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호텔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라테를 주문한 뒤 화장실에 가려 했는데, 카페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따로 키를 들고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직원에게 키를 요청했더니 바로 직전에 다른 손님이 가져갔으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하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금발의 외국인이 다가와 자기가 방금 그 키를 가져간 사람이라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다.
급했던 터라 흔쾌히 따라나섰고 걸어가던 중, 그녀가 "How’s your day so far? (오늘 하루 어때요?) "라며 말을 걸었다. “So far it's good(지금까진 너무 좋아요)”이라고 답하자 그녀는 여기에서 공부하는 게 좋냐고 물어봤다. 학생이 아니라 여행 중이라고 하니, 그녀 자신도 여행 중이라면서 반색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남편과 둘 다 풀 리모트여서 RV를 빌려 로드 트립을 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추운 지역인 오클라호마에서 왔고, 그전에는 샌디에이고를 여행했다가 시동생이 피닉스에 있어서 며칠 머물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하루 뒤엔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그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와 나 둘 다 추운 지역에서 따뜻한 애리조나로 왔다 보니 12월을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짧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카페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통성명까지 했다.
이후 카페로 돌아와, 잠시 그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우리에게 대입해 보았다.
J와 나도 풀리모트이지만 경험상 인터넷 속도가 빠른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또한 그녀처럼 가족의 집에 머무는 게 아닌 이상, 여행하면서 일하는 건 오히려 새로운 곳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아마 그녀 부부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짧은 대화 안에서도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좁은 시선으로 나를 제한하지 말고,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더 놀라운 가능성들을 스스로 막지 말자고.
그 가능성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4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비관론자처럼 대비는 하되 낙관론자처럼 꿈꾸자고.
이번 애리조나 여행이 유난히 특별했던 이유는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여행 내내, 설명할 수 없는 작은 희망이 계속 자라났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푸에르토리코 여행과는 극명히 대비됐다.
푸에르토리코 여행 전날, 아침 비행기였는데도 새벽 3시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아 3시간밖에 못 자고 공항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여행 마지막 3일은 쭉 일만 하는 시간을 보내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전의 엉망이었던 일상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그 후의 1년은, 10년 전 우울증을 겪던 때처럼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옆에서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지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큰 상처 없이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 모든 감사함을 안고 새로운 한 해를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에 다시 열정을 가질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길로 인도하실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있다.
그럼에도 여행 내내 속으로 기도했던 것처럼 분명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
그러니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지엽적인 시선으로 한계 짓지 말고, 조금 더 넓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그런 희망으로 새해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