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엉덩이에 힘빼세요. 엉덩이에 힘주시면 아픕니다."
군대에서 의무대대에 있었다. 행정병이었지만, 행정병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병 일도 같이 해야만 했다. 내가 두드린 골반쪽 윗 엉덩이와 놓아준 주사가 결코 적지 않다. 엉덩이에 힘을 줄 수록 근육이 긴장되어 더 아프다고 하는데, 본 글을 쓰기에 앞서 이게 떠오른다.
'저항하면 지속된다'라는 은근히 퍼져있는 명제에 대해서 말을 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이해하고 직접 시도해볼 수 있는 사람들은 복받았다고 생각한다. 부처가 왜 '중도'에 대해서 말을 했을까? 예수가 왜 7번씩 7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을까? 나도 모르다. ㅎㅎ ;;
카르마 뱀파이어는 상대의 카르마를 뺏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 및 확장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어떻게 카르마가 전달되는가? 약하게는 상대의 나의 존재의 '인식', 강하게는 강렬한 '감정 반응'이다. 게다가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저항을 느끼는 일, 싫어하는 일은 왜 '반복'해서 일어나는가? 왜 그 새끼는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는 것일까? 애초에 그 사람과의 접점은 왜 이렇게 잦은 것일까? 왜냐하면 내가 맛있는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있어 나는 카르마 자판기다. 살짝 건드려만 주어도 강렬한 감정의 다량의 카르마를 마구마구 뿜어주는데 왜 멀어지려고 할까, 잘 퍼주고 맛있는데 떠나갈 이유가 없다. 그에게 나는 꿀단지다. 진드기를 관리하는 개미가 떠오른다. 나는 톡 건들면 카르마 뿜어주는 진드기, 그것은 나를 떠나지 않으며 관리하는 개미. 물론 그는 개미처럼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저 착취할 뿐이다.
그 인간은 왜 나를 어장관리 하는 것일까? 왜 나에게 그토록 애증의 대상인 것일까? 왜 내가 멀어지려고 하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려고 하면 멀어질까? 왜냐하면 그라는 카르마 뱀파이어에게는 당신이 무한리필 짬짜면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애정은 짜장면, 당신의 증오와 실망은 짬뽕. 근데 비용도 지극히 적다. 그냥 가끔씩 자신의 존재만 툭툭 등장해주면 알아서 짬짜면을 가져다 바치는데 당신과의 관계를 끊을 필요가 있을까?
저항하면 지속된다. 왜냐하면 저항 또한 훌륭한 카르마이기 때문이다. 긍정적 관심과 부정적 관심보다 무서운 것, 가장 무서운게 '무관심'이라고 하다. 무관심은 카르마 거래가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내가 여전히 맛있다면, 상대는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맛이 없어지는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맛이 없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힌트는 무관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을 활짝 환영하는 것을 통해서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감싸 안아야 한다.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도 참 어이가 없지만 그게 진실이다. 진실. 불변의 진실이다. 지구가 망하는 끝날까지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아 물론 내가 적는 글은 보통은 '행동'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하시고, 내가 말하는 것의 적용은 '마음', '내면' 차원에서 접근하시면 된다.
예를 들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개무시'하는 것이 방법일까?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가 밉고 싫고 그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나는 진정으로 맛없어진게 아니다. 여전히 맛있어 보일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다. 증오의 대상, 저항의 대상에게 어떻게 '무관심' 상태로 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상대에 의한 카르마 갈취를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내가 저항하는 그 대상을 환영하고 끌어안는 것을 통해서, 간디처럼 무저항으로 가는 것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쉽다면 지극히 쉽고, 어렵다면 너무나도 어려운 그것이다. 구조적 함정도 있다. '내가 그것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사랑해버리면,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고 나를 더 괴롭히면 어떻게 하지?' "일단 해보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 전에 논리적 모순점에 대해서 말해드리겠다. 그런 생각을 자세히 들여봐보자, 아직 환영하지도 허용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당신은 여전히 맛있다.
나는 당신이 싫고 밉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환영합니다.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어도 괜찮습니다.
아예 떠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친구들까지 데려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에 떠나셔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물어도 괜찮습니다.
상식과 위배된다. 그런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말이다.
대상을 떠올려보고, 이렇게 말해보고, 노력해보자.
나는 점점 더 맛없어 질 것이다.
보통 극악무도한 카르마 뱀파이어는 사실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당신을 환영하면 그거 머물 것 같지만, 더 이상 부정적 감정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은 머물 이유가 없다. 당신이 머물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고 할지라도 얻을게 없기 때문에 떠나갈 것이다.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내가 더 이상 내어주는 것도 없으니 떠나갈 수 밖에 없다.
아 덧붙이자면, 대응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용서만 하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상대가 나를 비난하고 욕해도 참고 견뎌야만 하고 피해자이기를 자처하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행동은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해야하는 것을 하세요. 마음으로 먼저 자유로워지세요.
증오의 감정 없이 상대를 고소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
복수심이 없이 상대를 감방에 보낼 수 있을까? 당연하다.
더 이상 미워하지 않지만 상대에게 행동교정의 메세지를 보낼 수 있을까? 당연하다.
무저항과 용서의 자세로 상대를 대하지만 여전히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고, 그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았다면? 설령 내가 상대와의 접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할지라도 상대는 내 카르마를 뺏어먹고 있는 것이다.
시도해보시고 효과가 있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