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워닝싸인
제3화 100억 허언증제3화 100억 허언증
<스타트업 워닝싸인>
"오늘도 투자자들 지렸다."
대표이사의 이 우렁찬 한 마디로 회의가 시작된다.
직원들은 내가 뭘 잘 못 들은 건가 눈이 동그래진다.
대표이사가 말을 이어나간다.
"씨발, 진짜 다들 우리 회사에 투자 못해서 안달이네. IR deck 이딴 거 다 필요 없어. 가서 내가 그냥 싹 털면 그냥 다들 지리고, 막 투자하고 싶어서 난리잖아. 우리 이번에 20억 말고, 100억으로 투자 유치 한다. 100억에 맞게 IR deck 업데이트할 거니까 XX야, YY야, 이따가 바로 회의 하자! "
이런 식의 허언을 몇 년 봐온 기존 직원들은 어차피 조언을 해도 말을 안들을 뿐더러 오히려 문제아 취급하니 그냥 허공을 보고 있고, 이 광경이 처음인 직원들은 "100억"이라는 대표의 말에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다.
제대로 된 프로덕트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하 좋소)에서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100억"이다.
100억이 마치 이웃집 개 이름인 것 마냥 회사 내에서 쉽고 쉽게 외쳐진다. 이 100억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투자자가 대표자에게 호의를 조금이라도 베풀어준 날에는 어김없이 100억 타령이 시작된다.
그 호의는 이런 거다.
"오, A대표, 골프 실력 늘었는데?"
"A 대표, 이건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내부사정) 블라블라..."
"오늘 저녁에 B대표랑 같이 술자리 어때?"
이 일은 내가 하나의 좋소에서 겪은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Pre A 조차도 투자자들에게 세 치 혀로 소설을 읊어가며 겨우 받은 후 제대로 동작하는 프로덕트도, 유의미한 고객도 거의 없는, Series A 투자를 앞두고 있는 모든 좋소 대표의 입에서 항상 이 말을 들었다.
"우리 이번에 100억 투자받는다."
이런 좋소의 대표들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똑같다. 회사 런웨이(Runway)는 몇 개월 남지도 않아 직원들 월급도 밀리게 생긴 마당에, 이미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 마냥 위풍당당하고, 투자자를 소위 "좋밥" 취급한다.
투자자들 앞에서는 무의미한 지표를 뻥튀기하여 속 빈 강정 같이 만들어낸 IR deck을 소설처럼 발표하고,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아주 친절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대표자 본인과 친한 임원들 혹은 직원들을 몇 명 불러 투자자 좋밥 취급 + 우리 이번에 무조건 100억 받는다는 기적의 대환장파티 강연을 시작한다.
좋소가 당장 폐업해야 할 수준으로
현금이 바닥났을 때
대표자를 믿고 도와준 투자자이든,
오늘 처음 만난 투자자이든 할 것 없이
이 강연에서는 좋밥 취급을 면치 못한다.
누구라도 대표에게 약간의 쓴소리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 날엔 각종 인신공격과 쌍욕을 절대 면치 못한다.
이 위대한 좋소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Series A 투자 유치 시즌이 되면, 100억을 받을거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난 이렇게 하는 놈들치고
목표한 기한 내에
실제로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대표 놈을 단 한 번도 못 보았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그 사람의 문제인가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 이후에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기가 막히게 똑같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서는, 좋소에서 100억 투자 소리만 나오면 난 퇴사를 준비하고, 빠르게 이직을 했다. 정말 재미있게도 내가 퇴사한 곳 중에 단 한 곳도 목표했던 100억 원을 유치한 곳은 없었다. 20억 ~ 30억 원 정도조차 회사 폐업 직전에 세 치 혀의 힘을 영끌하여 간신히 유치하는 정도였다.
오늘의 정리 :
제대로 된 프로덕트도 탄탄한 유저 베이스도 없는 좋소에서, 대표가 100억 투자 유치 타령을 한다?
당장 이직을 준비하여, 이후 당신에게 닥칠 "임금 삭감, 해고 협박, 퇴직금 지급 지연" 등을 방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