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석 Jun 20. 2024

오고 싶은 상담실 만들기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오고 싶은 상담실 만들기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내담자: 음. 네 잘 지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졸려요.


나: 졸린 상태군요. 혹시 어제 늦게 잤을까요?


내담자: 네.


나: 몇 시에 잠들었나요?


내담자: 새벽 4시요.


나: 이야. 엄청 늦게 잤네요! 뭘 하다가 잤나요?


내담자: 그냥 놀았어요. 핸드폰도 하고 다른 것들도 하다가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잠든 것 같아요.


나: 오 그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나요?


내담자: 오전 8시요.


나: 늦게 잤음에도 엄청 빨리 일어났네요! 오전에 일정이 있었나요?


내담자: 네 아침에 어딜 다녀왔어요. 그래서 지금 많이 피곤해요.


나: 밤에 늦게 잠들었음에도 오전부터 바빴네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부모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내담자: 이미 상담하러 들어가셨어요.


나: 오 그렇군요. 우리도 상담을 시작합시다. 이미 시작했지만, 자리에 앉아볼까요?


내담자: 이미 시작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나: 우리가 만난 시점부터. 혹은 당신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상담은 이미 시작한 것으로 볼 때가 많아요. 일찍 온 것이나 나와 인사를 하는 모습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도 상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죠.


내담자: 헐. 앞으로 여기 올 때 신경 써서 와야겠네요.


나: 꼭 그럴 필요도 없지만, 신경 써서 와도 좋죠. 오늘은 어떻게 하면 여기에 오고 싶어 할지 고민해 봤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담자: 제가 여기에 오는 걸 말하는 거죠? 저는 솔직히 여기에 부모님이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왜 상담을 받아야 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 맞아요.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만큼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상담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억지로 오기보다는 직접 오고 싶어서 오면 더 좋잖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당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거이죠. 이걸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도날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 은 '붙들기 (Holding)'라고 했어요. 내가 지금 당신을 위해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요.


내담자: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미 오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참 어렵네요.


나: 그렇겠네요. 그럼에도 여기에 온 것은 정말 나이스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의미도 있고, 오기 싫다고 하셨지만,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내담자: 네. 하지만 저도 조금 신기하긴 하네요. 오기 싫었는데 왜 왔을까.. 


나: 굳이 이야기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가도 됩니다. 원하신다면.


내담자: 지금 저는 자고 싶은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잠을 잘 수는 없겠죠?


나: 정 원하시면 잠을 자도 괜찮죠. 정말 잠을 자고 싶으실까요?


내담자: 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음.. 혹시 지난번처럼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나: 오! 네 그럼요. 그림 그리는 것 좋아요. 하지만 오늘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그림에 대한 부분은 물어보지 않을게요. 그냥 그리고 싶은 그림만 열심히 그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연필이나 펜, 뭐가 더 편할까요?


내담자: 오늘은 펜을 사용할래요.


나: 네. 그럼 펜이랑 종이 준비할게요.


내담자: 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림을 그릴게요.



나는 이렇게 해서 이번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림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했고, 그것만으로도 내담자는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시간에 기대했던 부분은 아니었지만,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담자에게 이야기했던 ‘붙들기’(holding)'라는 개념은, 신뢰와 관련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부모가 신뢰를 주었을 때, 신뢰와 함께 자녀를 안전하게 돌보는 것에 연결이 된다.


안전한 곳, 신뢰를 갖고 돌보는 곳.

나는 내담자와 만나는 상담실이 안전하고 신뢰가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다시 말해서, 내담자는 오기 싫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이곳에 왔기에 안전과 신뢰, 자신을 봐준다는 느낌을 찾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내담자의 집은 안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그래서 오기 싫어하는 것이 반사회성이 동반된 느낌일 수 있고, 불안전함이라는 느낌을 받기 싫고, 그에 따른 감정을 겪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분들을 잠시 이야기도 해보고,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상담실에 오는 행동을 통해 집에서 느끼지 못한 부분들을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담자가 처음 그린 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