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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06. 2024

문학적 빈곤에 관한 짤막한 고찰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미처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지 못했을 때 나는 세계문학 코너를 기웃거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 전 읽고 있던 어느 책에선가 언급한 사실이 생각 나 빼 들었다.

  나는 책을 읽은 후 '서평'을 쓰기엔 부족한 역량 탓에 주로 책의 말미에 실린  '작품해설'이나 '작가와의 인터뷰'나 '작가의 말' 등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서간체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 제부쉬낀의 편지글은 길고 장황한데 비해 여자주인공 바르바라의 편지글은 짧고 간결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별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읽었는데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 이 (석영중-열린 책들)의 '문학적 빈곤에 관한 짤막한 고찰' 글을 읽고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그리고 주인공이 대문호인 '셰익스피어'나 '고골'을 심하게 비판하는 것도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그것도 이해를 하게 되었다.   

  가난한 하급 관리인 뷔스킨은 스스로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할 정도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교육 수준이 높지 않으므로 문학적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난한 사람'이 아닌가!  적어도 '문학적'으로 말이다.  제부쉬낀이 물리적인 가난으로  비참함을 느꼈다면 나는 '문학적 빈곤'으로  비참함을 느껴야 했. 

  이 고약한 감정은 내가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하는  한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숙명적 감정일 것이다.

  

  부유한 남자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떠나는 바르바라에게 제부쉬낀은 마지막으로 기나긴 편지를 쓴다. 편지의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 이제 제게도  좋은 문장력이 생겨나고 있는데... 아 소중한 이여,  문장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문학적 빈곤에 관한 짤막한 고찰  -  석영중 (옮긴 이)  221 p

  

......


'가난한 사람들'은 중년의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 과 궁핍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부유하고 욕심 많은 사내와 결혼하는 병약한 처녀 바르바라가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이다.

.......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제부쉬낀은 전형적인 하급 관리로서 정서 업무, 낡은 옷, 비굴한 태도, 허름한 주거 환경 등등 고골의 '외투'에 등장하는 '아까끼' 및 생리학적 스케치의 단골 주인공인 하급 관리의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선배 하급 관리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자의식과 자존심과 독서 능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

  요컨대 아까끼 및 다른 하급 관리들은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영위하며 내면적 성찰이라든가 독서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므로 그들의 삶은 진정 비참할 수밖에 없다. 아까끼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는 기계적인 정서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아무런 사고와 사색도 할 줄 모른다. 그가 애착을 느끼는 유일한 대상은 새로 산 외투밖에 없다. 이렇게 1차원적이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단순화된 삶은 아까끼를 가엾다기보다는 기괴하게 만들어 준다.

.....


  제부쉬낀은 또한 비록 정서나 하는 서기이지만 아까끼가 남이 쓴 것을 베껴 쓰는 일밖에는 할 줄 모르는 것과 달리 문학 작품을 읽고 평을 할 정도의, 그리고 스스로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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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부쉬낀은 기존의 하급 관리에 비해 감정과 사고 능력을 갖춘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교육 수준이 별로 높지 않으므로 그의 문학적 행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훌륭한 문학과 저급한 문학가에 대한 올바른 평가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그는 세익스피어니 고골이니 하는 작가는 모두 저주하면서도 저급한 연애 소설을 쓰는 라따자예프 같은 작가를 흠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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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부쉬낀 과 바르바라 간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는 독서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선 두 사람의 편지를 비교해 보면 바르바라의 편지가 제부쉬낀의 편지보다 짧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제부쉬낀의 편지는 거의 언제나 독백조의 장광설로 이어지므로 두 사람 간의 서신 왕래는 심한 불균형을 보여 준다. 제부쉬낀은 바르바라에게 '좀 상세하게' 답장을 보내 달라고 애원하지만 바르바라의 답장은 언제나 절제와 간결함을 잃지 않는다. 심리적 차원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즉 제부쉬낀의 열렬한 애정과는 달리 바르바라의 감정은 상대방의 호의에 대한 의례적인 답례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문체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제부쉬낀의 문체는 장황하고 요령이 없으며 감정만을 앞세운다. 반면에 바르바라의 편지는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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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두 사람의 문체론적 차이는 감정의 차이와 나란히 양자의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해 주는 셈이다. 바르바라가 제부쉬낀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는 것은 나이나 물리적인 빈곤 못잖게 제부쉬낀을 비참하게 만들어 주는 문학적 빈곤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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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는 책, 그가 쓰는 글이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미학 공식은 이미 첫 번째 소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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