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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09. 2024

명절 전날의 작은 소회

   


  일어나자마자 새벽 3시쯤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담가 놓은 돼지갈비를 들어다 보았다. 붉그스름하게 우러나온 핏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받아 담가 놓고 소파에 누웠다.   

  한 시간쯤 후에 일어나 엄마에게 명절 잘 보내시라는 전화를 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천천히... 혼자... 사부작사부작...


  나는 이렇게 나혼자 친천히 하는 요리시간을 좋아한다.  옆에서 설거지나 재료 손질을 도외주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순서가 헷갈리거나 자신이 없을 때는 핸드폰의 네이버를 이용한다.   


  간장갈비찜과 매운 갈비찜 사이에서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매운 갈비찜으로 정했다.

고사리와 도라지와 시금치나물도 했다. 뒤늦게 일어난 남편이 들여다보고는 뭘 그렇게 많이 하냐고 제사도 안 지내는데... 혼잣말인 듯  말했다. 그래도... 명절이잖아... 나 또한 혼잣말인 듯 말했다. 남편은  물 한 잔을 마시고 식탁에 모아둔 비닐 스티로폼 등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들을 모아 들고나갔다. 국으로 배추된장국과 순두부계란국 사이에서  한두 번 망설이다가 갈비찜이 매우니까 순한 순두부계란국으하자고 결정했다.

  매운 갈비찜과 삼색 나물과 새우젓으로 간을 해 시원하고 순한  순두부계란국으로 상을 차려 세 식구가 식탁에 앉은 시간은 정오 무렵이었다.

  매운 갈비찜과 순두부계란국...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 밥은 한 그릇씩 뚝딱 비웠고 유난히 국을 좋아하는 이들은 순두부계란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끼리 조용하고 단출하게 명절을 보내는 것이 2년째이다.

  결혼 전 미혼 때는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집에 내려갔고 결혼 후에는 시댁으로 다. 전업주부일 때는 어린 아들과 둘이서만 명절을 며칠 두고 먼저 시댁에 내려가 시어머님과 동서들과 함께 장을 보고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음식을 만들었었다. 시누이들과 방문 친척들을 대접하느라 하루종일 상을 차리고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서는  두통으로, 시댁에서 보내는 명절 이삼일은 변비로 힘들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년 후에는 맏이인 우리가 제사를 가지고 와서 일 년에 명절 두  번과 제사 한 번 도합 세 번을 집에서  치렀다. 남편 형제들과 조카들과 떠들썩하고 분주하고 피곤하게 보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쉽지 않은 결정과 이런저런 집안의 사정으로 우리끼리만 명절을 보내고 있다.

  세월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다. 나의 의지와 선택이기보다 흐르는 물살에 떠밀려 여기까흘러온 것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월은 흐르고 있다. 나는 이 순간에도 흐르는 시간에 조금씩 떠밀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겠지.  마지막 순간에 당도할  종착지는 결국 죽음일 것이고...    


  나는 그저 세월의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저항하지 않고 순하게 흘러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흘러 왔듯이.


   달아나고 싶을 만큼 불편하고 떠들썩한 명절의 식탁을 지나 지금은 셋 뿐이다. 이 단출한 식탁이 아들의 결혼으로  네 명 다섯 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엔  줄어드는 날이 올 것이고..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보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지금의 이 날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기를 나는 오늘 명절을 앞두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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