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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23. 2024

타이완, 타이베이 그리고 나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고 죽은 듯 하지만 살아 숨 쉬는 도시의 아침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타이베이 사람들의 들숨날숨은 축축한 공기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비가 내리면 함께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져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그들의 숨소리가 내게는 고요했고 테너의 저음 같은 낯선 공기였다.


'축 늘어진'이라는 표현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져 나는 억지로 눈을 한 번씩 부릅떴다. 무덤에 갇혀 벗어나려 애쓰며 흙을 긁어 대는 나의 영혼의 몸부림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했다. 도시는 밀림이었으며 늪지대였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쏟아지는 가지들을 가진 억세고 우락부락한 몸의 나무들이 빼곡한 거리를 걷지 않고 차로 이동하는 것을 감사했다.

도시 중앙에 나를 내려놓지 않는 기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며 타이베이 도시인들에게는 미안함을 표했다. 타이베이의 괴이스럽게 그늘진 거리를 사랑할 수 없는 나는 못된 이방인이었으며 추방당해 마땅한 인물이었다. 나를 머물게 해주는 이 도시에게 아무 감탄도 보내지 않는 것은 내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타이베이에서 유일하게 내게 존재하며 의미 있는 가이드와 드라이버에게는 끊임없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들이 내게는 내 나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으며 그 세계를 사람의 세계로 인식하게 해주는 증명이었다.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갈수록 나는 더더욱 음침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군데군데 푸르스름한 잿빛 하늘과 짙어지는 안개가 백 년 된 음식점 안의 나를 덮쳐 올 때의 그 공포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일으켰다.


백 년 된 음식점 담벼락 사이사이에 잠들어 있을 찌든 음식 냄새와 죽음의 냄새가 안갯속에서 피어날 것 같은 습기에 몸서리를 치며 안개가 다시 떠나며 절벽아래 바다를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안개는 물결처럼 흩어졌다 밀려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취두부 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뒤섞인 역사의 거리를 위로 아래로 뒤섞여 바삐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고스트무리로 보였다. 나는 어쩌면 신기루의 거리 아니, 상상의 거리에서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천등을 날리던 순간에 쏟아지던 빗줄기를 기억한다. 대박이라고 쓴 천둥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순간 내리던 가느다란 빗줄기를. 이 불결한 방문객에게 그곳의 하늘은 희망을 내려주었다. 무엇이 나를 품어 주었을까? 


"타이완의 남부는 날씨도 다르고 관광하기 좋아요."


가이드가 남겼던 그 말에도 나는 다시 타이완을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천등을 축복해 주던 그 빗줄기를 잊지 못해 내어주지 못한 내 마음의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빌며 감사했다. 무사히 머물게 해 줬던 도시의 아량에 진심을 담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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