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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잔의 여유이고 싶다

루피시아 8571. 모히또

by 미듐레어

아마도 이번시즌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칵테일 모티브의 아이스티 모히또를 마셔본다. 모히또 하면 역시 몰디브를 한잔 하는 게 국룰이겠지만 일본녹차 베이스이기 때문에 남국의 바다보다는 평범하게 도쿄만 정도의 바닷가가 떠오른달까. 아무튼 모히또라면 별 이유 없이 청량한 느낌이 들 것 같고 시원 상큼할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막상 마셔본 기억을 잘 더듬어보면 민트향에 설탕과 라임맛이 약간 나는 김 빠진 탄산느낌이랄까. 그래서 이걸 차로 만든다면 어떤 맛이 날지 영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랑마르쉐 한정으로 겨울 온라인 그랑마르쉐에서 50g 봉입으로 780엔에 구입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오사카 그랑마르쉐 회장에서 시음을 해보고 응, 이건 더 사지 않아도 되겠어. 싶은 마음이 들어 추가구매는 하지 않았다.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참고로 맛이 없었던 건 아니다. 상미기한은 1년.

모히-또

가타가나를 배우고 나서 좋은 점은 옛날 루피시아 영수증을 번역 없이 읽을 수 있다거나 이렇게 라벨지에 적힌 차 이름을 좀 더 본토발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모히또를 뭐 다른 말로 번역해서 쓸 일이야 없겠지만 그대로 음차 하지 않는 경우의 제목도 바로바로 읽을 수 있게 된 게 좋달까. 아무튼 비교적 앞쪽에 나오는 글자들로 이루어진 모히-또.

탓푸리노 민토토 칸키쓰니 요루, 큐바 핫쇼노 카쿠테루오 이메-지시타 료쿠챠. 아이스티-니모.
풍부한 민트와 감귤로, 쿠바에서 태어난 칵테일을 이미지 한 녹차. 아이스티로도.

아마도 라임의 느낌을 감귤로 대체한 듯. 아이스티로도 좋다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의 모히또라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잘잘잘잘

봉투를 열어보면 민트향이 확 나서 여름한정인 아라비아 시리즈, 알라딘이었나 세헤라자데였나가 떠오르는 향이다. 아닌 게 아니라 뒤에 올라오는 옅은 시트러스향까지 딱 그런 느낌인데 끝에 묘하게 소다향 같은 게 뒤섞여있어서 조금은 구분이 될 것도 같다. 그 옅은 시트러스와 소다향에서 주는 인상이 슬며시 탄산거품을 떠올리게 한다. 건엽을 덜어내어 보면 다른 센차베이스에 비해서는 꽤 잘잘한 건엽들로 이루어져 있고 찻잎보다 좀 더 나뭇잎스러운 건 페퍼민트류 같아 보인다.

가볍게 산들산들

보통은 냉침으로 마시는 게 가장 좋았던 루피시아의 녹차 베이스 가향. 5g의 찻잎을 500ml의 물에 넣어 하룻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뚜껑을 개봉해 보면 스피아민트에 가까운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데 음? 이러면 모로칸 민트와 뭐가 다르지? 얼음컵에 부어서 마셔보면 차의 맛이나 섬세한 향들이 좀 벨런스가 맞지 않는 게 민트향이 워낙 강하게 느껴진다. 차의 맛도 모르겠고 그냥 민트차가 되어버렸다. 다른 날 다시 몇 번 시도해 봐도 비슷한 인상이었던 걸로 봐서는 냉침 특징인 듯. 그러고 보면 오사카 그랑마르쉐에서도 아이스티로 시음을 진행했는데 비슷한 인상이었어서 추가로 하나 더 구매하려다가 말았더랬다. 민트와 시트러스 조합이 유독 컨트롤이 어려운 듯하다. 급랭 시에도 이게 참 컨트롤이 미묘하게 어려운데 6g의 찻잎을 100도의 물 150ml에서 1.5분 우려내고 얼음컵에 부어내면 녹차의 거친 느낌이 약간 올라오면서 애플민트 같은, 뭐랄까 빻아서 넣어주는 민트의 느낌이 난다. 혹시나 싶어서 우려내고 난 뒤에 5분 정도 뒀다가 얼음을 부어줘 봤는데 감귤제스트 같은 향이 정확히 라임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약간의 소다맛과 함께 정말 모히또의 감각을 재현해 준다. 근데 꽤 여러 차례 마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느낌은 두어 번 받은 것에 그치고 보통은 그냥 음 민트맛. 했던 것 같아 정말 컨트롤이 어려웠던 기억이다.

페퍼민트가 상큼

약간은 자몽 같은 시트러스향이 겹치면서 세헤라자드가 자꾸만 떠오르는데 뭔가 내가 제대로 만드는 게 맞나 싶은 느낌을 자꾸 주는 것조차도 비슷한 느낌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만큼 어렵다는 느낌보다는 잘하면 120%가 나오는데 늘 나오지가 않아서 답답한 느낌에 더 가까운 어려움이었다. 시음 때 마셔본 경험으론 나만 안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었어서 그런 것도 같고. 결과적으론 바닷가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모히또 한잔 하는 기분이 되기가 어려웠으니 아쉬움이 더 크다. 역시 칵테일은 전문가가 해주는 대로 마시는 걸로. 이제 마무리되는 여름의 뒷모습을 보며 건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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