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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실이 Jan 12. 2024

결혼반대의 클라이막스

폭언과 폭력은 모두를 괴롭게 합니다.

오늘 쓸 내용은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므로 많은 독자분들이 불편하실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그렇게 굳은 다짐으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말하는 그의 말에 불안했던 마음도 다 없어지고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친구네 부부도 네가 C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전과 지금 만난 후에 모습에 더 당당함이 있다며 대단하다고 너희가 이런 의지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버티고 잘 살겠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나는 내 집으로 두 시간 반을 운전해서 갔다. 반 정도는 이미 이삿짐 박스에 넣어져 있었고 나머지를 차근차근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짐정리를 하며 대충 부모님에게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고 대충 이야기를 이러했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다라고 말을 전했다. 내가 외동딸인지라 특히 나에 대한 사랑이 컸던 아빠에게는 자세히 말을 못 했지만 엄마에게는 그래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을 해주니 경악을 금치 못하며 분노하시는 걸 보며, 엄마 우리 잘 살 거니까 걱정 마. C가 이번엔 정말 결심을 했으니 앞으로의 미래만 생각하자-라고 달랬다.


이 일에 대해서 아는 정말 친한 친구 몇몇과 얘기를 나눠보니 C가 그의 부모님과 연을 끊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내가 선택한 길과 내가 선택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지켜주겠지만 당사자인 C가 얼마만큼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 했다. 나도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거지만 그도 처음 겪는 바. 난 사람이 나이에 따라 미성숙하거나 더 성숙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나를 혼자 카페에 두고 어머니와 함께 나서는 그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었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우선 우리 부모님은 저런 막말을 하실 분들이 아니지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면 아무리 말을 잘 듣는 딸이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욕감 주지 말라고, 엄마 아빠에게 정말 실망했다고 하며 내 배우자를 데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C가 굉장히 미흡하게 이 일을 대처했구나 라는 게 자각됐다.


그렇게 이야기도 나누고 짐을 정리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자꾸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는 절대로 받지 않는 성격이라 스팸전화겠지 라는 생각에 그냥 놔뒀다. 이쯤 되면 그와 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인데 어머니와 이모님이 그의 집에 계셔서 그가 편하게 전화를 걸지 못할 거란 걸 알고 며칠 뒤 입을 하얀 드레스도 입어보며 헤어와 메이크업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유튜브로 찾아보던 중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오늘 잘 지냈어?

-어, 자기는? 상황은 좀 어때?

-그냥 알 다시 피야. 그래도 오늘은 엄마랑 이모가 아웃렛 좀 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낮에 좀 돌아다녔어.

-효자네.

-화요일에 엄마 가셔.

-XX로? 언제 돌아오시는데?

-동생한테 가시는 거야 돌아오진 않으셔. 나 효자 맞지. 우리 부모님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야.


이제서와 느끼는 거지만 왜 남자들은 결혼 직전에 갑자기 효자 노릇을 하려는 걸까? 진짜 효자였다면 평상시에도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만났을 때 좋고 깊은 대화도 나누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게 효자가 아닐까? 글 쓰는 이 시점에서 되돌이켜보니 자신의 부모님이 사람을 대할 때 얼마만큼 악의를 가지고 대했는지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야."라는 말을 했을까. 조금 소름이 돋는다.


-효자는 좋은 남편이 아닌데 흠. 여자들이 싫어함 ㅋ 적당히 효자 해라 이젠 남편이 먼저다

-엄마가 내 대학친구한테 밥 사주고 싶다 해서 곧 저녁 하면 X시 될 거야. 그때 통화하자.


그와 저녁시간에 한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내가 느낀 점 또 불안한 점. 다투기도 했지만 결국에 전화의 끝마무리는 잘했었다. 결국 자신을 믿고 따라와 달라는 얘기였다.


-잘 자 자기야. 오늘 얘기 들어줘서 고맙고 나도 자기가 말한 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게. 굿 나잇!

-흠 뭐 나 업데이트할 거 있어. 바로 잘 거 아니지?

-응.

-나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나쁜 거 먼저.

-엄마는 화요일 안가. 적어도 일주일 있다 가. 근데 왜 갑자기 뜻을 바꿨냐면 아빠 뜻이 그래.

-혼인신고 막으시려는 거지.


C의 어머니가 가려던 일정을 바꾸게 된 계기는 잠시 C가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왔을 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통화하는 걸 엿듣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대충 그 여자애를 만났고 어땠는지 말씀하셨고 그저 막무가내로 아들이 하려는 걸 반대하기는 싫다고 하시니 아버님께서 거기에 간 이유는 목적이 있는데 그걸 달성하지 않고 지금 마음 약해줘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화를 크게 내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우선 무조건 둘이 헤어지게 만들어.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이혼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너, 목표를 가지고 갔으면 그걸 해야지! 얘네 안 헤어지면 너 가만히 안 둬."라는 말이 들렸다고 했다.


