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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David Kim Dec 21. 2023

[도성한담] SIN CITY  Las Vegas

3편 :  Armijo Route와 라스 베가스 1829 - 1846

1829년 11월 7일 멕시코정부에서 뉴 멕시코 식민지에 파견한 Jose Antonio Chaves (호세 안토니오 차베스) 총독은 서쪽 캘리포니아로의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Antonio Mariano Armijo (안토니오 마리아노 아미호 1804-1850)를 대장으로 60명의 교역상을 꾸려 대장정의 길을 보냅니다.  


뉴 멕시코의 Santa Fe 인근 Abiquiu를 출발점으로 캘리포니아 San Gabriel에 있는 ‘산 가브리엘 수도원’을 잇는 약 1200 마일 길이의 미국 남서부의 교역로 ‘Old Spanish Trail’ 이 확실하게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미 원주민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서부로 향하며 개척한 탐험로가 있지만, Armijo는 자기 나름의 ‘Armijo Route’ 구간을 개척해 걸으면서 새 교역로를 확정 짓고 매일 여정과 지역에 대한 정보를 일기장 형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 1830년 4월 25일 총독에게 그동안의 기록을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그해 6월 19일 멕시코정부에서 <Diary made by citizen Antonio Armijo as commandant for the discovery of the route to the California>라는 책자로 발간하였습니다. 

 

[지성]  1821년 독립을 쟁취한 멕시코가 미동부와 연결되는 ‘Santa Fe Trail’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더니 더욱 욕심이 생겼나 보죠?

[해월]  왜 아니겠어?  내친김에 당시 경제적 성황을 이루고 있었던 캘리포니아 남서부 로스 앤젤레스로 진출하고 싶었겠지.  그곳은 이미 뉴 스페인 시절부터 형성되어 주위 교역이 왕성히 이루어지던 곳이었기 때문에 개척할 필요성이 더욱 높았었을 거야.

 

[지성]  아미호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해월]  안토니오 아미호는 1804년 뉴 멕시코에서 태어나 상인이었던 아버지  José Francisco Armijo (호제 프란시스코 아미호)를 도우며 장사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  아버지가 산타 페 트레일을 이용해 미조리주까지 물건을 나르며 장사를 할 때 산타 페에 있는 아버지 가게를 도맡아 운영했지.  


[지성]  일찍부터 장사에 뛰어들었네요.

[해월]  그런 셈이야!  뉴 멕시코 총독으로부터 서부개척 교역상을 꾸릴 것을 명 받고 대장으로 선정되어 60여 명의 대원과 100마리의 노새에 교역할 짐을 잔뜩 싣고 떠난 것이 1829년이니까 그의 나의 25세 때였잖아. 어린 나이에 그 어려운 일을 맡을 정도였다면 무언가 책임감이 강하고 남다른 모습이 보였으리라고 생각해.


[지성]  뉴 멕시코에서부터 로스 앤젤레스 까지 이어지는 길이 산과 사막이 이어지는 험악한 길이었을 텐데요!

[해월]  한마디로 고행의 길이었겠지.  그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다른 교역상보다 빨리 가서 많은 물건을 교환하고 돼 돌아와 잘 팔아서 이문을 많이 남기자’ 였을 거야.

 

[지성]  아미호가 교역상을 이끌고 갔다고 하니 무언가 많이 가지고 갔겠네요?

[해월]  당연하지.  우선 현지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식품, 생활용품들과 모직 제품인 담요 등을 당나귀와 노새 등에 잔뜩 실었지.  서부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말마차 (wagon)에 실으면 더 많이 가지고 갔겠지만, 당시엔 마차가 다닐만한 길도 없었고 순전히 거칠고 메마른 산길과 들길을 가야 했기에 노새 같은 동물의 등에 짐안장을 채우는 것이 상책이었어.


 (사진:  Mules On the South Kaibab Trail in the Grand Canyon  Source:  Wikipedia)


[지성]  200년 전 노새등에 실은 물건들이 실제로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네요.

[해월]  나도 궁금해.  가장 많이 가지고 갔던 것은 모직물과 동물가죽이었는데, sepapes (숄의 일종), 모직담요, ponchos, 양말, 새미가죽(요즘의 양가죽), buffalo robes, 곰가죽, beaver 가죽 등이 있었고 모자나 숄 그리고 누비이불 등도 있었다고 해.

