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베란다 창이 이중창이어서 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지 않아 창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빗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툭 툭 툭, 탁탁탁 일정한 소리만 들렸다.
옆집의 조립식 천장에 부딪히는 소리와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가 전부였다. 내 시선은 앞 집 회색 벽을 향했고 좀 더 머리 들어 올려다본 그곳은 콘크리트로 단단히 만들어진 성 같았다. 난 그 안에 갇힌 듯 답답함을 느껴졌다.
어린 시절 살던 집에는 마루가 있었다. 비가 오면 비 내리는 모습과 그 다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한다.비 내리는 모습은 세로줄로 만들어진 빗물 커튼 같았고 그 커튼은 가로, 세로로 흩어져 기존의 배경을 다른 색으로 덧칠해 주었다. 또 빗소리는 얼마나 시원하고 경쾌했던지.
마루에 가만히 누워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소리들이 주변 자연물에 부딪혀 다양한 박자들을 모아 오는 것 같았다. 나를 상상의 세계 끌어들이는 것 같았으며 다양한 음표들이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친정에 와서 비를 바라보고 있다.
입구 문을 열고나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 어린 시절 들었던 다양한 비 소리들과 여러 풍경, 그리고 비를 품은 나뭇잎들. 비들은 엉성하게 어울려져 버려진 철판을 두드리고 바닥을 구르고 나뭇잎에 톡톡 장난을 건다.
그 비가 초록 초록 밝은 빛을 내고 있다.
이쁘다.
시원하다.
힘난다.
가게 앞 놓인 화분에서는 곧게 뻗은 줄기가 이파리를 들어 올려 더 많은 빗물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뙤약볕에서 벗어나 하늘이 주는 생명수가 너무도 그리웠는지 두 팔을 활짝 벌려 세상을 품는 것 같다.
그것들에 맞추어 하늘에서 비들은 각각의 도구를 찾아 부딪히며 예전에 듣던 그 음악을 만든다.
쿵쿵, 척척, 짝짝, 탁탁, 칙칙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니다.
콘크리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가 아니라 내 집 마루에서 자연과 함께 듣던 어린 나와 듣던 그 음악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