니까요. 




얼굴의 큰 윤곽을 먼저 그리고 세부적인 눈, 코, 입을 그리는 우리와 달리 파울 클레는 작은 점에서 시작합니다. 하나의 간단한 음표 하나로 작곡이 시작되듯 선으로 면을 분할하며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갑니다. 43살 중년이 된 클레가 바라본 노년의 색과 분위기입니다. 


Paul Klee's Pedagogical Sketchbook/UTA GTA Teaching-WordPress.com



 



그는 삼각형의 눈썹과 직사각형에 가까운 턱과 뺨, 이마 등 크게 여섯 조각의 면으로 나누었습니다. 붉은색으로 유독 눈이 강조되어 있죠. 파울 클레가  선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도식화한 혈액 시스템(Circulatory System)이 있습니다.



"Circulatory System"은 그의 작품에서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을 표현한 요소로, 선의 움직임을 통해 음악적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그는 선을 활동적, 수동적, 중립적으로 나누어 심장 박동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즉 심장의 박동 근처에서 출발한 활동적인 선이  중립적인 선을 지나 심장박동 같은 자극이 있어야 움직이는 수동적인 선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그린 그림 같은 <세네치오> 작품에 복잡한 이론이 숨겨져 있어 의외라는 생각도 들 겁니다. 붉은색  눈에 표현된 활동적인 선, 중립적인 선, 그리고 수동적인 선을 통해 질서와 규칙에 입각한 파울 클레만의 개성만점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1936년. 호안 미로( Joan Miro, 1893-1983)는 스페인 내전에 자극받아 대형 벽화를 그렸습니다. 1937년 <추수 The Reaper>라는 제목의 그림벽화는 훗날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공화국관에 걸려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카탈루냐의 농부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낫을 든 농부를 그려, 당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과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The Reaper ,1936/ Phillips Auction





The Reaper/ Surovek Gallery






https://www.youtube.com/watch?v=BqLGRLKbvLY








스페인 내전(1936-1939)은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우파 군부 간의 갈등으로 발생했습니다. 내전은 민주적 개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의용군이 참여했습니다.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승리하였고, 이후 36년간 독재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며, 5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의 주요 원인은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갈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30년대 스페인은 좌파와 우파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좌파 인민전선 정부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요. 우파 군부는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는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파시즘과 민주주의 간의 갈등이 스페인 내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스페인 내전에 관한 풀 영상 맨 아래쪽에 있습니다. )




사진1.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헤밍웨이(가운데)/위키백과사진2. 1935년 비미니로 떠난 낚시 여행에서의 어니스트(어니스트,폴린, 잭,패트릭, 그레고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 Ernest Hemingway , 1899-1961)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절제된 문체와 '빙산 이론'으로 유명하죠. 작가는 이야기의 표면에 드러난 부분만을 보여주고, 그 밑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와 감정은 독자가 상상하고 해석하라는 말이죠. 



전쟁과 인간의 존재 조건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 <노인과 바다, 1952>, <무기여 잘 있거라, 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0>등이 있으며,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헤밍웨이에 대한 풀 영상 맨 아래쪽에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OVVrLRi-xgs




피카소, 게르니카, 1937,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위키백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위키백과





이 혼란의 기간은 많은 예술가들이 역사적인 작품을 배출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지어진 작품들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37년 제작된 대형 유화로, 스페인 내전 중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상과 민간인들의  고통을 표현한 강력한 정치적 성명으로 , 반전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회색, 검정, 흰색의 단색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혼란과 폭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_VSixma864






베른/ 몽트래블 유럽여행 







음악의 시각화를 시도한  파울 클레는 1879년 스위스 베른 인근의 작은 마을 묀헨부흐제(Munchenbuchsee)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문학,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요. 독일인 아버지는 베른 국립음악학교 교사였고 스위스인 어머니 또한 성악가였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시죠? 파울 클레는 7세에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해 11살에 이미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여는 베른음악협회의 명예회원이 되었습니다. 그정도로 프로급 바이올린 연주실력을 갖췄다는 얘기지요. 그와 동시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지요. 그의 뛰어난 재능에 가족들조차 그가 나중에 무엇이 될지 궁금해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계속 걷기를 바랐으나 클레는 미술을 선택합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파울 클레-









