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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없을무 Aug 02. 2023

6. 자아성찰 : 나는 열쇠, 삶은 자물쇠

오늘의 주파수는 23.512 헤르츠. 보이는 라디오 <리디오 read-io>를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요즘 유튜브로 심리학 강의를 듣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청년, 중장년, 노년까지, 연령대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꽉 채우고 있군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있어요. 마치 저처럼, 오늘의 주제가 평소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저렇게 집중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겠죠? 그렇다면 강의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나를 알아가는 법>이었습니다.




한때 저는 스스로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좀 싫어했죠. 

저는 섬세한 사람이며, 이 섬세함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섬세함이 정도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섬세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한 번에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많다는 뜻이며, 이는 곧 본인의 수용 범위를 넘어서면 상당히 예민해진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며 뇌를 많이 쓰다 보니 머리가 아프고, 필요 없는 비언어적 정보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니 지나치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상상력까지 붙어 머리가 제멋대로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주변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제가 혼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까지 와 버렸습니다.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의 예민함을 다시 섬세함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존감 단단하고 자기 색깔이 확실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그들처럼 마음을 세팅했습니다.

‘나를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자.’

그러나 저는 이 명제를 따르지 못하고 어영부영만 하다가 혼자서 마음만 더 다치고 말았습니다. 저 때가 저의 바닥인 줄 알았으나 바닥 아래에 밑바닥의 존재까지 알게 되고 말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본받는 것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단계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이었어요. 무엇보다 먼저 해야만 했던 것은 바로 자기성찰이었습니다.

저 당시의 저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바라왔던 성취를 이루지 못했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해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이 약해지고, 그저 주변의 작은 관심이 내 기쁨의 전부인 것 마냥 살고 있었던 겁니다. 제 안에는 당장 혼자 서기 어려운 저 밖에 없는데 그런 절 어떻게 믿고 우선순위로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말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해요. 사람의 삶은, 성격은, 사고방식은 모두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삶을 살아갈 때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생기면 그 해결법 또한 스스로만이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국어 문제집을 풀면서 모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수학 문제집 해설지를 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레퍼런스로 삼을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 그 레퍼런스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만 꺼내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나의 경험과 신념이라는 겁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이런 ‘자신은 끝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지금보다 어릴 때 비슷한 아픔을 겪었어요. 그래서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생각이 변하듯 나라는 사람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에 끝이란 없더군요. 그래서 저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방청객들이 ‘나를 알아가는 법’을 알기 위해 심리학 강의를 듣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이 사실을 잊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을 잠시 소홀히 했기 때문에 더더욱 방황의 시간이 길어졌던 것이고요. 

문득 우리는 열쇠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요, 저는 열쇠입니다. 삶이란 길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있고요. 그 자물쇠의 구멍은 모두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자물쇠의 구멍이 종종 나란 열쇠와 맞지 않고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자물쇠 구멍의 모양은 나만 알고 열쇠의 모양도 나만 바꿀 수 있는데, 내가 나라는 열쇠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꾸만 잊기 때문이에요. 잊고 살다가 크게 고꾸라지면 다시 깨닫습니다. 나라는 열쇠의 모양을 좀 바꿀 시기가 되었다고요.

지금이 그 시기군요. 저는 다시 저라는 열쇠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특정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떤 방법을 선택하면 좋을지,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저의 적정선은 어디인지,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며 알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일지 오랜 시간이 들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모양을 알게 되면 당분간은 또 온갖 자물쇠를 열고 다니며 잘 살 수 있겠지요.




여러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 번씩은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춰서 ‘지금의 나’라는 열쇠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앞에 있는 자물쇠의 구멍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며 이전보다 조금 변한 스스로를 다시금 차분하게 살펴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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