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개발자의 기록
*지극히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개발자로 일한 지 4년 차.
이직부터 직장 내 부서 이동이 활발한 IT 업계답게 그동안 4명의 매니저들을 만나게 됐다. 신기하게도 4명의 매니저의 업무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더불어 매니저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됐다.
1. 헬리콥터부모형
한마디로 요약하면 '밀착 관리(Micro managing)'를 한다.
인도인 매니저였는데 팀이 막 새로운 서비스를 빌드업하기 시작했을 때 새롭게 우리 팀에 조인했다. 대기업 내 스타트업 같은 팀 분위기 속에서 정해진 기간 안에 서비스를 배포하기 위해, 무언가 이슈가 생기거나 막히는 게 있을 때마다 이 매니저의 주도하에 갑작스러운 줌 미팅도 자주 잡혔다. 그리고 거의 매일 있는 간단한 업무 보고 회의(standup meeting)에서 현재 맡고 있는 태스크가 어떤 상황인지, 막히는 일(blocker)이 생겼다면 무엇 때문인지 압박 면접이 이어졌고 그로 인해 미팅이 거의 1시간 지속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면 재택근무에 팀원들끼리 슬랙으로도 업무 외의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에 각자 어떤 마음가짐이나 생각으로 일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끔 매니저의 마이크로 매니징이 미국 회사에서는 보기 힘든 그것이어서 신기하고, 때로는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팀원들 슬랙이 오전 9시가 되었는데 슬랙에 온라인으로 접속되었다고 뜨지 않을 경우, 그 팀원들을 팀 슬랙 채널에 태깅하며 제 때 온라인에 접속할 것을 요구하거나, 나의 경우 pacific time zone 시간으로 4시 반에 오프라인 했을 때 (내 시간으로는 오후 6시 반) 다른 팀원들과 시간을 맞춰 일을 끝마칠 것을 부탁했다.
장점:
- 실력 키우기 좋다. 계속되는 압박 면접과 같은 시간들, "왜 못 끝냈어?" , "뭐가 막히는 거야?", "어디 어디에 도움을 요청했어?" 등등의 질문으로 인해 일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게 된다.
- 팀 내 분위기가 살짝 긴장감 있지만 확실히 그만큼 일이 빨리 진전된다
단점:
- 실력 키우기 좋은 만큼 개인의 역량에 따라 스트레스도 증가할 수 있다.
- 시도 때도 없는 줌 미팅으로 인해 온전히 코딩하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2.(살짝 쪼인) 방목형
현재 팀으로 이동하기 전 매니저가 이 유형에 속했다. 앞에서 말한 매니저와 같이 마이크로매니징을 하진 않지만 크고 굵직굵직한 일들에 대해 숲을 보는 시각으로 팀원들을 관리했다.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자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서 주 중 1-2번 정도 업데이트 해 주길 원했고, 자신이 하는 역할은 내가 맡은 일이 다른 요소들로 인해 지체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임을 분명히 명시해 주셨다. 무엇보다 주간 보고 (weekly ops) 팀 미팅을 할 때, 팀원들이 어떤 식으로 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지, TTD(Time To Detect), TTR(Time To Resolve)등 무엇을 빠트리진 않았는지 중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에서 신뢰가 많이 생겼었다.
장점:
- 일을 함에 있어서 조금 더 자유롭다
- 팀 분위기도 확실히 조금 더 자율적이면서도 체계가 잡힌다
단점:
- 나의 커리어 목표와 방향에 따라 일을 분담해 준다.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성장을 원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만큼 매니저도 나에게 그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그만큼의 일을 할당한다. 그러나 내가 "워라벨을 원한다"라고 하면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도로 넘어간다. 즉 내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매니저가 나와 함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달라진다.
3. 방임형
'중간관리자'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매니저는 프로덕트 매니저나 다른 외부 팀들과 우리 팀의 의사소통 접착제 역할을 한다. 그 외에 업무 조율을 하지만 중요한 프로젝트 리드는 Principal engineer와 다른 엔지니어들이 이끌어나간다.
장점:
- 개발자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자율권 (앞서 말했듯이, Principal Engineer가 거의 미팅과 모든 걸 이끌어나간다)
단점:
- 팀 분위기가 활기차진 않음. 일의 진전 속도도 느리다
- 매니저와 함께 일의 역량을 키워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4. 방목 + 방임형
방목과 방임의 중간 단계에 있는 매니저 유형이다. 굵직굵직한 일들에 대해서는 아주 세세하게 물어보고 알길 원하지만 그 밖의 사소한 업무는 다른 principal engineer 개발자의 지도나 역량에 맡긴다.
장점:
- (내가 보기엔) 미팅이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각으로 팀 전체를 이끌어나간다
단점:
- 주니어 엔지니어의 경우 매니저를 통해 커리어 플랜을 잘 쌓기는 어렵다. 매니저와 큰 안건으로 소통하는 시니어 엔지니어들이 역량을 키우기에 좋지 않을까 싶다.
직장 내에서도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커리어 패스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 만약 워라밸을 원한다면 워라밸의 정도 등이 많이 갈린다.
물론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현재 내 위치가 어디에 있고 내가 원하는 커리어의 목표를 정확히 인지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보완하고 찾아갈 수도 있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그저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었기에 각각의 매니저의 유형에 맞춰 내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 될지를 몰랐다.
그래서 첫 6개월은 심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다. 주변에 물어볼 선배도 없고 이제 막 온보딩을 시작한 주니어 개발자가 고민이 있다고 누가 들어줄까. 그나마 "지금 하고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하면 돼"라는 조언을 나보다 1년 일찍 다른 테크 대기업에 입사한 개발자 친구한테 들었다.
혹시 이제 막 회사를 입사하는 분이라면, 각각의 매니저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커리어 패스는 어떤 건지, 그걸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해 본 다음 어떻게 맞춰 행동하면 좋을지 차차 적용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회사 생활 2년 차에 첫 번째 매니저를 만나, 부족한 내 실력을 더 알게 되면서 많이 깨졌다. 그러나 그런 시간 덕분에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해야 되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이후 방목형 매니저를 만났을 때는 그 매니저에게 맞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첫 1:1 미팅에서 구축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내가 팀에서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핸들링하는 프로젝트를 기한 내에 완수했다.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더 정확히는 내가 팀과 회사에서 원하는 바와 기여하고 싶은 부분을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국 회사는 특히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환영하는 환경이기에 괜히 내 상사라고 눈치 볼 필요 없이 유연하게 이야기하면 보통은 다들 그 의견을 반영해 준다.
처음에는 괜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내가 열심히 일을 하면 알아주지 않을까' 했지만 나 말고도 팀원이 많은 회사 내에서 내가 나를 알리지 않으면 사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4년 전 내가 이 글을 봤다면, 조금 더 분명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나를 알려도 된다고,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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