 클레는 작곡과 회화는 동일한 창조 과정이라는 원칙을 출발점으로 자신의 작업을 실험적으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음악과 미술의 근본 구조는 동일하다는 생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음악을 소재로 한 몇 작품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림1. Fuge in Rot,1921/Pinterest 그림2. Polyphony, 1932/ Wikimedia Common

youtube : No.4b from Paul Klee:painted songs(Johnathan Posthuma)





그림1. <붉은 색의 푸가 Fuge in Rot>(1921) 작품은 푸가의 구조와 조성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푸가 Fuge'는 같은 음이 반복되는 음악의 한 종류입니다. 'Rot'는 '붉다'라는 뜻의 독일어이고요. 멜로디와 박자가 반복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운이 남아있는 것처럼 시간성을 그려냈고요. 전체적인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고, 연주되는 음악의 분위기는 어떤지 전해받을 수 있도록 선, 리듬과 색채의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Y2FGwrrzOqs





<Polyphony>(1932) 작품은 음악의 다성부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클레는 색채를 통해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했습니다. 배경의 색상 블록은 깊은 베이스 화음을 시뮬레이션하고, 표면에 다양한 색상의 작은 점들을 배치하여 바흐의 폴리포니 구조와 유사한 대위작법 요소를 구현했습니다. 이 점들은 서로 다른 색상과 크기로 배치되어 다양한 음의 흐름과 조화를 시뮬레이션하며, 복잡한 음악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템페라 기법으로 린넨에 그려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ljs3kjJS0Ys








그림3. Pastoral(Rhythms), 1927/wikiArt.org


<목가(리듬)Pastorale (Rhythms)>(1927)은 파울 클레가 바우하우스 시기에 창작한 추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템페라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그려졌습니다. 클레는 이 작품을 통해 리듬과 추상을 탐구하며,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의 조화를 통해 음악적인 특성을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Highway and Byways, 1929 by Paul Klee/Paul Klee.net





작곡을 하듯이 선으로 면을 분할하며 음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움직임을 사각형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지요. 이 형태 위에  색채를 입히고 온화한 노란색과 다소 차가운 파랑의 대비를 주며 분위기와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기하학적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로 선을 긋고 분할한 것이 아닙니다. 1/2, 1/4,1/8,1/16 음악의 박자처럼 면을 분할했습니다. 



파울 클레의 음악적 회화를 완성하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질서와 체제 속에서 음악처럼 조화로운 그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TyX5kD3o0k







미로가 그려내는  우주에는 지상과 천체를 구분하는 지평선이 없습니다. 그 우주는 태양과 달, 별, 여인의 시각적 모티프로 구현됩니다. 각각의 모티프들은 마치 '이디어그램(Idogram:표의문자)'를 연상케 합니다. 별자리를 이용하여 재미있게 그림을 만들기도 하였고 짙고 밝은 색채와 추상적인 곡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하게 상상하게 만듭니다. 



초기에는 다양한 예술 집단과 다다이즘에 속한 화가,  시인들과 교류하며 점차 사실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소박하면서도 찬란한 색채,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해 나갔고, 이후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미로 특유의 상징적인 모티프를 구축하며 그만의 독특한 우주론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가 경험해야 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은 그를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를 일상으로부터의 도피하게 만들었지요. 이러한 소외감과 예술에 대한 실험은 < The Constellations 별자리 시리즈>로 흘러갔습니다.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미로는 전쟁 이후의 잔혹한 현실 대신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이를 그림에 표현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다듬어 나가게 됩니다. 별, 여자, 새 등 상형문자적 형상을 구사하여 유아적 천진난만함에 절묘한 기술이 매치된 시를 회화화 했습니다. 






그림1.  Constellation the Morning Star,1940/그림2. The Constellation: Toward the Rainbow,1941/Reddit




그림1. <별자리 :아침 별 Constellation the Morning Star>(1940)은 유명한 별자리 시리즈의 일부로 1940-1941년 사이에 제작된 23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전쟁으로 피난 중인 미로가 프랑스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동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작품들은 탈출, 자연 그리고 천체  이미지를 주제로 하며, 별, 새, 인간 형상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기호 언어를 사용합니다. <아침 별>은 미로가 아내에게 선물된 후 나중에 호안 미로 재단에 기증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시적인 강렬함과 종이에 구아슈를 활용한 혁신적인 사용으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단어가 시를 만들어내고,
음표가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색을 쓰려한다. 




