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나는 계속되는 냉탕과 온탕 사이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두 아이 때문이다. 9살 난 중증 자폐 아이, 그리고 3살 정상 아이와 살고 있다.
둘째 아이와 저녁때 놀이터를 다녀올 때면 찬란한 세상의 행복감을 느낀다. 평범함의 행복이랄까. 이 기분은 영화 그래비티의 산드라 박이 마침내 지구에 착륙했을 때 느꼈던 물과 산소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 같은 것일까. 조금 과장하면 그렇다.
아이가 나를 아빠라 불러주는 것. 내 눈을 마주치는 것.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따라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행복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런 평범함을 친숙히 누리고 있는 부모들이 부럽고 저 높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젠 냉탕 차례다.
둘째 아이와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첫째 아이의 괴성 소리가 들린다. 집 안은 방금 도둑이 들이닥친 것처럼 질서 없이 파괴되어 있다. 이런 아이에 치여 아내는 괴물이 되어있다.
아, 꿈이었나.
이제 다시 현실감이 돌아왔다. 거스를 수 없이 괴물이 되어버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젠 내가 첫째와 단 둘이 있겠다고 교대를 한다.
매일 이러한 기분은 수없이 반복된다. 조커 영화에서 얼굴 반이 화상을 입은 악당처럼. 우리의 반은 평범한 사람, 나머지 반은 악마로 살아 간다.
얼마 전에도 아내가 말했다.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나는 이 말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