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양서연
에디터: 박서현
제주도에서 온 건축학과 양서연은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무한한 우주에 비해 인간의 일생은 너무나도 찰나이기에, 최대한 길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그녀가 건축을 택한 것도 결국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건축을 통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런 사람을 보며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온 후 마주한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여전히 건축을 좋아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 놓고 방황하는 것 대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공설명회도 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택했다.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대학의 모습을 접하고 괴리를 느끼는 신입생은 서연뿐만이 아닐 것이다. 혼란스러운 순간 약간의 방향 수정이 필요할 수 있으나, 언제든 다시 나아가면 그만이다. 이 글은 자유롭지만 불확실한 대학이라는 바다에서, “행복”이라는 방향키를 잡고 나아가는 양서연의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방향키도 다시 잡아 보는 건 어떨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7A반의 건축학과 23학번 양서연입니다.
벌써 1학기와 여름방학까지 끝나가네요. 지난 학기를 보낸 소감은 어떠셨나요?
건축학과에 온 후 과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게 되어 좋기도 했지만 혼란스러운 한 학기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건축학과랑 다르기도 했고, 서울에 올라와서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어요.
본가가 제주도라고 들었는데,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학교생활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향수병이라는 말을 국어 시간에 배우잖아요. 배울 때는 그 정도인가라고 생각했는데, 몸소 느껴보니 왜 많은 시나 소설이 향수에 관한 내용인지 알 것 같아요.
서울 생활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방학이 되어 오랜만에 제주도에 내려가니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의 소중함도 깨달았어요. 서울에 있을 때 어디 놀러 가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게 향수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서울 올라와서 돌아다녀 본 곳 중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가요?
북촌 한옥마을이랑 동대문구 쪽이요. 어르신들이랑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길 가다가 어르신들이 한두 마디 던져주는 걸 듣는 게 재밌어서, 어르신들이 많이 있는 동네에서 혼자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요. 북촌 한옥마을에 갔을 때 길가에 벤치가 있었는데, ‘어르신들 쉬다 가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렇게 쓰여 있는 것도 신기하고, 뭔가 거기서 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참 앉아 있다 나오는데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아요.
고향인 제주도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의 이미지가 각각 본인에게 어떠한가요?
제주도 공항에 착륙하면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같은 멘트가 나와요.
사실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제주도가 그렇게까지 사랑과 낭만이 넘치나 싶었거든요(웃음). 서울이랑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살다 보니 제주도가 확실히 자연과 밀접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사는 곳 바로 옆에도 엄청 긴 소나무 길이 있고 숲이 많았거든요. 서울은 그에 비해 자연이 별로 없고 높은 건물들이 빽빽한 이미지라 크게 대조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더 살고 싶은 장소는 제주도인가요?
원래는 서울도 제주도도 아닌 해외에 거주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서울에 온 후 느낀 게, 가족들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곳인지가 되게 중요하더라구요.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에게 갈 수 있는 지역이라면 다 괜찮을 것 같아요.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서울은 빼고요. 서울은 인프라는 좋지만 사람이 굉장히 많잖아요.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아서, 서울을 제외하고 인구 밀도가 조금 낮은 지역에서 살고 싶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중시하시나 봐요.
집에 안 사는 사람이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게 집이기 때문에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행복한 가정 외에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요?
저는 행복한 가정이 인생에서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부와 명예 같은 사회적 성공을 못 이루더라도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하게 느껴져요. 다른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가족만 있으면 일단 괜찮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 외에도 항상 생각해 오던 게, 저는 어떤 삶을 살든 행복한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었고요. 제가 건축학과에 오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또 당시 제 기준으로 행복한 사람은 여행을 다니는 사람과 꽃집을 찾는 사람이었는데, 그 두 종류의 사람은 거의 다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생 1막은 건축가가 되어 전 세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여행하다 마주친 건물을 누가 지었는지 얘기할 때 제 이름이 등장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리고 인생 2막으로는 할머니가 되었을 때 꽃집을 차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건축학과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을 다니는 사람과 꽃집을 찾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중2병이 심하게 왔던 시기에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어요(웃음). 그때 답을 내린 게 태어났으니 사는거고 삶 자체가 되게 짧으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죽어서도 남아 있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앞으로의 미래와 할머니가 되어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지 알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를 많이 관찰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여행하는 사람과 꽃집에 가는 사람이었고요.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좋다고 하지만, 맨날 환자 보는 의사보다 학생들 보는 내 직업이 제일 좋다”는 말이었어요. 이 말에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내가 삶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을 찾고 그 주위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죽어서도 남아 있는 게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누구나 흔히 생각해 보게 되는 죽음에 대해서 저도 많이 생각해 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죽음이 두렵게 느껴졌어요. 죽고 나서도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꼈고, 그 방법이 다른 사람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이 길었으면 해서 ‘장수의 비결’ 같은 주제의 다큐를 많이 보기도 해요. 이런 생각은 지구과학 시간에 우주에 대해 배우면서도 하게 됐어요. 우주가 탄생한 후 인간이 지구에 있었던 기간이 정말 찰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아주 짧기 때문에 장수하고 싶더라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우주가 엄청 넓기 때문에 외계 지적 생명체랑 만날 가능성이 꽤 크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요즘은 우리가 있는 시간이 찰나라면 외계 지적 생명체끼리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느껴져요.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게 제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그렇군요. 아까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학과의 이미지와 달라서 혼란스럽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건축학과가 공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으니 엔지니어링처럼 이과적인 게 훨씬 우선시 되고 창의성과 예술성이 그다음으로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원래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그 분야 공부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인문학과 철학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잘 안 맞는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완전히 다른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랐어요. 대학은 정해진 교육과정이 없으니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업을 들을 줄 알았는데, 필수 이수 과목이 많아 그렇게 못 하더라고요.
