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플 때는 기력이 쇠약해진다.
컨디션이 저하되면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일상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프기 시작할 때는 빠르게 병원부터 가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질병이 급성으로 찾아오는 경우에는, 초기 단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얼마 전, 급성후두염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과로할 때면 가끔 목에 자극이 와 고생하곤 했다. 고열로 정신이 혼미하고 통증이 점점 밀려오니, 해야 할 업무가 쌓여 마음은 압박감과 책임감으로 눌리기 시작했다. 약봉투를 들고 터벅터벅 걸으며, 어서 가서 약을 먹고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한쪽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게 느껴졌다. 낯선 기분에 속으로 “저 남자 누구지?” 하며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남성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 건물에 볼일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라며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러면서도 경계심은 늦추지 않았다. 그 남자는 당당하게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인 15층을 눌렀다. 바로 내가 가려는 층과 같았다. 나는 그날 그 남성을 처음 봤다. 물론 이 건물 누군가의 지인이거나 업무상 볼 일이 있어 처음으로 방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거의 100퍼센트 확신했다.
"이 남자! 내가 타깃이구나...”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가장 꼭대기 층을 눌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획했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내가 만약 15층이 아닌 다른 층을 누른다면 분명 나를 따라 내릴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소름이 끼치고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열이 40도 가까이 나 정신이 혼미했지만, 공포감에 온몸의 감각은 그 즉시 깨어났다. 머릿속에서는 “건슬아, 벗어나!”라는 두성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좁고 폐쇄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남자과 단둘이 있는 것 자체에 공포가 극대화됐다.
정말 아찔했다. "15층입니다." 하는 엘리베이터 음성과 함께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하게 내렸고, 나는 그 즉시 1층을 누른 후 닫힘 버튼을 눌렀다. "제발 다시 타지 마, 제발..." 속으로 외치는 내내 문이 닫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러는 와중 남자는 어느 호수도 들어가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온몸의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온 정신을 다했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려는 그때, 그는 나를 향해 “다음에 또 만나요”라며 음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지만,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어서 빨리 내려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대로 15층에서 내려 출입문을 열었다면, 그 남성은 내 뒤에서 서성이다가 문틈으로 나를 힘차게 밀치며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급히 도망칠 경로를 머릿속으로 계산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간신히 건물 밖으로 벗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고, 경찰분이 오셔서 주변을 확인하며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주셨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은 외출을 꺼리게 되었다. 경계심이 가득 차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분명하게 느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그 순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한 점이 중요했다. 만약 호들갑을 떨며 그 남자를 자극했다면, 더 위험한 상황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이 경험은 공포와 생존 본능 그리고 정신성을 잃지 않은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