1940년대부터 제작된 23점의 시리즈인 <The Constellations:    별자리 시리즈>는 모래시계 모양과 별, 눈, 원, 삼각형, 초승달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얇은  검은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우주의 마법 같은 별자리를 연상시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호안 미로의 초기작과 초현실주의적 작품들과는 또 다른 단순화된 형태와 색채를 사용하여 구성된 자신만의 추상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HZTmc5WAM0











1931년 뒤셀도르프의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일하던 클레는 새로운 색칠 기법을 시도했습니다. 미리 색칠해 놓은 배경색 위에 물감을 한 방울씩 찍어 발랐습니다. 모자이크처럼 생긴 이 그림은 클레의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큰 크기를 자랑합니다. 




Ad Parnassum,1932/wikipedia




1923년부터 클레는 '매직 스퀘어'라고 칭한, 상징적인 색상을 사용한 상상 속의 색상으로 구성된 일련의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 시리즈 중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파르나소스산에서 Ad Parnassum>(1932)입니다. 이 그림은 현실과 기억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의 조화를 이루며 그려졌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그리스 델포이 인근의 파르나소스산에서 따왔습니다. 파르나소스산은 태양의 신 아폴로와  아홉 뮤즈기 살고 있는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지요.  '파르나소스산에서'를 의미하는 작품 제목은 아치형의 문을 통과한 후 펼쳐지는 파르나소스산에 이르는 길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빛나는  주황색으로 그린 원은 태양을 연상시킵니다. 긴 대각선으로 형성된 큰 정상은 지붕, 산 또는 피라미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클레는 자신의 그림들이 추상적이지만 기억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그림은 클레가 1928년에 이집트를 방문하여 직접 본 대피라미드 또는 클레에게 매우 익숙했던 스위스 알프스산맥 툰 호숫가의 니센산을 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출처:pin page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 폴 시냑(Paul Signac, 1863-1892)등 후기 인상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점묘법'을 기반으로 화폭 위에 작곡을 한 파울 클레(Paul Klee). 그는 이 작품을 둘 이상의 독립된 성부로 구성된 음악인 '다성음악'으로 재해석을 하고, 그림의 구조, 선, 색채 등의 배열을 통해 화폭을 완성해 나갑니다.  작은 점에서 시작해 선을 거쳐 면을 이루고 끝없는 움직임 속에 다성의 울림이 함께 존재하는 식으로 말이죠.  




누구나 보지만 보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능력이라고 말한 파울 클레. 그의 이런 시도가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의 눈에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새 시대의 예술가로 파카소보다 그를 더 높게 쳐주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EpKh3-PI




 

종전 후,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는 세라믹, 판화, 도서 삽화 그리고 조각과 같이 다양한 아이템을 가지고 자유롭게 실험하는 작가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재료적인 특성의 실험뿐만 아니라 그림 스타일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습니다.  



 1946년  첫 조각품을 만들게 됩니다. 처음에는 청동으로 작게 작업하였다가 나중에는 미로의 특징적인 색과 상징들의 표현된 독특하고 재미난 조각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1.Girl escaping, Sculpture and ceramics, 1967/ Foudacio Miro 2. Solarbird, Sculptures &ceramics,1968




2. 호안 미로의 <태양 새>(1968)는 조각과 도자기 세라믹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의 독특한 상징 언어와 색채 사용이 돋보입니다.  태양과 새를 주제로 하여, 자연과 우주를 연결합니다. 미로는 일상적이 사물을 예술로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조각은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예술적 실험과 창의성을 잘 나타낸 작품이지요. 또한 조각이라는 매체는 호안 미로에게 자신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3.Model for Moon, Sun and one Star,1968/Alamy

 



호안 미로의 작품 <달, 해 그리고 하나의 별>(1968)은 1968년에 제작된 조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 1층 North Patio 에 위치해 있습니다.  원래 미국 시카고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바르셀로나에 남게 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동, 시멘트, 도자기 타일로 만들어졌으며, 미로의 독특한 상상력과 상징직인 언어를 표현합니다. 작품은 천체와 자연의 요소를 결합하여 우주론적인 시각을 제공합니다.  관람객에게 다양한 해석은 덤이지요.






