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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ug 22. 2024

반복되는 피라미드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피라미드 구조처럼 계급이 있는 세상이다. 정규 교과 과정을 밟으면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직업엔 귀천이 없음을 배웠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속엔 높고 낮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 머리로는 누구나 소중하고 모든 존재가 심지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이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나는 징그럽다는 이유로 벌레가 나오는 족족 파리채로 때려잡는다. 생명의 소중함 따위, 본능적인 혐오감 앞에선 설 자리가 없다. 머리랑 마음은 이렇게 종종 따로 놀곤 한다. 내 머릿속에서 모든 직업은 소중하지만 자꾸 나는 내 직업이 성에 안 차고 이직을 하고 싶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피라미드(출처 : 네이버 이미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격차 때문이다. 현재 버는 돈에 만족이 안 된다. 서울에서 타향살이하느라 숨만 쉬어도 한 달에 50만 원이 나간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무료 재무상담을 받았는데 내 월세가 소득에 비해 과하다는 진단을 들었다. 월세를 줄이든지 소득을 늘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나의 경제 활동에 필요하단다. 안 그래도 앞이 좀 막막하던 차에 전문가의 조언이 경제적 불만족에 박차를 가했다. 월 이백 벌어서 언제 월세살이 벗어나지라는 걱정이 엄습했다. 


두 번째는 역시나 사람들의 인정이다. 좀 더 있어 보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 동창들만큼은 잘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종종 내 마음을 콕콕 찌르곤 한다. 지금 내가 '나'로 삼고 있는 직업의 타이틀보다 좀 더 피라미드에서 높은 곳에 있는 명패를 갖고 싶다. 마치 어렸을 때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온 전교 등수를 '나'로 삼아 거들먹거렸던 마음과 같다. 다소 비판적으로 그리고 부끄럽게 이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끌려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감탄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두 가지 이유의 공통점은 둘 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태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절대적으로 돈이 부족하고 절대적으로 나의 잠재력에 비해 일이 쉬운 측면도 조금 있긴 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가장 큰 불만족의 밑바닥엔 비교가 있다. 한강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 아파트들을 볼 때, 친구 결혼식에서 타이틀로 호명될 때 나는 아득함을 느낀다. 따라갈 수 없는 격차에 답답하기도 하고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이 이직을 통해 인생도 퀀텀점프하듯 몇 단계 도약하기를 소망하게 한다.  



퀀텀 점프(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이것 역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중학교 때 친구를 회사에서 만났다. 내 인성의 민낯이 드러나 창피한 이야기인데 친구와의 만남은 반가우면서도 나를 시름에 잠기게 했다. 왜냐면 어릴 때는 내가 공부를 더 잘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건물에서 같은 직급으로 비슷한 연봉을 받으며 일한다. 자꾸 피라미드에서 내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 저기 조금 더 위라는 마음의 외침이 들린다. 꿈도 꾼다. 수능을 다시 치른다. 그러고 보면 나는 피라미드에 서는 기준 시점을 수능 때로 맞춰놓고 살아가고 있다. 명문대를 나왔는데 왜 내 위치는 여기인가, 회한에 찬 꿈을 꾼다. 


그러다 오늘 인생이 프렉탈(fractar)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렉탈은 동일한 구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데 부분이 전체를 닮은 특징을 갖고 있다. 고사리 잎을 예로 들 수 있다. 고사리 전체 모습과 고사리 이파리를 확대했을 때 모습이 유사하다. 내 머릿속의 피라미드가 바로 이 프렉탈 같다.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상위 1%에 속하려 유년기를 보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또 피라미드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또 1%에 들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이직을 해서 원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 해도 그 안에서 또 경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끝이 없는 프렉탈 구조가 피라미드에도 존재한다.



고사리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요새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좋은 점들을 발견하곤 한다. 밤을 새워서 업무를 하고 대체휴무를 쓰고 오늘 출근날이었다. 알람을 듣고 끄고 다음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계가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야무지게 지각을 하고 자책을 좀 하며 출근했다. 팀원들이 따스하게 맞아줬다. 우리 회사는 다른 곳보단 아마 따뜻하고 협력적인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것 같다. 가끔 빌런이 있지만 대부분 좋은 분들이다. 체해서 가슴을 두드리고 있으면 소화제를 주곤 안부를 물어주신다. 따뜻함에 아주 오랜만에 나도 받으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주는 마음이 났다. 내가 있을 마음자리는 이곳이지, 거의 반년만에 돌아봤다. 


반복되는 피라미드는 사실 받으려는 마음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나은 대우를 받고 싶고 감탄을 사고 싶은 욕심들이 드글거린다. 비교해서 남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 그건 자꾸 바깥을 향해서 시선을 돌려야 하는 삶이다. 비교할 대상은 바깥에 있기 때문에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남에게 조금 더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건 다르다. 내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지가 중요해진다. 따뜻한 마음을 먹으면 가장 먼저 따스해지는 건 나 자신이다. 


사실 오랜만에 베푸는 마음이 났다고 해서, 그리고 경쟁이 프렉탈임을 알았다고 해서 이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좀 더 고려할 것이 생겼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비교를 한다면 공평하게 나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더 가진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만족과 감사가 곧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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