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와의 이별, 그리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의 츠네오처럼 Y는 나와의 연애를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고, 나는 조제처럼 그에게서 상처받지 않도록 경계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가장 큰 이유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출산을 원한 적이 없다.
이러한 나의 "자연적 본능을 거스르는" 생각은 연애에 있어 조제의 장애와 같았다. 지나간 연애에서도 그것이 문제가 되어 여러 번 이별을 맞이했기에 나는 더욱 호감의 단계가 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러한 가치관을 뚜렷하게 밝혔다.
그는 괴로워했다.
출산을 원치 않는 이유를 여러 번 물었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주었지만 그는 매번 물을 때마다 내가 "확실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또 그것을 간과하기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인 것 때문에 연애의 시작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마음에 걸린다면 시작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는 며칠을 고민한 후에 친구로 지내자고 통보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물론 친구로 지낼 마음은 없었다. 우리는 애초에 친구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울적했다. 나는 연인에게 사랑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는데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인가? 내가 오롯이 나의 존재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머지않아 나에게 "친구" 사이로서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츠네오와 조제가 그러하였듯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랜 주저함을 열정적으로 만회하였다.
하지만 연애의 시작에 대한 설렘이나 행복은 한 달을 채가지 못했다. 나는 그가 나의 임신하지 않을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나를 바꿀 마음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주고 맞춰주는 내가 임신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단호한 것을 확인한 그는 좀처럼 나와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표현해도 자꾸만 거리를 두었다. 그와 사귀기로 결정한 날과 며칠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의 일기장에는 그가 날 충분히 좋아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로만 가득했다.
그는 자주 도망치고 회피했다.
내가 문제를 마주하려 하면 힘들어했고 전원스위치를 내리고 싶어 했다. 그는 내가 말한 출산하지 않을 이유들에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이유들이 그에게는 너무나 삶의 현실과 맞닿지 않게 느껴지는가 싶어 그의 눈높이에 맞는 질문들을 하였다.
"너는 나와 지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을 만큼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다고 쳐. 나는 평생 아이를 책임질 자신도 없어."
그는 같이 하는 거라고 했다.
"너는 주양육자가 될 수 있어? 아무리 같이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더 많은 역할을 해.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교사가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거야. 그때 먼저 전화를 거는 사람이 주양육자라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 6일을 일하고 매일 9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면서 식사를 제때 할 수도 없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유튜브를 보다가 기절하듯 잠들면서도 나에게는 아이가 생기면 물론 달라져서 잘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나는 그와 몇 개월 만나지 않았지만 그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그에게 아이를 왜 낳아야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라는 이유 말고는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 날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설득하기를 멈췄지만 나를 연인으로 대하는 최선의 노력 역시 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서 도움을 받고, 안락함을 느끼고 이따금씩 고마워하고 많이 미안해했다.
나는 점점 더 많은 날을 혼자 숨죽여 울었다가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져 그의 앞에서도 울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조제처럼 담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내가 우는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사실조차 불편해했다. 노력한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떠나는 나를 붙잡기 위해 그가 약속했던 것을 기다리며, 그가 나의 사랑에 보답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던 것을 너무나 믿고 싶어 하며, 나는 그를 떠나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차라리 나 스스로와 타협하는 방법을 택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그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그는 이제 도망쳤다.
내가 아파해왔고 아프고 아플 거라는 것을 다 알면서 아무런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 떠났다.
하지만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고 마지막 여행을 제안한 조제처럼 나도 그가 곧 떠날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조제처럼 사랑받지 못했다.
나는 조제처럼 담담하거나 당당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녀의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우리 관계의 "유일하지만 치명적인"걸림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의 "이기심"때문인 것처럼, 이별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나는 죄책감마저 가졌다.
그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음이 바뀌지 않겠냐고 한번 더 물었다.
나는 이제 다시 혼자 남겨졌다.
많이 울고 괴로웠지만 우리에게 남은 인연의 시간이 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힘들지만 이미 그와 만난 7개월의 시간들이 불안정하고 괴로웠다.
츠네오와 조제가 둘이 먹기 위해 굽던 한 마리의 생선은 그들이 이별하고 나서는 조제만을 위한 반토막으로 비친다. 하지만 그렇게 요리하는 조제의 뒷모습은 단단했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한 생선을 굽기 위해 프라이팬을 달군다. 아직 생선을 올리지 못했고 나의 뒷모습은 가끔씩 우느라 들썩거릴 테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을 다시 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언젠가 츠네오처럼 갑자기 오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친구로 지내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