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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사의 불」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깊은 산골의 야영 돈사엔

밤이면 불을 켠다.

한 오 리 되염즉, 기다란 돈사.

그 두 난골 낮은 처마끝에 달아

유리를 대인 기다란 네모 나무등에

가스'불, 불을 켠다.


자정도 지난 깊은 밤을

이 불 밑으로 번식돈 관리공이 오고 간다.

2년 5산 많은 돼지를 받노라, 키우노라.

항시 기쁨에 넘쳐 서두르는

뜨거운 정성이, 굳은 결의가 오고 간다―


다산성 번식돈이 밤 사이

그 잘 줄 모르는 숨'소리 사이로,

1년 3산의 제2산 종부가 끝난 번식돈의

큰 기대 안겨주는 그 소중한, 고로운 숨'소리 사이로,

또 시간 젖에 버릇 붙여놓은 새끼돼지들의

어미의 젖꼭지를 덤비는 그 다급한 외침소리 사이로,


그러던 그 관리공의 발'길이 멎는다.

밤'중으로, 아니면 날 새자 분만할 돼지의

깃자리 보는 그 초조한 부스럭 소리 앞에.

그 발'길이 기대에 찬 분만의 자리를 지켜 오래 머문다.


밀기울 누룩의 감자술 만들어 사료에 섞기도 하였다.

류화철 용액으로, 더운물로 몸뚱이를 씻어도 주었다.

그러나 한 번식돈 관리공의 성실한 마음 이것으로 다 못해

이제 이 깊은 밤을 순산을 기다려 가슴 조이며

분만 앞둔 돼지의 그 높고 잦은 숨'소리에 귀기울여 서누나.


밤이 더 깊어가면 골 안에 안개는 돌아

돈사 네모등의 가스불'빛도 희미해진다

그러나 돈사에는 이 불 아닌 또 하나 불이 있어

언제나 꺼질 줄도, 희미해질 줄도 없이 밝은 불.


이 불―한 해에 천 마리 돼지를 한 손으로 받아

사랑하는 나라에 바치려, 사랑하는 땅의 바라심을 이루우려,

온 마음 기울여 일하는 한 젊은 관리공의

당 앞에 드리는 맹세로 켜진, 그 붉은, 충실한 마음의 불.




2025.10.24. 태기 완연한 생의 등불이 고로한 일상을 비춰줄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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