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기는 한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일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그래서 다 컸다고 생각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담임선생님께서 가정환경을 물어보면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났던 기억이 있다.
30대 후반이 된 나는 현재 직장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고, 비싸진 않지만 작은 아파트와 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끔 TV에서 화목한 가정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때면 나도 저들과 같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쩌면 가족간의 소통도 다른 여타 일처럼 배워본적이 없는 사람은 잘할 수 없는건 아닐까?
내 유년기의 불행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는 언니와 나를 두고 나갔으며 나는 친할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어린 나에게 엄마의 부재도 서러운데 친할머니는 엄마가 너희들을 버리고 간것이라고 몇번이나 말씀하셔서 나는 밤마다 창문을 열고 엄마를 원망하며 울었었다.
그러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2명의 새엄마 후보를 데려와 나에게 물었다. 키큰 이모와 키 작은 이모 중 누가 더 마음에 드느냐고. 당시 나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였으면 당장 내 엄마를 데려오라고 말했을 것 같다. 누구의 뜻을 반영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키 작은 이모와 재혼을 했고, 나는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배다른 동생이 태어났고, 나는 원하지도 않는 동생에게 밥을 주고, 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새엄마는 TV에 나오는 나쁜 계모들처럼 나를 구박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새엄마의 눈치를 볼수 밖에 없었고, 밥상머리에서 그 작은 동생이 내 머리를 숟가락으로 몇번이나 쳐도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3년을 생활하던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의차를 몰던 운전기사가 음주운전으로 아버지의 차를 들이받았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아버지를 죽인 음주운전자가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겨우 12살이었던 나는 어제까지도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온 친척들 중 한명은 '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슬프지도 않니? 눈물 한방울 안 흘리네!' 라고 말하셨지만 나는 정말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른들끼리 보험금 문제를 의논하는가 싶더니 나의 배다른 동생과 새어머니는 따로 나가고, 나와 언니는 다시 친엄마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친엄마와 함께 살며 새 학교로 전학을 가는 날 엄마는 나를 새 학교로 등교시켜주면서 당부하셨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듣게 행동해야 한다!"
엄마는 보험금을 얼마 받지 못하기도 했고, 가정주부로만 지내다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우리가족은 경제 환경이 넉넉하지 못했다. 편부모 자식이라는 것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도 나는 학교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엄마의 당부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공부에만 전념했다. 20대에 어느 정도 내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와 아빠는 왜 이혼했어? 그 때 왜 나를 두고 갔어?"
그리고 아빠가 엄마에게 폭력을 써서 이혼했다는 엄마의 대답을 들은 순간 그동안 미화돼 있었던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추억도 날아갔다.
'남자는 언제든 여자를 버리고 때릴 수 있는거구나.'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는 아직도 solo다.
대학생 때 친구들은 용돈을 받고 생활할 수 있는 든든한 가정이 있어서 그런지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더만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당장 이번달을 어떻게 생활할지가 걱정인 학생이었다. 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였는데 나는 언니가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미래가 안 보이는 생활에서 벗어나려 일찍 결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결혼식장에 앉아 속으로 많이 울었다.
내 환경에서 연애는 사치라는 생각에 아예 배제했던 때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어떻게 마음을 전하는지 나는 배워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누군가를 2년동안 만나게 되었고 당시 남자친구를 엄마에게 인사시키는 자리에서 엄마는 나에 대한 불만은 토로했다.
"나는 친구같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통보식으로 말하는 딸이라 불만이야."
'엄마 나도 그런 딸이 되고 싶은데 나는 그런걸 본적도 배워본적도 없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그런말을 하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나도 그런딸이 되고 싶은건 마찬가지다. 우리가족은 각자 먹고 사는게 급급해서 TV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여가생활을 보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면 가족간에 살갑게 대화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라서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잘 못하는것이 아닐까?
[사진출처] 영화 어거스트러쉬, 2007 스틸컷영화August Rush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