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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상한호랑이 Dec 09. 2024

「지상에서의 며칠」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읽었다옹

때 절은 종이 창문 흐릿한 달빛 한줌이었다가

바람 부는 들판의 키 큰 미루나무 잔가지 흔드는 바람이었다가

차마 소낙비일 수 있었을까? 겨우

옷자락이나 머리칼 적시는 이슬비였다가

기약 없이 찾아든 바닷가 민박집 문지방까지 밀려와

칭얼대는 파도 소리였다가

누군들 안 그러랴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상에서의 며칠, 이런 저런 일들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그대 만나 잠시 가슴 부풀고 설렜었지

그리고는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

가는 여름 새끼손톱에 스며든 봉숭아 빠알간 물감이었다가

잘려 나간 손톱조각에 어른대는 첫눈이었다가

눈물이 고여서였을까? 눈썹

깜짝이다가 눈썹 두어 번 깜짝이다가…….




2024.12.9. 살아가는 존재들 그 사이,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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