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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별」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어제는 남쪽 집 처자의 시집가는 길

산 우 아마밭머리에 바래 보냈더니

오늘은 동쪽 집 처자의 시집가는 길

산 아래 감자밭둑에 바래 보내누나.


해'볕 따사롭고 바람 고로웁고

이 골짝, 저 골짝 진달래 산살구꽃은 곱고

이 숲속 저 숲속 뻐꾸기 메'비둘기 새소리 구성지고

동쪽 집 처자는 높은 산을 몇이라도 넘어

먼먼 보천 땅으로 간다는데

보천 땅은 뒤'재 우에서도 백두산이 보인다는 곳.

사람들 동쪽 집 처자를 바래 보낸다

먼 밭, 가까운 밭에, 웅기중기 일어서

호미 들어, 가래 들어 그의 앞날을 축복한다.

말하자면 이 어린 처자는 그들의 전우

전우의 앞날이 빛나기를 빈다.

하루에 감자밭 천평을 매 재끼는 솜씨―

이 솜씨 칭찬하는 마음도 이 축복에 따르고

추운 날 산 우에 우등'불 잘도 놓던 마음씨―

이 마음씨 감사하는 마음도 이 축복에 따르누나.

동쪽 집 처자는 산'길을 굽이굽이

뒤를 돌아보니, 돌아보며 발'길 무거이 간다.

가지가지 산천의 정이, 사람들의 사랑이

별리의 쓴 눈물 삼키게 하매

그 작은 붉은 마음 바쳐온 싸움의 터―

저 골짜기 발전소가, 이 비탈의 작잠장이

다하지 못한 충성을 붙들어놓지 않으매,

동쪽 집 처자는 고개를 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 깔깔대는 웃음소리 허공에 들리누나.

그러나 그 흘린 땀 냄새 땅 우에 풍기누나.

어제는 남쪽 집 처자를 산 우에

오늘은 동쪽 집 처자를 산 아래

말하자면 이 어린 전우들을 딴 진지로 보내는 것은

마음 얼마큼 서운한 일이니

그러나 얼마나 즐겁고 미쁜 일인가

그러나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일인가!




2025.11.11.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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