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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25. 2024

천등

타이완 여행 중에 천등을 날렸다. 소원이 아니라 희망을 담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하늘을 거꾸로 솟아오르는, 비를 뚫고 멀리 솟아오르는 종이등을 보면서 나의 모든 사랑하는 지인들과 나의 건강과 행복, 사랑을 응원하는 제사장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닐우비를 입은 영험하지 못한 제사장이지만 천등이 비를 뚫고 하늘로 꾸역꾸역 떠오르듯이 나의 마음이 어떤 영험함 보다 더 강하게 빛을 발해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두 팔을 높게 뻗으며 서 있었다.


밥만 먹어도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겠지만 밥조차 먹지 못하는 세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밥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는 꿈을 잃어 가는 영혼들의 무덤이 존재한다. 무덤이 점점 더 늘어서 이제는 켜켜이 쌓여가니 서로가 서로의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보듬어줄 여유조차 없다.


스스로의 어둠과 슬픔을 마주할 용기도 나지 않아 타인은 그저 타인이길 바라게 된다. 그럼에도 실은 매일 천등을 날리며 산다. 천등을 날리는 열기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매일 작은 불을 지피며 작디작은 천등을 수없이 올려 보낸다.


어쩌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살아가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의 믿음과 희망이 신이 되어 준다면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타이베이에 다다른 수많은 타국인들이 천등을 날리는 희끄무레한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에 없는 희망이 그들에게 또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천등을 띄우던 그날에 내가 감히 신을 대신했던 그날에 나의 가슴과 눈과 입을 스쳐간 모든 이름과 얼굴들, 좋은 기억 속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있는 삶이 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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