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도구화. 특히 돈의 발명으로 인해 우리는 유형의 것들 외에 심리학자의 상담이나 스님의 즉문즉설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들에도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값이 매겨지니 모든 것이 도구화되고 있다. 도구에 불과한 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인생을 도구화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사회나 국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끔 교육 받는다. 공부를 하다보면 결국 자신을 도구화하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 높은 등수를 받아, 친구들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보다 좋은 지위에 오르고,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삶. 그게 어릴 적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의 목표가 아니었나 싶다. 아주 예외적으로 자기 실현을 위해 공부를 도구로 삼은 친구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어릴 적을 돌아보면 시간과 노력은 성공으로 가는 도구였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 처음 내가 우울과 대인기피를 겪을 때 나를 덮쳤던 건 내가 사회에서 잘나가지 못하리라는 비관이었다. 하기 싫어했지만 그래도 점수를 내서 올라온 대학에서 나는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성공이란 목표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좌절. 고 1 때, 중간고사 수학을 30점 받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땐, 밤을 새서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면 성적이 올랐다. 그러나 대학 때는 밤을 새며 고민해봐도 답이 없었다. 내 스스로의 결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백일출가를 사심 없이 했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그 곳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것 같다. 그 때 내 목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자 욕심이 들었다. 조금 더 사회에서 잘 쓰이고 싶었다. 이왕 희망을 본 김에 이젠 마음 속 우울이나 불안 같은 방해물들을 모두 지워내고 싶었다. 그러니깐 3년 행자 생활의 시작엔 욕심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도 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다른 글에서 썼던 것처럼 쓸모 있는 인간은 꼭 입신양명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깨달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그 낮은 마음은 다시 또 욕심에 뒤엎혀 색을 바랬다. 조금 더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보다 더 이쁘고, 날씬하고, 말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행은 그 목표를 향한 도구였다. 수행의 도구화. 나는 목적 그 자체여야 할 수행을 도구로 삼아 욕심을 이루고 싶어했다.
어느 날, 유수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행자님은 불교를 하는 게 아니에요.' 우스개소리처럼 내 성을 붙여서 '변불교'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땐 그냥 그러려니 했던 말씀이 지나고 나서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핵심을 짚어주신 거였다. 욕심을 내려놓고 점점 가벼워지는 게 수행인데 나는 원하는 만큼 수행력이 늘지 않는다고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딱 수행의 정반대를 해본 셈이다.
솔직히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열정의 불꽃이 남아있다. 뭐가 되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어하는 성장하고 싶어하는 그런 열망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이 탐탁지 않다. 내 직업은 오히려 힘을 뺄 때, 더 잘 헤쳐나갈 수 있다. 잘하려는, 튀려는, 남보다 잘나려는 내 욕심들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융화되고 남을 돕고 크게 바쁘지 않을 때는 좀 템포를 늦추는 게 필요하다. 종종 나는 어딘가에 내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다. 그게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왔다.
친구가, 그리고 지나간 인연이 내게 알려준 게 있다. 꼭 일에만 열정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꼭 사회 속에서 내 '쓸모'를 키우기 위해 내 에너지를, 내 자원들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세상엔 많은 분야가 있고 이를테면 재테크에라도 더 인생을 투자할 수도 있다고.
현대의 세속 사제는 심리학자와 자기계발 전도사이고,
신이 있던 우주의 중심은 자아가 대신 차지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이 자아실현의 폐해를 설명한다. 신이 없어진 이 세계에서 우리를 온통 사로잡은 건 주관적인 행복, 자아실현 등의 개념이다. 심리학은 어떻게 하면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안내한다. 우리는 이런 사조에 맞춰 더 쓸모 있는 인간이 되도록 내 자신을 계발한다. 그러다보면 온통 자기 자신만의 경험, 느낌이 중요해지고 사람들은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 밖의 세상엔 관심을 끄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자기-외면통찰'을 돕기 위해 저술했다. 이미 사람들이 '자기-내면통찰'은 넘치게 하고 있다고 본다.
나를 더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 나 대신 어떤 명예로운 직업으로 호명되는 것, 경제적 가치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나를 계발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건 목적 그 자체인 삶이 아닐까. 삶을 지나치게 도구화하여 돈과 명예와 자기계발의 도구로 쓰고 있진 않은지, 내가 산다는 것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