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대 후반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1

----면허증 따도 실제 운전은 못할 것 같아.... ---

by 찌니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비바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입동. 자연의 섭리 앞에 새삼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을의 낭만과 우수의 상징이었던 거리의 형형색색 낙엽도 하루아침에 집 쫓겨난 가장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알몸을 거의 드러낸 가로수들도 겨울 닥친 가난한 집 살림살이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오후 2시 넘어 겨우 집을 나섰다. 택시 탈까 하다가 어차피 몇 번은 가야 할 길이고 환승 없이 가까워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ㅇㅇ역에서 55번 버스 타고 20 여 분 ㅇㅇ빌 17단지 앞 하차하여 고만고만한 아파트 단지를 돌고 돌아 드디어 도착했다.


운 전 면 허.


매년 새해 다짐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일이었다. 매 해마다 이런저런 사정이야 있었지만 일순위 원인은 나의 심한 기계공포증이었다. 내가 모르는 온갖 부품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기계 앞에 서면 어지럼증을 너머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사림의 두뇌처럼 복잡한 기계가 사람의 손끝의 작은 움직임으로 작동되는데 반대로 손끝의 작은 움직임으로도 고장이 나서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자동차는 크고 위험한 기계다. 나 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가끔 쪽팔리고 (자가운전 친구들 약속장소에 운전해 와서 편안하고 폼나게 차에서 내리는데 나는 저 멀리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숨을 헐떡이며 걸어올 때) 가끔 불편했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오히려 대중교통 이용이 내 건강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큰소리도 쳤다. 건강한 장수의 아이콘이셨던 송해 선생님이 자신의 건강비결을 S(버스) M(지하철) W(걷기)라 하신 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이런 나의 성향은 엄마를 닮았다. 통장관리 돈관리에 일기까지 쓰시는 자타공인 명민한 우리 엄마가 핸드폰이 없다. 우리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이나 핸드폰 사용에 도전했다가 포기했다. 들고 다니는 것도 신경 쓰이고 사용방법(엄마 기준 유선전화기와 비교해서)도 번거롭다는 것이다. 에어컨도 절대 절대 싫다신다. 지금까지 없이도 잘 살아왔고 덥다 싶으면 금방 찬바람 나는데 전기 잡아먹는 그게 무슨 필요가 있냐 신다.


올해 여름엔 엄마 몰래 표 안나는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해 주려고 언니와 형부와 오빠가 비밀 작전까지 짜서 달아주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예정시간보다 설치기사님이 일찍 와서였단다. 언니가 엄마집에 다시는 안 올 거라고 화내고 협박해도 소용없더란다.





천장에 달린 (상담. 입학)이라 쓰인 팻말 아래 직원 한 명 당 고객 두 명이 창구에 앉아 있었다. 직원은 열심히 설명하고 고객은 머리를 맞대고 귀를 모아 듣고 있었다. 대기자들도 여러 명 앉아 있었다. 모두 젊었다. 나는 고층 빌딩 속 오두막집처럼 기가 죽고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졌다.


"어떻게 오셨어요? "


상담 중에 잠깐 짬이 난 여직원이 친절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 상담... 좀.... 하려고....."


내 목소리는 작게 기어들어갔다. 얼굴에 억지로 띄운 미소는 좀 긴장되고 어색했으리라...


"여기 성함 쓰시고 기다리세요..."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20대 젊은 여자애와 같이 상담창구에 앉았다. 직원이 프린트물을 주고 프린트물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수강료 계산과 금액이 거의 전부인 설명이었다.


"학과교육을 먼저 받아야 되는데요 시간당 11000 원이고 세 시간 33000원이고요... 장내기능은 네 시간씩 이틀 받아야 되고요 시간당...."


30대로 보이는 얼굴이 작은 여자직원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말이 빨랐다.


"잠깐만요..."


나이 든 티 안 내려고,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내가 태클을 걸었다. 어떻게 시작하는 건데... 돈도 많이 드는 것 같은데.... 그냥 설렁설렁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천천히 설명해 주세요...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그러니까 학과교육은 필기시험을 위한 거고 장내기능? 이거는 실기시험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










등록하고, 교육과 시험일정 잡고, 시험문제집 받아 들고 학원을 나왔다. 상담하러 온 대기자들이 더 많아졌다. 모두 젊었다. 나는 뭐 했나... 너무 대충 살았어...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다. 20분 정도 기다리면 셔틀버스 간다는데 나는 굳이 또 걸었다. 올 때 내린 그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춥고 비바람 부는 어둑어둑한 낯선 동네를 우산 쓰고 젖은 낙엽 밟아가며 차량 맞게 걸었다.


나는 불편에 길들여진 모양이라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불행에 빠진 사람이 불행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불행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든 삶이든 길들여져서 익숙해진 것에서 벗어나기란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꼭 벗어나야 하나? 지금에 와서? 귀찮아... 번거로워... 그냥 살던 데로 살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겠지...

나 그런 고비를 겨우 한 단계 넘어섰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고비마다 그런 회의가 고개를 들겠지...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궁금하다. 내가....




집 앞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레몬차 마시며 시험 문제집을 들여다봤다. 학원 스케줄과 나의 사정 때문에 일주일 후 학과교육이고 이 주 후가 필기시험이었다.


귀가하던 아들이 들렸다. 인상을 잔뜩 쓰고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어이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필기시험은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될걸... 기본이야 기본... 문제만 잘 읽으면 돼..."


"그래도 시험이거든... 기본인데 떨어지면 더 쪽팔리잖아. 아빠 말 못 들었니? 문제 하나 안 풀어보고 전날에도 술만 진땅 마시고 이튿날 필기시험 봤다가 떨어진 거... "

나는 문제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근데 엄마... 난 엄마가 면허증을 따도 실제 운전은 못할 것 같아.., "


아들의 그 말은 귀가 아니라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내가 가장 염려하는 바를 정확히 말해줬던 것이다. 나는 애써 큰 소리로 대답했다.


" 아니야... 의외로 잘할 수도 있지... 두고 봐라 뭐..."


목소리에 비해 자신감 없는 말투.... 아들에게도 그렇게 들렸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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