1학년은 교양 위주로 듣는 학생들이 많던데, 건축학과는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건축학과는 1학년 때부터 전공이 한 학기에 두 개씩 있어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 1학기에는 거의 전공과 필수 교양만 들으며 지냈어요. 덕분에 건축을 더 빠르게 접할 수 있었지만 일찍 다른 생각을 하는 원동력이 됐죠. 건축이 잘 맞는 친구들은 여기에만 몰두해서 지내지만, 맞지 않는 친구들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수업을 들어야 하니 조금 지칠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도 휴학을 생각해 보긴 했는데, 건축학이 아닌 건축공학에는 여전히 관심이 많고 2학기 때 처음으로 건축공학 수업을 듣기 때문에 휴학 생각은 미루고 있어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건축학과로만 알려져 있어서 건축학이랑 건축공학의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는 이름은 건축학과지만, 2학년이 끝난 후 3학년부터는 건축학과랑 건축공학과로 전공 분리가 돼요. 건축학이 클라이언트가 의뢰를 했을 때 그 고객의 생활패턴이나 필요한 점을 고려해서 건축물을 설계하는 부분이에요. 반면 건축공학은 설계에 따라 어디에 철근을 몇 개 놓고, 인장력을 계산해서 콘크리트를 어느 정도 부을지 정하고, 내진 설계를 어느 부분에 할지, 즉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건축물을 위해 이런저런 걸 계산하는 분야이죠. 공사 기간도 다 건축공학 쪽에서 정합니다.
그렇게 두 가지로 분야가 나뉘는지 몰랐네요. 건축학도로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가 누구인가요?
루이스 칸을 가장 좋아해요. 건물들이 큼직큼직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좋아합니다. 그런데 입학 면접 때 같은 질문을 받고 생각이 안 나서 안도 다다오라고 말했어요(웃음).
학교에 들어온 후 건축학과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하셨는데, 전에 생각했던 목표나 꿈에 변화가 생기셨나요?
막상 건축과에 왔는데 잘 안 맞는다는 걸 느껴서 목표를 돌이켜 보니, 너무 남에게 영향을 미치
려고 했던 것 같더라구요. 건축학이 생각보다 문과적이고 이공계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철학적 의미나 예술성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니까, 나에게 잘 맞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보다 더 이과적인 방향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기계공학과나 항공우주공학과처럼 기초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일을 하는 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직접적으로 유용한 일을 원하시나 봐요.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목표거든요. 자연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에
게 이름을 남길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자연대에서는 노벨상을 타거나 아인슈타인처럼 비범
한 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이름을 남기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웃음). 조금 더 가능성 있는 길이 공대 쪽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왔어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나요?
건축공학에도 관심이 많고, 기계공학이나 항공우주공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원래 활동적인 사람이라, 공대하면 흔히들 랩실에 가만히 앉아서 연구하는 걸 떠올리는데 저에게 안 맞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건축학과를 선택한 것도 있는데, 요즘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분리하는 것이 나아 보여요. 제 적성에 더 맞는 건 가만히 앉아서 공학 쪽을 공부하는 것이니, 그걸 직업으로 삼고 활동적인 것들은 여가 시간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마지막 질문으로,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저는 ‘에너지’인 것 같아요. 에너지가 항상 많다는 의미는 아니고, 가진 에너지대로 살아가는 사람 같아요. 에너지가 많을 때는 활발하게 에너지를 많이 쓰고, 에너지가 적을 때는 혼자 조용히 쉬는 삶을 살기 때문에 에너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처럼, 자신이 가진 에너지대로 살아가는 양서연은 여전히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다. 무슨 수업을 들을지, 어떤 전공을 택할지,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 그녀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한 가지 방향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행복”이라는 방향키가 건재하는 한, 돌고 돌아 폭풍우를 만나더라도 끝내 그녀의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양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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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건축학과 23학번.
LNL 7A 반의 구성원.
서울대학교 재즈 동아리 자이브에서 활동 중이다.
건축학과 학생회 사무국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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