 

[지성]  멕시코 사람들은 일찍부터 직조기술이 발달했었나 보네요.  남미에 가서 보면 요즘도 손뜨개질로 만든 모자와 숄등을 걸치고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해월]  궁하면 얻는다고 했잖아.  아미호가 이끄는 이들 교역상들은 이 상품들을 가지고 가서 멕시코에서 크게 값 쳐주는 노새와 바꾸어 가지고 왔지.  당시 캘리포니아의 주산품인 mule (노새: 수탕나귀와 암말 사이의 종자)은 말과 달리 힘이 세고 발굽이 작으면서 강해 사막과 산길에는 최고야.  다시 말해 교역에 필요한 짐꾼으로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  요즘 Grand Canyon에 가서 산아래로 내려갔다 오는 관광코스에 사람을 태우기 위해 등장하는 말처럼 생긴 동물이 바로 노새인 것 알지?  

 

[지성]  맞아요!  저도 봤어요!  꽤 덩치가 크던데요?  

[해월]  그 덩치 큰 노새에 교역품을 싣고 1829년 11월 7일 뉴멕시코 산타 페 북쪽에 있는 Abiquiu를 출발한 교역대는 장장 86일 동안 산과 강, 사막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인 San Gabriel Mission (현재의 San Gabriel 시 임)에 1830년 1월 31일 도착해.  이들은 가지고 온 물건을 노새와 바꾼 뒤 3월 1일 다시 귀환을 시작해 왔던 길을 밟아 56일 후인 4월 25일 출발지로 돌아오지.

 

[지성]  항상 돌아가는 길이 짧아 보이는데 이들도 시간을 줄였네요.  어떤 길을 만들어 갔었는지요? 

[해월]  아미호가 개척한 길은 기존 원주민들이 다니던 Old Spanish Trail 과는 다른 길이었어. 이미 Utes, Paiutes, Navajos, Fathers Garces 같은 원주민들과  Francisco Atanasio Dominguez 신부와 Francisco Silvestre Velez de Escalante 신부 같은 개척자들, 그리고 동물사냥꾼, 금광개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밟았던 길은 아니었지.  금을 찾아 나섰던 사람 중에 ‘Rafael Rivera’ 이란 사람도 대원중에 끼어있었지만 다녔던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길잡이 역할을 했어.  

 

[지성]  Old Spanish Trail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 것 같은데 아미호의 루트는 요즘 지도에서 보면 어떤 길이었나요?

[해월]  많은 짐을 가지고 이동한 아미호 루트를 살펴보면 Santa Fe, Abiquiu를 출발해 과거 콜로라도 북부를 통해 유타중부로 이동했던 루트 대신 거의 직선으로 서부로 이동하는 루트인데,  Canon Largo를 지나 Four Corners (콜로라도주, 유타주, 뉴멕시코주, 애리조나주 등 4개 주가 만나는 지점을 말함)를 건너 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 Kanab, Pipe Springs, 유타주 Hurricane, 라스 베가스, 모하비 사막, Cajon Pass를 지나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는 길이야.  거의 직선이지만 한마디로 힘든 루트지.  콜로라도강을 건너야 하고 가파른 산비탈길 ‘Crossing of the Fathers’에서 노새와 사람 모두 사투를 벌여햐 하는 길이야.  힘든 산길에서 흙먼지를 많이 마시기도 하고 사막을 통과하는 과정에 음식이 부족해서 데리고 가던 노새를 여럿 잡아먹기도 했다고 해. 

 

[지성]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네요.  아미호 루트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해월]  그들이 이루어놓은 역사의 의미는 미국 남서부 발전의 역사겠지.  우선 뉴 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연결하는 교역로가 확실하게 결정되었고, 이를 통한 교역이 많은 이득을 창출해 낸다는 결론이야.  뉴 멕시코라는 낙후된 멕시코 지역과 캘리포니아를 집적 연결하도록 길을 터놨고, 이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큰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지. 

또한 멕시코 측면에서도 멕시코 시티(Mexico City)와 치와와(Chihuahua)에 의존했던 산타 페지역을 다자교역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봐.  멕시코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가지고 가 이득을 많이 남기는 캘리포니아산 말과 노새 (노새 1마리를 담요 2장과 교환함)를 바꿔가지고 옴으로써 교역이 지방경제에 크게 이바지함을 증명했지.  결국 아미호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면서 구축한 교역로에 다른 루트를 이용하던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했어.

 

[지성]  훌륭한 일을 해낸 아미호는 그 후 부자가 되었나요?

[해월]  하하!  그랬기를 바라!  

 

[지성]  그럼 잘 못살았어요?

