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 Aug 10. 2023

제3화 100억 허언증

스타트업 워닝싸인

제3화 100억 허언증제3화 100억 허언증

<스타트업 워닝싸인>

제3화 100억 허언증


"오늘도 투자자들 지렸다."

대표이사의 이 우렁찬 한 마디로 회의가 시작된다.


직원들은 내가 뭘 잘 못 들은 건가 눈이 동그래진다.


대표이사가 말을 이어나간다.

"씨발, 진짜 다들 우리 회사에 투자 못해서 안달이네. IR deck 이딴 거 다 필요 없어. 가서 내가 그냥 싹 털면 그냥 다들 지리고, 막 투자하고 싶어서 난리잖아. 우리 이번에 20억 말고, 100억으로 투자 유치 한다. 100억에 맞게 IR deck 업데이트할 거니까 XX야, YY야, 이따가 바로 회의 하자! "


이런 식의 허언을 몇 년 봐온 기존 직원들은 어차피 조언을 해도 말을 안들을 뿐더러 오히려 문제아 취급하니 그냥 허공을 보고 있고, 이 광경이 처음인 직원들은 "100억"이라는 대표의 말에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다.


제대로 된 프로덕트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하 좋소)에서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100억"이다.


100억이 마치 이웃집 개 이름인 것 마냥 회사 내에서 쉽고 쉽게 외쳐진다. 이 100억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투자자가 대표자에게 호의를 조금이라도 베풀어준 날에는 어김없이 100억 타령이 시작된다.


그 호의는 이런 거다.

"오, A대표, 골프 실력 늘었는데?"
"A 대표, 이건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내부사정) 블라블라..."
"오늘 저녁에 B대표랑 같이 술자리 어때?"

이 일은 내가 하나의 좋소에서 겪은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Pre A 조차도 투자자들에게 세 치 혀로 소설을 읊어가며 겨우 받은 후 제대로 동작하는 프로덕트도, 유의미한 고객도 거의 없는, Series A 투자를 앞두고 있는 모든 좋소 대표의 입에서 항상 이 말을 들었다.


"우리 이번에 100억 투자받는다."

이런 좋소의 대표들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똑같다. 회사 런웨이(Runway)는 몇 개월 남지도 않아 직원들 월급도 밀리게 생긴 마당에, 이미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 마냥 위풍당당하고, 투자자를 소위 "좋밥" 취급한다.


투자자들 앞에서는 무의미한 지표를 뻥튀기하여 속 빈 강정 같이 만들어낸 IR deck을 소설처럼 발표하고,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아주 친절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대표자 본인과 친한 임원들 혹은 직원들을 몇 명 불러 투자자 좋밥 취급 + 우리 이번에 무조건 100억 받는다는 기적의 대환장파티 강연을 시작한다.


좋소가 당장 폐업해야 할 수준으로
현금이 바닥났을 때
대표자를 믿고 도와준 투자자이든,
오늘 처음 만난 투자자이든 할 것 없이
이 강연에서는 좋밥 취급을 면치 못한다.


누구라도 대표에게 약간의 쓴소리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 날엔 각종 인신공격과 쌍욕을 절대 면치 못한다.


이 위대한 좋소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Series A 투자 유치 시즌이 되면, 100억을 받을거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난 이렇게 하는 놈들치고
목표한 기한 내에
실제로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대표 놈을 단 한 번도 못 보았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그 사람의 문제인가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 이후에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기가 막히게 똑같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서는, 좋소에서 100억 투자 소리만 나오면 난 퇴사를 준비하고, 빠르게 이직을 했다. 정말 재미있게도 내가 퇴사한 곳 중에 단 한 곳도 목표했던 100억 원을 유치한 곳은 없었다. 20억 ~ 30억 원 정도조차 회사 폐업 직전에 세 치 혀의 힘을 영끌하여 간신히 유치하는 정도였다.


오늘의 정리 :

제대로 된 프로덕트도 탄탄한 유저 베이스도 없는 좋소에서, 대표가 100억 투자 유치 타령을 한다?

당장 이직을 준비하여, 이후 당신에게 닥칠 "임금 삭감, 해고 협박, 퇴직금 지급 지연" 등을 방지하라.

작가의 이전글 제2화 자가 경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