그렇다. 사실, (C와 그의 남동생에게 들은 거지만) 아버지가 가끔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어머니에게 물리적인 폭행을 가하셨다고 했다. 그건 이 두 형제가 중학생 때 처음 발견했고 그 당시에는 막을 생각보다는 상황인지가 안 됐었고 두 형제 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방학 때 가끔 보는 부모님은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셨기에 그런 일들은 못 봤었다고 했다. 가끔 두 형제가 답답해서 어머니에게 왜 그럴 때 참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여자들은 다 이러고 산다며 별일 아닌 듯 넘기셨다고 한다.


C가 보기엔 자신의 부모는 사랑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맘에 들지 않더라도 참고 사는 거라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교육을 맡아서 키우는 어머니에게 만족감을, 어머니는 경제활동을 하는 아버지에게 만족감을 느끼며. 물론 여자로서 C의 어머니가 불쌍하다 생각한다. 자신의 경제력이 없고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사랑보다는 의무감을 강요하는 남편을 보며 애정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장남인 C에게 더 애정을 갈구하셨고 C를 자신의 아들이 아닌 남편으로 생각했던 거다. 그러니 자신이 점찍어 놓은 여자가 아닌 이상 다른 여자와 C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들이 출가하는 것이 아닌 내 남편이 바람피우는 거라 생각이 드는 것이었을 거다. 내 손으로 고른 여자와 내 아들이 결혼한다면 내가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손쉽게 내 통제안에 모든 일들이 흘러갈 텐데 아들이 선택한 여자는 전혀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더 심술내고 더 증오하는 것이었다.


-이제 엄마는 내가 어느 정도 설득 아닌 설득을 했어. 결혼허락은 아니지만 참견은 하지 않으시겠데. 물론 말만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최근에 들어본 말 중에서 말이라도 제일 믿음이 가. 엄마는 강경반대가 아빠에 비해서 아니었어. 아빠가 정말 강경반대야. 내일모레 가겠다고 아빠하고 통화를 하는데 아빠한테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거야. 왜 벌써 가냐고. 목표를 가지고 갔는데 왜 그러냐고. 근데 엄마는 이제 너희 알아서 해라야. 자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아들을 너무 반대하는 것도 싫은 거고.

-참견을 안 해주시겠다는 말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공격은 계속하실 거라 생각해.

-어쩔 수 없는 중립을 선택한 거야 엄마는. 일단 내가 말은 해놨어. 쓸데없는 이상한 전화 해서 폭언하는 건 안된다. 결론적으로 아빠와 엄마 또한 의견차이가 나는 거야.

-이젠 자기 아버님만 남았네. 아무래도 내가 아버님도 겪어야 하겠지.

-안 돼. 아빠는 겪게 하면 안 될 거야. 아빠는 자기 때려.


설마- 딸이 있는 집안이 남의 귀한 딸을 때릴 수도 있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이분들은 그러고도 남으실 분들이다.


-엄마까지야. 딱 거기까지. 아빠는 안 돼.

-봐. 자기도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자기에게 아까 전화로 물었던 게 이런 거야. 나한테 폭행을 하실 수도 있는데 그걸 자기가 어떻게 막거나 처신할 건지.

-엄마는 폭언을 해도 폭행을 하짆않아. 그건 확실해. 아빠는 확실히 남달라.

-만약 내가 맞게 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

-그냥 둘이 안 만나는 게 최선이야. 이건 난 도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와 이 대화를 나누기 전 통화에서 만약 그의 부모님이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지속적인 폭언이나 물리적인 폭행을 가한다면 당당히 '남으로서' 법적 조치에 들어갈 거라고. 이 상황까지 가면 안 되겠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 그럴 생각이라고 내 생각을 전했고 그는 그 상황까지 안 가게끔 자기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자신이 늘 내 곁에 24시간 있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법적인 조치만큼은 안 해줬으면 하는 게 자신의 개인적인 마음이라고 말했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자기의 모든 걸 걸고 날 지켜줘야 해. 그리고 나중에 생길 우리 애들을 위해서도 그래야 하고.

-그래 날 믿어. 그건 날 믿어도 돼. 그리고 엄마에겐 자기한테 폭언하는 건 내가 원치 않는다고 했어. 난 나름대로 뭐가 걸리냐고 물어봤지. 근데 말 들어보니 웬만한 건 다 극복이 되니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했지. 나이. 임신걱정이 있어서. 근데 그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아이를 가지면 된다고 얘기했고, 또 뭐 센 성격 (그 전날 어머니와 만났을 때 어머니가 하시는 막말에 내가 글에 쓰지는 않았지만 따박따박 친절하게 대답을 드렸었다.) 근데 이건 개인취향이고 XX라는 사람이 부드러운 부분도 있고 강한 부분도 있다는 걸 말씀드렸다. 또 이건 좀 이상한데 관상. 뭐 말상이 나랑 안 어울린다 근데 이건 솔직히 귀담아들을 필요 없고. 그리고 외향적인 거. 피부가 걸리신다는데 그건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다고 말했지.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가 두 가지인데 그게 바로 얼굴형과 바빠서 잘 관리하지 못했던 피부이다.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만 대학교 때부터 난 트러블 때문에 파인 흉터가 좀 있고 얼굴형은 조금 긴 편이라 헤어스타일로 잘 커버를 하고 다녔다. 근데 이걸 면전에 대놓고 그의 가족에게 그리고 그에게로부터 듣는 건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왜 C의 외향적인 것에 불만이 없었겠는가? 키도 작고 얼굴형도 굉장히 각지고.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건 예민한 부분이니 자존심 상할까 전혀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꺼낼 생각도 없었다.


