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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Mar 11. 2024

위악보다 나은 것은 위선이지만 위선보다 나은 것은...

최진영 '썸머의 마술과학'을 읽고


  작가노트


기후위기를 대하는 청소년과 어른의 온도 차이를 쓰고 싶었다. 청소년에게 기후 위기는 당면한 현실이고 두려운 미래인데 어른들은 계속 돈 얘기만 한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의 지구정상회의에서 당시 열두 살이었던 세 번 스즈키는 말했다. "고칠 줄 모른다면 망가뜨리는 것을 멈추십시오."이미 삼십 년 전부터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대한 예측과 우려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후 해마다 각국의 정상들은 회의를 열었고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성장을 포기하진 않았다. 2019년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시점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돈과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만 합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2022년 대한민국 정부는 재생에너지나 탄소 중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비관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이미 늦었다는 말 뒤에 숨어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누군가가 소용없다고 비아냥거려도 포기하지 않고. 소설의 마지막에 썼듯이, 나에겐 낯설지만 썸머의 세대에겐 당연해질 것들을 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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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열여섯 살 청소년 이봄과 이봄의 아홉 살 동생 이썸머(이여름) 자매가 화자가 되어 번갈아 가며 이야기한다. 아빠는 술모임에서 거짓 정보를 듣고 투자했다가 3억의 빚을 진다. 그러나 대책을 세우기보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자신은 피해자라고 큰소리친다. 엄마도 여전히 시모임에 나가면서 시를 쓴다. 부모님은 지구 환경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지만 썸머는 학교에서 배운 환경보호에 가장 관심이 많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썸머는 탄소중립도 알고 기후 난민도 안다.

 

 썸머는 코로나에 걸린 이후 집에서도 밥 먹을 때와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걱정이 많아진다고. 마스크 때문에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안전하다는 감각에 더 익숙하다.  썸머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루 한 가지 환경보호 하기를 실천한다. 분리수거를 잘하고  쓰레기를 주우면 딱 그만큼의 환경이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여기서 나는 얼마 전 삼일절을 며칠 지났을 즈음 티브이로 재방송되어 또다시 눈물 흘리며 보았던 '미스터선샤인'의 대사가 생각났다.  아마도 애신이 매국노에게 총을 겨눈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너 하나 싸운다고 망할 조선이 안 망해? 내 하나 죽인다고 다 넘어간 조선이 구해지니?라는 매국노의 말에 애신이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하루를 늦출 수는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내가 하루 늦추고 누가 또 하루를 늦추고... 그 하루에 하루를 자꾸 보태는 것이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페트병의 라벨을 뜯어내면서... 배달음식의 일회용 용기를 깨끗이 씻으면서... 물을 콸콸 틀어 놓은 양치를 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면서 물을 잠궈 줄 때...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하면 되겠다. 적어도 환경으로 인한 지구 멸망을 딱 요만큼은 늦출 수 있겠지... 요만큼에 요만큼을 보태고 또 보태고...





 

다음은 열다섯 살 봄이의 서술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어른들?) 최소한 봄이와 같은 정도만이라도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과 실천을 해 주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나의 세상은 썸머가 없었던 때와 썸머가 존재하는 때로 나뉜다. 나는 아직도 썸머의 연하고 작은 손을 처음 잡아봤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썸머의 손을 잡고 다짐했었다. 이 아이를 평생 지켜줄 것이라고..... 썸머를 생각하면 미래를 무한하게 긍정하고 싶다. 팬데믹, 미세먼지, 전염병, 홍수, 침수, 가뭄, 꺼지지 않는 산불, 식량난, 기후 난민, 토양오염, 해양오염, 종의 멸종처럼 암울한 들로 가득한 미래가 아니라... 탄소중립 실현, 미세먼지 없는 대기, 자연분해 가능한 플라스틱, 재생에너지, 수소에너지, 전기자동차, 대체식품 등으로 채워질 미래를 상상하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는 낯설지만 우리에겐 당연해질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 만들어낼 거라고 믿고 싶다......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들고 다니는 나를 보고 임준석은 위선 떨지 말라고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텀블러도 쓰레기 아니냐고, 텀블러 쓰면서 오버하는 이런 애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고, 은근히 사람 불편하게 하는 이런 애가 사실 더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인간들이 다 멸망해 버리는 게 지구한테는 더 나을 거라고 임준석은 말했다. 적지 않은 애들이 그 말에 동의하는 제스처를 하면서 낄낄낄 웃었다. 걔네가 상상하는 멸망은 지금처럼 조금씩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소행성 충돌 같은 사건으로 모두가 단숨에 사라져 버리는 것에 가까웠다. 예고 없이 갑자기 일어나서 고통조차 없는 황홀한 멸망.


......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할 용기도 없다.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사고 싶고 평생 치킨을 먹지 않고 살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들이 기후 위기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라며 등교 거부 시위를 한다면 참여할 것이다. 비건을 위한 급식 식단을 따로 마련하라는 서명서에 내 이름을 적을 것이다. 계속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들고 다닐 것이다. 임준석이 또 개똥 같은 말로 나를 모욕한다면 오늘 아빠에게 그런 것처럼 화를 내고 싸울 것이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고, 망하고 싶으면 너 혼자 망하라고 확실하게 말할 것이다.








리뷰  권희철(문학평론가)


 물론 이봄의 말처럼 위악('너만 옳은 척 유난 떨지 마. 어차피 다 망하게 돼 있다는 거 몰라? 차라리 다 같이 빨리 망하는 게 더 낫고 솔직한 거야') 보다는 위선('더 나은 일을 찾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어')이 낫다. 하지만 위선보다는, 이봄 자신이 썸머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해버리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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