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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Oct 31. 2024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반가워요. 잘 지냈어요?


내담자: 네. 잘 지냈어요. 그렇지만 저에 대해 알아가는 게 생각보다 힘든 것 같아요.


나: 그렇게 느끼는군요. 맞아요. 자신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게 맞죠. 하지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과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담자: 아! 저는 그럼 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저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나: 그렇죠. 정말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실제로는 뭔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훨씬 심오하고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보면, 내가 출간한 '작은 그녀'라는 책이 있어요. 나는 그 책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요. 내가 썼으니까요. 하지만 그 책을 알아가기 위해 다시 읽어보면 '이런 부분은 고쳤으면 좋겠다.'또는 '내가 이렇게 글을 썼던가?'등과 같이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요. 엄연히 뭔가를 잘 알고 있는 것과 뭔가를 알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이 예시는 잘 어울리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요.


내담자: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적절한 예시였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최대한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주시려고 했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나: 좋네요. 잠시만요. 방금 한 말, 잠시만 다시 볼까요?


내담자: 네? 갑자기요?


나: 갑자기요. 이런 기회가 마냥 흔한 건 아니어서. 방금 한 말에서 '저는 적절한 예시'라고 했어요. 그렇죠?


내담자: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나: 맞아요. 혹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악의를 갖고 이중메시지를 사용한 건 아니라는 건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내담자: 그 사이에 이중메시지를 썼어요? 저한테?


나: 네. 지지난주와 지난주에 했던 상담이 과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나 보고 싶었거든요. 예전이나 상담 초반 같았으면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담자: 어. 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아마 그랬을 것 같아요. 분명 상대방이 적절하지 않은 예시라고 말했는데, 굳이 제가 적절했던 것 같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 제가 적절했다고 이야기를 하면 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것들이 나올 것을 미리 예상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더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아마 적절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나: 네. 그 부분이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나는 적절하지 않은 예시인 것 같다고 했지만, 내담자는 적절한 예시였다고 했죠. 예전이었으면 내 말을 따라 했을 거예요. 앵무새처럼 말이죠.


내담자: 오. 근데 이해가 되다가 엉킨 느낌이에요. 선생님이 적절하지 않은 예시였다고 말했고, 제가 적절한 예시였다고 생각한다고 했죠?


나: 네. 맞아요.


내담자: 그런데 제가 예전에는 적절하지 않은 예시였다고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인 거죠?


나: 네. 그겁니다.


내담자: 음. 그럼 지금 제가 선생님의 말을 반대로 이야기한 것이 제가 변화하고 있는 부분인가요? 아니면 잘못된 부분인가요?


나: 일단 내담자가 상담을 하면서 타인에게 맞추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서 변화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내담자가 잘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하는 이 상담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담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제가 좋게 변하고 있다니까 다행이긴 한데요. 방금 그 부분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나: 이 시점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민함과 배려에 대한 부분인데요. 어려우면서도 그 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걸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내담자: 음. 제가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한다는 건 이제 알겠어요. 아! 그래서 선생님이 제가 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반응을 하신 거네요. 제가 선생님을 배려하지 않고 제 생각을 이야기했으니까요.


나: 우와! 바로 그겁니다. 정말 똑똑해요. 지능검사했을 때 IQ가 130이 넘었죠? 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 나지만, 똑똑한 게 이렇게 티가 나네요.


내담자: 아니에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요. 저보다 똑똑한 사람도 많은걸요.


나: 방금 한 말도 비슷해요. 물론 부끄러움이나 겸손이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냥 웃고 넘어가지 않고 내담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내담자: 아, 그렇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나: 네. 그래서 본인과 상대방 모두를 존중할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가면 좋죠. 이 부분이 우리가 만나는 동안 이루어지면 좋겠네요.


내담자: 그렇게만 되면 정말 좋겠네요. 그런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뭔가 힘든 느낌이 있네요. 심지어 이야기를 얼마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아요.


나: 그럼요. 오늘은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의 변화된 부분 중에 아주 사소한 부분을 봤던 것 같아요. 덕분에 우리는 오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다음 주에 해야겠네요.


내담자: 어떤 부분이었죠?


나: 예민함과 배려에 대한 부분이에요.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괜찮아요. 분명 상담을 하다 보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이미 우리는 이 부분을 다루고 있으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번뜩 생각이 나서 타이밍이 맞으면 꼭 이야기를 할게요.


내담자: 네. 오늘도 저는 사람 그림을 그려볼게요. 만약 제가 컴퓨터였다면 '나'라는 사람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일 것 같아서, 저는 오늘 그렇게 그림을 그릴 생각이에요. 괜찮죠?


나: 그럼요. 얼마든지요. 




상담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내담자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확실한 것은, 내담자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라면 언젠가 타이밍이 맞으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기법을 활용해서 대화를 통해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내담자이다.


결코 상담자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이 먼저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상담자가 주도권을 잃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담사와 다른 생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내담자가 스스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상담사라면.


원래는 이 부분을 부모가 해줘야 하는 게 맞다.


부모가 자녀에게 "엄마랑 아빠는 배가 고프지 않아."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에서 자녀가 "나는 배가 고파."라고 한다면 부모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는 당연히 "네가 배가 고프구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등과 같이 배가 고픈 부분을 해결해 주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 물어볼 것이다.


당연히 배가 고프다는 것도 공감해 줄 것이다.


내담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저는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해요."


이 말 한마디가 내담자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상담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내담자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상담사니까, 내가 내담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예민함과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엄청 힘든 과정일 것이고, 큰 산을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수박 겉 핥기 식의 이야기에서 조금 들어간 느낌이지만, 훨씬 깊게 관여를 하게 되면,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걱정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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