-올해 초부터 내가 우리 사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이런 거였어. 이제 좀 이해가 돼?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와의 카톡을 멈췄고 다음날 하루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내가 그에게 몇 시쯤에 연락을 달라고 카톡을 했다. 근데 자꾸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와서 받지 않으니 문자 하나가 왔다.


-너 번호 바꿨니?

-누구시죠?

-나 C 엄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아서요. 제가 지금 가르치고 있으니 몇 시간 후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래라.


난 C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그도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 나와있었고 지금 그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어제 얘기한 거랑은 다르지 않냐고 말했더니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도 이젠 거짓말을 하는구나 나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힘들게 해서 미안해."

"난 매번 이렇게 어머니 전화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 자기가 어머니께 이상한 전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는데도 이러시니... 이번에 어머니께서 또 뭐라고 하시면 난 더 이상 어머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미안해."

"이틀후면 우리 혼인신고하니까 혹시 어머니께서 막으시려 하실 테니 자기가 신분증은 알아서 잘 챙기고 있어."

"응 이미 다 챙겨놨어."

"그리고 법원에서 만나는 게 나을 테니까 그 전날 밤에 미리 숙소를 알아둬서 그냥 같이 있자. 내가 어머니하고 통화 한 다음에 자기한테 전화 걸게."


굉장히 두려운 마음을 먹고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어 그래. 지금 밖에서 장 보는 중인데 잠깐만 기다려봐라 (굉장히 다정한 목소리로)... 밖에 지금 나왔... 다!!!!!! 너 이 곰보 따위가!!!! 당장 내 아들하고 안 헤어져?!!!!!!

"어머니 흥분하시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너 때문에 내 아들 죽게 생겼어, 알아?! 얘 아빠가 내일 당장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데. 너네가 안 헤어지겠다고 하니까 얘가 어디 좋은 대학교에 취직이 됐건 말건 팔다리 다 부러뜨리고 얼굴 다 뭉개서 어디 못 다니게 만들어 놓을 거래.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왜 이런 꼴 당해야 해!! 어?!!!! 너 때문에 내 아들 죽게 생겼다고!!! 얘 아빠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너 때문에 내 아들 죽어!!!!! 당장 헤어져!!!!


전화는 또 일방적으로 끊겼고 난 정말 극심한 공포를 겪었다. 말도 못 할 불안과 공포 때문에 C에게 연락을 했지만 미팅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아서 급하게 빨리 전화를 달라는 카톡을 남겼고 갑자기 구토감이 올라와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계속 게워냈다. 얼마나 공포에 휩쓸렸는지 연락이 닿을 만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목놓아 울기만 했다. 친구들은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다급하게 내가 사는 곳에 오려고 했지만 난 괜찮다고 말했고 그의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를 알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생각하시겠지만... 정말 비상식적인 행동과 언행들이다. 내 카톡을 보고 그는 전화를 걸어왔고 난 엉엉 울면서 그에게 처음으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내 입에서 이별을 먼저 고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엉엉. 나 때문에 자기가 죽는데. 자기가 나랑 함께하면 죽는데, 나 그거 죽어도 싫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왜 자기가 나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나 그렇게 되게 못 놔둬."

-..... 결국 이렇게까지 갔구나 우리 부모님은. 얼핏 짐작은 했는데 이렇게 까지 하는구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아야 할까.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로지 그 사람만이 좋아서, 그의 조건 상관없이 오로지 그의 존재 이유 하나만으로 내 인생을 걸어보고 싶었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사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입에선 자꾸 반대의 말이 나왔다. 난 이미 그와 만나면서 극심한 불안형이 되었고 내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어버린 그의 어머니의 발언에 난 흔히 불안형들이 사랑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이별을 고하는 뻔한 수법을 쓰고 만 것이다. 회피형이었던 C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잘 참아왔던 내가 울분을 터뜨리며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 이 여자도 너무 감당하기 힘들구나 라는 생각으로 아무 말 없다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니 나는 또 당황해서 잠시 하루만 더 얘기해 보자고. 우리 내일모레가 결혼식이라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했더니 그는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고. 올 때까지 온 것 같다며 정말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에 나는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동생들이랑 연락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흥분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곳 주소 알아봐서 자기 집 불 질러 버리겠다고 했데. 아무리 말뿐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저주하고 미워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자기야. 어떻게든 나도 견디려고 해 봤는데 안될 것 같아. 미안해.


그가 몇 번이 나에게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사람이 화를 낼 때 홧김에 하는 말엔 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겨있다는 말이었다. 그 어느 드라마, 영화보다 더 처참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더운 여름에 제대로 된 첫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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