[해월]  아!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지.  1830년 힘든 여정을 마친 안토니오는 부모님을 모시고 샌 프란시스코 베이(San Francisco Bay) 지역으로 이주해서 목장을 하나 꾸며 살기 시작했어.  1831년 4월에는 캘리포니아 일대 대농장주의 딸 Dolores Engracia Duarte y Peralta (도로레스 페랄타)와 결혼도 하게 돼.  이 두 사람은 1832년과 1844년 사이에 일곱 자녀를 두었지.   

 

[지성]  와!  바쁘게 살았네요.  목장운영도 했을 테니 자녀가 많으면 도움이 되었겠지요!

[해월]  맞아!  든든했을 거야.  더군다나 1840년에는 멕시코정부에서 호제 아미호 (안토니오의 아버지)에게 큰 선물을 주었어.  Solano와 Napa 카운티에 걸치는 땅 중에 13,000 에이커 (약 1,600만 평.  현재의 Fairfield, CA 북동쪽)에 달하는 땅을 무상으로 주었지.  이곳에 ‘Rancho Tolenas’를 건립하게돼.   거대한 땅에 목장을 세운 아미호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유명인사 중 한가족이 된 거야.  

 

[지성]  아미호 가족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네요.  성공적인 일에 대한 보상인 것이지요?  

[해월]  그런 셈이었지만, 호사다마라 할까?  거대한 목장에 멕시코에서 데려온 사람들과 함께 동물들도 키우는 과정에 이웃 목장하고 경계선에 대한 시비가 생기면서 법정싸움이 발생하게 되었어.  호제 아미호가 모시던 상관이 소유하고 있는 목장과의 싸움이지.  끝내 캘리포니아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 진행 중인 1849년 11월 아버지 호제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소송을 계속 진행하던 안토니오 마저 1850년 4월에 유명을 달리하게 돼.  지루하게 이어지던 소송에서 아미호 가족이 만든 목장소유권은 1868년 결국 미망인에게 돌아가고, 지금은 소유주가 바뀌어 그 지역이 골프장을 갖춘 주택단지로 탈바꿈해 있어.  안토니오가 이룬 업적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지.

 

[지성]  항상 큰 일한 사람들은 일찍 곁을 떠나는 것 같아요.  힘들어서 그럴까요?  그런데 선생님, 이 아미호가 이끈 교역대가 유타주를 거쳐 네바다주로 들어오면서 초목과 물이 풍성한 오아시스를 만나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해월]  그래 맞아!  바로 그 순간이 오늘날의 ‘Las Vegas’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  아까 말했던 교역대 대원중에 ‘Rafael Rivera’ (아래 사진)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는 교역대에 합류하기 전에는 금을 쫒던 사람이었어.  대장 아미호가 그에게 물을 찾도록 명하면서 그는 교역대를 위해 별도의 길을 개척하며 다녔지.  그러던중 미국원주민이 아닌 외지 사람 최초로 라스 베가스 스프링스 (Las Vegas Springs)에 우연히 도착하게 된 그는 놀라운 현장을 발견한거야.  물과 푸른 숲이 울창한 곳을 본 것이지.  그가 이 오아시스에 와서 탄성을 지르며 “여기가 바로 오아시스고, 참으로 비옥한 초원이다.”라고 소리질렀어.  험준한 산과 들, 강, 그리고 사막을 수개월 동안 지나오면서 겪었던 고통이 한순간에 눈 녹듯 녹아버리며 터져 나온 탄성이었지.  스페인어로 터져 나온 그 탄성이 바로 ‘Las Vegas!’이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비옥한 땅, 초원의 땅, 즉 ‘라스 베가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거야.  뜻하지 않게 역사적 일을 해낸 거지.  특히 그가 발견한 라스 베가스 스프링스로 이어지는 길은 그 후 필수 코스로 정해졌고, 그로 인해 산타 페에서 로스 앤젤레스로 가는 교역로를 훨씬 단축되는 역사도 창출하게 되었지!


 (사진:  Statue of Rafael Rivera in Las Vegas  Source:  The US Government)


[지성]  그러니까 라스 베가스 탄생의 일등공신은 ‘라파엘 리베라’이네요!

[해월]  라파엘과 그와 함께 Santa Fe를 떠난 아미호 교역대 모두가 일등공신이었지.  만약에 이들이 과거 다니던 길로 다니면서 이곳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곳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라스 베가스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이름을 가졌을 테니까!

 

[지성]  산타 페를 중심으로 한 미남서부 발전은 멕시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겠네요.

[해월]  멕시코 북부의 발전은 멕시코 전체 경제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가져왔지만 영광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어.  이를 시기하는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새로운 비극을 맞이하게 돼.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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