4. Sobreteixim with eight umbrellas, 1973,Textiles/Flickr 6. Dona i Ocell, 1983/wikipedia 5. 여자와 새

                                             



미로의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는 오브제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노끈, 마네킹, 수도 펌프 등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을 새롭게 조합해 창조했습니다. 



 4. 호안 미로의 작품 < Sobreteixim with Eight Umbrellas>(1973) 입니다. 이 작품은 전체 벽을 차지하며, 여덟 개의 우산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미로는 전통적인 회화 매체를 넘어섰으며, 회화와 직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습니다. 작품은 두꺼운 직조의 질감을 강조합니다. 색채와 형태가 조화를 이루어 미로의 추상적인 회화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5.1982년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Joan Miro) 공원에 설치한 '여자와 새'공공 미술 작품이 미로의 공개된 마지막 작품입니다. 높이 22m 도자기타일 조형물입니다. 바르셀로나 시청을 위해 제작한 <여자와 새>는 시멘트 뼈대에 도자기 타일을 씌운 미로의 마지막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1933년 파울 클레는 뒤셰도르프 미술대학으로부터 갑자기 해직 통보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나치가 클레를 급진적인 미술가로 분류하고 유대인으로 몰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애써 쌓은 미술가로서의 가치를 모두 잃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1935년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려 했으나, '피부경화증'에 걸려 깊은 무기력 감에 빠져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시기가 옵니다. 2년 간의 치료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Characters in Yellow by Paul Klee,1937/TheHistoryof Art.org






파울 클레가 죽기 3년 전 완성한 이 그림은 말기 작품 중에서도 컬러감과 율동감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꼽힙니다. 그의 작품을 다수 보유한 바이엘러 재단도 이 작품을 대표 소장품으로 인정할 정도입니다. 그는 작품 전반에 음악적 구조를 대입, 캔버스에 율동적인 선과 색채를 얹어나가며 규칙과 불규칙 사이를 조율했습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기호를 주로 표현하면서 특히 선과 도형의 리드미컬함이 도드라졌습니다. 그에게 캔버스는 악보였습니다.  물감은 음표나 마찬가지였고요.  그는 194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듬과 패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캔버스에 다양한 색조와 율동감을 드러낸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1975년, 호안 미로는 친구인 세르트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호안 미로 미술관을 설립합니다. 미로의 친구인 건축가 조세프 루이스 세르트(Jose Luis Sert)에게 의뢰하여 지은 건물로 지중해 전통 양식인 자연채광을 이용한 하얀색의 건축물입니다. 피카소처럼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에 미술관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자연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습니다. 




몬주익 언덕에는 그러한 호안 미로의 그림, 세라믹, 조각 등의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호안 미로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로 미술관은 그저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아닌 건물 디자인, 작품 등 무엇 하나 호안 미로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미술관에는  미로가 기증한 그림 200여 점, 조각 150점, 스케치는 무려 5000여 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미술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미술관을 세운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신진 작가들을 위하여 대관을 할 수 있도록 하여서 현재에도 미로의 미술관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Jose Luis Sert, Modernist, Urban Planning, Harvard/Britannica




https://www.youtube.com/watch?v=2oWovPctp-E






음악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파울 클레. 그는 음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에 다가갔습니다.  자신만의 선, 리듬, 색을 이용해 마치 작곡을 하듯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지요. 두 화가 모두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무엇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화가들입니다. 



선하나 몇 개 그려놓은 화가들의 작품 앞에서 당황해하는 모습,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암묵적인 규칙을 깨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힘 빼는 작업을 했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는 결과물이었다는 점. 그 통 큰 자유로 인해 독특한 개성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요. 








<Bauhaus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g3X1vZN5TA



<스페인 내전> 다큐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u5f9hp0IP4



<헤밍웨이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Ovlqo6yXr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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