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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준호 Sep 09. 2021

[영감의 단어들 #004] 마지막




"10월 27일부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오랜만에 간 집앞 돈부리집 벽에 붙은 비보.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게시물에는 아직 쿠폰을 사용하지 않은 분들은 영업 종료 전에 사용하라는 안내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 돈부리집은 2년 전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방문한 식당. 당시 집 계약을 마치고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미락돈부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일본 가정식 덮밥전문점으로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메뉴판을 살피다가 가장 익숙한 돈부리를 주문했는데, 돈까스의 바삭바삭한 식감, 은은한 쯔유의 풍미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주인 부부의 섬세한 손길, 소박함이 좋았다. 마치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일본의 어느 시골 식당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동네도 낯설고 앞으로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묘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어려우셨나봐요."

"아, 그건 아니고 오랫동안 식당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좀 힘이 들어서요. 식당 일이 이젠 고되네요."

"아, 네... 이제 저희 돈부리는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요?"

"......"


짧은 침묵이 흘렀다.

"저, 아이에게 사탕 하나 줘도 될까요?"

"네."


주인 부부는 아이에게 막대사탕 하나와 캐릭터 인형이 달린 연필 네 자루를 쥐어주었다.

"책 많이 읽으라고 주시는 거죠?"

"아, 네. 하하하."


주인 부부가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아이는 이제 막 한두 마디 말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식당 안을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던 아이를 불편해하지 않고 흐뭇한 눈으로 바라봐 주셨었는데...


"아쉬우시면 문 닫기 전에 한 번 더 오세요."

"네, 그럴게요."


다음주면 '미락돈부리'라는 이름과 공간은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출 것이다. 하지만 주인 부부의 세심함,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감동은 누군가의 기억과 가슴 속에 살아 있겠지.


"우리 주말에 여기 또 올까?"

집으로 가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다.

"글쎄,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그렇게 아쉬워? 그럼 나도 떠나야겠다. 하하. 안녕!"





사진은 2018년 여름, 미락돈부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이와의 소중한 억이 담긴. :)


* insta_@__editor.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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