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그루 Sep 09. 2024

들어가는 말

회계담당자, 시민단체 활동가, 남성 페미니스트, 대안학교 졸업생, 대학 비진학 청년… 나를 수식하는 많은 정체성 중에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게 없다. 어쩌면 허황된 이상을 좇던 나는 지금의 시대를 만나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시 경쟁 교육에 진절머리가 나서 대안학교를 진학했고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직접 일구어나가는 내 삶이 더 가치 있겠다고 생각해 대학도 가지 않았다. 사회가 더 올바르게 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회시민단체에서 일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20대를 보냈지만, 결국 지금은 백수다. 이렇다 할 이력도 자격증도 학력도 없는 나는 누군가 보기에 패배자의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었다. 사회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자고 모인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도덕적이거나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해탈한 성인군자들이라는 법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사회시민단체 내부의 비리와 부조리를 겪고 끝내 일도 봉사활동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번아웃이 왔다. 20대 대부분을 시민단체 활동에 헌신하였으나 남은 것은 공황장애뿐이었다.


이때 겪은 공황장애로 인해 나는 병역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이 되었다. 이제 다 정리하고 군대나 가련다, 하고 생각했으나 지역에 TO가 없다.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된 상황이다. 군대는 못 갔지만 먹고는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취업을 하려니까 학력도 자격증도 없는 병역 미필의 20대 후반 남성을 뽑아줄 회사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자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들을 청개구리처럼 들어먹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괜한 게 아니었다. 내 삶의 위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내 선택과 지금의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회문제를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좀처럼 겪지 못했을 ‘경험’이라는 귀중한 자산을 얻었다. 나는 쓴다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린다. 쓴다는 것은 삶의 문제와 인간의 가치를 전시해 두는 것과 같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목격했던 삶,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삶에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고 나와 같은 패배자들의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 내 글쓰기의 목적이다.


어떤 ‘이상한 삶’을 살았는가, 어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는가를 쓰기 위해 내가 속해 있었던 조직들에 대해 기억을 되짚어 보는 글쓰기부터 시작하여 내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순차적으로 기록할 생각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노동조합이나 여러 분야의 시민단체 조직, 즉 공동체에서 속해 살아왔다. 그래서 이 글의 첫 장은 내가 겪었던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서술할 생각이다. 그 이후에 이런 공동체 생활의 경험 끝에 내 삶의 문제의식과 인간관계와 가치관의 변화를 주제로 글을 쓸 것이다. 내 삶의 위기가 어른들 말씀을 듣지 않은 벌이라면 나는 참회록을 쓰겠다. 그리하여 나의 참회가 진정성이 있다면 나는 우리 사회 정상성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상성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되물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