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의 육아가 진정한 육아였다. (고딩때도 이말이 나오겠지만....)
중딩의 육아가 진정한 육아였다.
어린이집 가방 한번 들어준 적 없고, 비와도 우산 한번 가져다 준 적 없는 매정한 엄마가.
이제는 아이를 학교 근방까지 데려다주고, 동네 학원 앞까지 데려다준다.
옷을 걸어주고, 가방을 정리해주고, 물통을 가방에 넣어주고, 안이쁘게 행동하는 그 아이에게도 웃는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이렇게 변했다.
초등때는 하지 않았던, 마치 유아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인생은 혼자여서 절대 혼자 스스로를 강조하던 내가 중학교를 가고 힘들어하는 딸을 보면서 나마저 저 차가운 곳으로 혼자 내밀 수는 없다 생각했다. 나라도 따뜻한 (별로 안따뜻한 엄마가.) 사람이 되어 그 아이가 누울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여러번의 풍파가 있었는데 사춘기호르몬과 생리로 인한 성호르몬이 활개를 칠 때는 정말 내자식이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혼자 속이 답답했는지 10시에 핸드폰을 두고 밖에 뛰쳐나가도 난 코를 골면서 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아이의 가방을 정리라는 목적으로 챙겨보는 이유는 지저분해서도 있지만, 책가방 속에 아이의 생활의 근거들이 다 들어있다. 또한 직접 가르쳐주는 건 없어도 정리하는 척 하면서 문제집과 진도를 한번씩 확인한다. 그리고 조용히 학원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부탁을 하는 고단수 엄마가 되었다. 전에는 당장 버럭 소리부터 질렀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뛰쳐나가고 처음에는 어딜가서 찾아야하나 싶었는데 문제집 종류를 확인해보니 사회책 딱 하나와 필통이 없어졌다. 아. 스터디 카페 갔구나. 싶어서 그냥 잠을 잤다. 돌아온 아이는 코를 골며 자던 나에게 자기는 중요한 존재가 이제 아닌거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다음날도 폭탄 문자로 나에게 난리를.... 예전에 나같으면 같이 격투?를 벌였겠지만 이제는 <엄마가 미안해. 그런데 엄마가 너 한시간 동안 찾았어~ 너무 지쳐서 잔거야.>라고 거짓말도 섞어서 답장을 보냈다. 사실 마음으로는 한시간 동안 찾았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화는 여전했다. 그래도 학원은 가는 모습을 보면서 뒤통수에 웃으면서 <잘다녀와~ 고생해~ > 하면서 보냈다.
사실 일하고 돌아오면서 집에 들어오기가 싫었다. 하지만 아이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봐야하고 밥도 챙겨줘야지 하면서 돌아왔는데 화난 아이를 보니 더 지쳤다. 그래도 내색 않고 쳐다도 안보는 뒤꼭지 대고 웃는 나를 보면서 나자신에게 애쓴다.... 싶었다.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데 방문앞에 아이가 턱하니 다시 서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엄마가 잘못한거 아니야. 내가 마음이 너무 안좋았어. > 하면서 우는 것 아닌가. 나는 언른 엄마한테 미안해서 돌아왔구나 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이번의 싸움은 이걸로 마무리구나하면서 나는 좋았다. 다시 또 아이를 학원으로 웃으면서 보내고 나는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한시름 놓았다.
이런 산을 몇 번이나 넘어야 사춘기의 막바지가 올까?
이 일은 기말고사 얼마 앞두지 않고 이러난 일이다. 나의 인내는 이번 기말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도 있었다. 지금 관계가 안좋아시면 이번 기말은 물건너 가겠다라는 아득함으로 이를 깨물고 버티었다. 늘 해결책을 찾는 극 T의 나로서는 최선을 해결책은 참고 아이와 관계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또한 어차피 할 지랄이라면 지금 해라 싶다. 어른이 되서 할 수 없지 않은가? 나의 목표는 자식의 완벽한 독립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말은 어떻게 됐냐고?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